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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Nov 30. 2020

전반전의 끝

아파...너무 아파...

'으윽...'


 정신이 조금 드는 걸까.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는다. 안경을 쓰지 않은 탓일까. 아니다. 흐릿한 장면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어둠 속이다. 내가 정신이 약간 들어 있다는 것 외에는 깜깜한 어둠 속이다. 여기가 어딜까. 지금 난 뭘 하고 있는 걸까.


 "으윽..."


 옆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


 나의 마지막 기억이 머릿속을 재빨리 스치고 지나갔다. 난 수술실로 들어갔고, 마취를 했다. 아직 다 세지 못한 숫자들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수술이 끝났구나'


 현실감각이 돌아오는 순간 내 모든 감각들이 미리 흔들어 놓은 콜라뚜껑을 딴 것 처럼 뿜어져 나왔다. 온 몸의 감각이 되살아나면서 주위도 밝아지기 시작했다. 흐릿한 천정이 보이고, 난 이동식 간이 침대에 누워있었다.


 '...!!!"


 온몸의 감각이 돌아오자 배를 쥐어짤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아니. 통증은 이전부터 있었을테고, 내가 통증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굉장히 아프구나!!'


 생각을하는 순간부터 통증은 점점 더 커져갔다. 참을 수가 없었다. 신음을 내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발열매트 덮어드릴께요."


 간호사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저 말을 구간반복중이다. 나에게도 같은 말을하며 발열매트를 덮어주고 갔다. 정확하게는 덮어주었다기보다는 내 몸 위에다 던져놓고 간 느낌이었다. 수술이 끝나면 몸이 춥다고 했던 아내의 말이 기억났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춥지 않았다. 추워 할 틈이 없었다. 수술부위가 너무 아팠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주위를 자세히 살필만큼의 시력도 되지 않거니와, 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수술 후에 막 마취가 깬 탓이리라. 신음소리가 커지고 또 커지다가 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회복실에 울렸다.


 "아...살려주세요...너무 아파요..."


 이것은 마치 달리기 시합에서 출발을 알리는 총성과도 같았다. 누군지 모를 한 사람의 저 한마디를 시작으로 이내 내가 누워있는, 아니 우리가 누워있는 이 어딘지 모를 이 공간은 온통 '살려주세요'라는 말 뿐이었다. 닭장에 같힌 닭들이 꼬꼬댁 소리를 내어도 주인이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것 처럼, 우리의 신음에 반응하는 의료진은 없었다. 나도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치열한 아우성 틈을 비집고 누군가 내 침대를 낚아채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도 내 눈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래 내가 있던 병실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출발 총성을 들은 그 때 부터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 '살려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병실에 도착하자 간이침대를 병실침대 옆으로 붙이더니 나보고 옆 침대로 옮겨가란다. 너무 아파서 힘도 제대로 못 주겠는데, 내 아래에 깔려있는 이불을 같이 들테니 신호와 함께 넘어가면 된단다. 내 귀에도 별것 아닌 것 처럼 들릴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없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시간을 지체하면 침대를 옮기는 과정에서 고통만 더 심해질 것 같았다.


 "하나, 둘, 셋!"


 나는 최대한 다리에 힘을 주고 병실 침대로 옮겨누웠다. 그리고 통증은 더 심해졌다.


 "간호사님, 저 너무 아파요..."


 "당연하죠~ 멀쩡한 살을 쨌는데요. 아픈게 당연해요."


 의료진의 이런 일상적인 쿨함은 간혹 당사자의 아픔을 잠시 잊게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라서 무안할 정도였다. 아픈게 당연하다. 생살에 칼을 맞아도 이런 느낌일 것이다. 굉장히 아프겠구나. 온갖 상황을 대입해 가며 나도 나의 아픔이 당연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인지시키고 있었다.


 "진통제를 넣을게요. 그럼 좀 괜찮아 질 거에요."


 난 지금까지 수술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수술 전에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수술을 마치고 나면 병실에서 환자가 조용히 눈을 뜨며 가족들의 모습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가족들은 걱정어린 눈빛을 보내며 '어때, 정신이 좀 들어?'라며 환자의 상태를 살핀다. 조심스럽게 깨어난 환자는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살며시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어보낸다. 나는 완전히 속았다. 수술을 마치고 나니 회복실이었고, 고통의 메아리는 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마취에서 깬 사람들로 여기저기 터져 나오고 있었다. 병실로 돌아와서도 가족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더구나 살며시 괜찮다는 듯 미소를 지을만큼, 난 나의 고통을 숨길 수 없었다.


 "수술은 잘 됐대."


 "...여보, 나 장루 하고 있어?"


 정신이 좀 들자, 수술 전 들었던 장루가 가장 걱정이 되어 아내에게 물었다.


 "아니"


 "다행이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했고, 장루는 차고 있지 않다고 했으니 일단은 좀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수술은 잘 되었구나. 이제 잘 회복만 하면 되는 것이겠구나.


 마취에서 깨어나기는 했지만 나는 너무 졸렸다. 잠을 자고 싶었다.


스르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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