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낮춘다는 것
"탭!"
하마터면 암바에 걸려 팔이 부러질 뻔했다.
수십 번 수백 번 당해보는 기술이지만
찰나의 순간에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
이토록 아찔할 수 없다.
나는 참 고집이 더럽게 센 편이다.
안 그런 것 같아도 뭔가 하나에 꽂히거나
아니면 내 계획에 벗어나는 루틴이 발생하면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
오죽하면 주변 사람들이나 여자친구가 나를 보고
'쓸데없는 똥고집'이 심하다고 핀잔을 줄 정도니까.
그런 '쓸데없는 똥고집' 때문에 주짓수를 하면서도
참 많은 부상을 당했다.
그냥 내가 기술에 당하고 졌다는 걸 인정하는
T와 A와 P라는 세 단어만 외치면 되는데
왜 나는 항상 목젖 끝에서 그걸 망설였던 걸까.
아니, 하다못해 손바닥으로 바닥이나 상대방 몸을
두 번 두드리면 되는 것인데, 그놈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뭐라고
왜 이토록 나 자신을 몰아붙이는 걸까.
사람은 자기 자신의 결함에 대해 지적을 당했을 때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되려 목청을 높이며 부정을 하고
상대방의 부족한 점을 굳이 굳이 찾아내어 비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상처받고 무기력해지며
스스로를 파괴하기도 한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편이었다.
항상 남들보다 못나서 그렇다고
모든 건 내 탓이라고 느끼고 채찍질하기에 바빴었고
내 인생과 스스로가 불쌍하다고 여기며
마치 마약처럼 자기 연민에 빠져 취해있었다.
어쩌면 탭을 치고 상대방에게 항복한다는 것은
내 결점에 대해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서브미션에 걸려 팔다리가 부러지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아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겸손에 대해서
더 많이 강조를 하는 것 같다.
겸손하다는 것은 남들 앞에서 체면치레를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부족하고 모자란 것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처음엔 그저 나 자신을 낮추면 되는 것인 줄 알았다.
남들이 위신을 올려주는 말을 하면
그저 부끄럽고 쑥스러우니 나 자신을 꾹꾹 짓밟아
그걸 '겸손'으로 열심히 포장했었다.
근데, 그건 겸손이 아니더라.
어느 순간 나 스스로가 담백해져야겠다 마음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알면 알고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하고
대신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슴슴해지려 생각을 덜어내다 보니
조금은 스스로에게 더 솔직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요즈음 내가 느끼는 겸손은 나를 낮추는 것보다는
그저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라 느낀다.
어차피 숨겨봤자 모두들 안다.
내 실력을 숨겨도 스파링 한두 번을 해보면 모든 깜냥이 드러나고
내 마음을 숨겨도 대화를 한두 마디 나눠보면 감정이 드러난다.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나 자신과 마주한다는 과정은 어쩌면 정말 큰 고통이다.
최근 아버지와 오랜 친분을 쌓으신 한 아저씨께서
금연을 한 지 10년이 지났다고, 나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그래, 겸손해진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겸허하고 솔직하게 이겨나가는 과정이다.
모두들 각자의 싸움에서 무운을 빈다.
부디 그 과정의 끝에 상처가 많을지언정
환한 미소를 띠며 더 단단해져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