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시작될 무렵 늦은 밤,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허허! OO이가 전교 1등 했다더라. 새언니한테 전화해서 축하한다고 해줘라."
전라도에서 고등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서울에 올라와 힘들게 자수성가하신 아빠는 늘 학벌이 관심사였다. 자식이 공부 잘했다는 소식을 가장 좋아했고, 고시 공부하는 동생을 10년간 뒷바라지해서 5급 공무원을 만들었다. 불행히도 자식은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간 자식이 없었다. 그런데 오빠의 큰 딸이 전교 1등을 했다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아빠 축하해요.
손주 중에 명문대학생 나오겠네요."
"허허"
그래도 그렇지. 새언니한테 전화를 하라니. 알면서. 새언니와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한참 오빠와 새언니 사이가 안 좋을 무렵 오빠에게 도가 지나친 말을 하는 것을 본 후로 서먹해졌다. 오빠도 사는 게 힘든지 부모님께 큰아들 노릇을 못 하니 몇 번 언성이 오간 후에는 어색했다. 부부가 이제는 아이 교육에만 전념한 듯 새언니는 학부모위원, 반대표를 자처하며 다녔고, 오빠는 주말마다 각종 대회에 아이를 데려다주는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결국 전교 부회장에 전교 1등까지 만든 것이다. 나는 못 할 일이었다.
나와 교육관이 맞지는 않지만 그 가족의 노력은 인정했다. 아이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누가 뭐라 할까. 어릴 때 부모들 싸우는 모습 보며 자란 조카가 잘 자라서 공부도 잘한다니 기특하기도 했다. 아빠가 저리도 좋아하시니 축하해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었다.
조카에게 직접 연락하기로 했다. 당사자니 축하도 조카가 받아야지.
"고모가 축하해"
이모티콘의 온갖 현란한 팡파르와 하트로 카톡을 도배하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전교 부회장다운 예의 바른 감사 인사가 왔다. 또 한 번 기특했다.
여기까지는 진심이었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다. 조카에게 용돈을 보내려니 오빠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축하 메시지와 용돈을 카톡으로 보냈다. 곧 답이 왔다. 그때부터 빈정이 상했다.
"하연이는 그림을 잘 그리잖아. 앞으로 잘 될 거야."
이게 뭔 소리인가.
거기서 내 딸 이야기가 왜 나오나.
누가 내 딸과 자기 딸 함부로 비교하라고 했나.
하연이가 방황하고 약 먹고 힘들어했던 걸로 인해 내가 조카 1등 한 걸 불편해할 거라고 넘겨짚고 미안해하는 말투에 기분이 상해 혼자 발끈했다.
'오빠야.
내 딸은 잘 살 거니까 걱정마라. 각자 잘하는 게 있고, 큰 시련을 지난 내 딸은 강력한 내면까지 장착한 자랑스럽고 너무도 예쁜 내 딸이다. 함부로 불쌍히 여기지 말아라. 자기 딸만 잘나서 미안하다는 말투 기분 상했다. 함.부.로. 미.안.해.하.지. 마.라.'
물론 혼잣말이었다.
오빠와 톡을 한 지 2주가 지났다. 톡을 다시 보니 나 혼자 단단히 뚱 했다. 오빠는 그저 하연이도 잘하고 있다고 같이 칭찬해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부러운 게 맞았나 보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부럽지만 그렇게 아이를 지극히 챙기는 부모의 마음이 부러웠다. 그렇게 못하는 내가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졌나 싶기도. 내가 또 쪼잔했다. 우리 부모세대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것에 비하면 딸들은 잘 크고 있다. 그 집 딸도. 우리 집 딸도. 그러니 남의 집 부러워 말고 딸에게 데이트 신청이나 해야지. 하연이가 홍대 카페에서 쓱~~~ 그려준 자몽에이드가 땡긴다.
글쓰기 테라피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글로 적으면서 나를 이해하는 글쓰기 테라피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