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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g Sep 08. 2021

Blue Mountains

세 자매봉

  나는 변화보다는 익숙한 안정감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여행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여행을 하려면 공부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도 싫었다. 익숙한 곳에서 별 준비 없이 매일을 맞이하는 것이 편하고 안정적이어서 좋았다. 아내 덕분에 여행을 끔찍이 좋아하게 됐지만 그래도 기본 성향은 잘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행을 계획할 때도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 것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중의 하나는 방문지를 최소화하고 숙소도 가능하면 한 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다. 여행의 목적이 관광보다는 현실에서 도피해 도피처에서 맛보는 비현실적 쉼이라면 맞을 것 같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녀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 여행의 목적이 바뀌었다. 소중한 존재들에게 하나라도 더 많이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꼭 방문해야 할 장소로 아내가 왕복 5시간 정도가 걸리는 Blue Mountains을 꼽았을 때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준비를 했다. Blue mountains에 방문하던 날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준비해서 숙소를 나섰다. 늘 똑같지만 빼놓을 수 없는 아침식사를 하고 열차를 타기 위해 10분 거리인 센트럴 역을 향해 걸었다. Blue Mountains는 시드니에서 기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이동 수단 탑승 전에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화장실에 들르는 것이다. 아직까지 기저귀를 사용하는 둘째는 준비를 해가면 되지만 첫째가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급하게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하면 정말 눈앞이 노래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동시간이 몇십 분 이상 예상되는 경우에는 가고 싶어 하지 않아도 화장실에 꼭 한 번 앉힌다. 열차 출발 시간보다 조금은 여유 있게 역에 도착하여 화장실을 들르고 아내를 위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하나 샀다.

  열차에 오른 아이들은 열차 자체가 또 너무 신기하다. 여행을 왔지만 또다시 여행을 떠나는 기분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좀 더 업이 되었다.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다 보니 열차는 어느새 Katoomba 역에 도착했다. 열차 안에서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고 먹으며 또 창밖을 구경하던 딸들은 2시간의 시간을 잠들지 않고 버텨냈다. 이동 중에 잠들어 체력을 비축하길 바랬던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열차에서 내렸다. Blue Mountains의 대표적 관광지인 세 자매봉을 보기 위해서는 버스를 한 번 더 타고 에코포인트로 가야 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순간 첫째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했다. 아~ 한참 걸어왔는데 다시 화장실을 찾아 되돌아가야 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 알았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확실히 더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품어야 하는 인내심도 그 깊이와 폭이 매우 넓고 깊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아 간다. 시간을 허비한 것 때문에 기분이 살짝 언짢아졌지만 참아야 한다! 

  

  화장실을 들렀다 다시 돌아온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에코포인트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 휴대용 유모차를 하나 챙겨 왔다. 5살인 첫째는 이제 유모차를 타지 않고 스스로 킥보드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더 이상 유모차를 태울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버스에 내려서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는 순간 둘 사이에 유모차 쟁탈전이 벌어졌다. 중재를 위해 무거운 언니를 유모차에 태우고 둘째를 안거나 목말 태우려 했는데 어릴 적 나의 성격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것 같은 둘째는 자신이 유모차에 타겠다며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하는 수 없이 첫째를 안고 걸었다. 팔 힘이 빠져 목말로 바꿨다가 사정하며 중간에 잠깐 걷도록 유도하면서 에코포인트에 도착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이 예쁜 날의 Blue Mountains은 참 보기 좋았다.


  첫째에게 세 자매봉에 관해 알려진 이야기를 해주었다. " 아가야, 이 봉들이 왜 세 자매란 이름을 가진 건지 알아? 마왕이 세상에 아름다운 딸 셋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그 딸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왔대. 아빠는 딸들을 지키기 위해서 마법사에게 부탁해(아빠가 마법사였다는 이야기도 있음) 딸들을 마왕이 데려가지 못하도록 봉으로 만들어뒀는데 이를 알고 화가 난 마왕이 마법사를 없애버려서 딸들은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지금까지 저렇게 세 자매봉의 모습을 하고 있게 된 거래." 이 이야기가 인상 깊었던 것인지 아이는 2번, 3번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그러곤 혼자서 한참을 바라다보았다.


  에코포인트에서 관람을 마친 후 근처 식당에서 간다히 식사를 하고 시닉 월드를 향해 갔다. 시닉 월드에서는 3가지의 기구들을 탈 수 있다. 270m 높이에서 양 계곡 사이 720m를 왕복하는 스카이웨이, 급경사면의 철로를 오르내리는 레일웨이, 그리고 시닉 워크웨이 트래킹 후에 편하게 올라올 수 있는 케이블웨이. 사전에 현지 한인 여행사를 통해 1일 무제한 이용권(바우처)을 현장 구매비용보다 저렴하게 구매하였다. 스카이웨이는 Blue Mountains의 전체 풍경을 보기에 좋고 바닥을 투명하게 제작하여 스릴을 느낄 수 있는 특이한 점이 있다. 레일웨이는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은 짜릿함이 있어 3가지 기구 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기구이다. 우리 가족은 두 번을 탑승했는데 두 번째는 운행 마감 시간을 10분 남기고 운 좋게 마지막 운행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마지막 운행이었기에 올라올 때 걸어 올라와야 하나 걱정이 됐는데, 다행히 내려간 사람들을 태우고 올라오는 케이블웨이도 막차가 있어서 무사히 타고 올라올 수 있었다. 

   

Tripview lite 버전

  마지막 운행시간까지 꽉 채우고 나왔더니 관광객은 대부분 사라지고 음식을 먹을만한 푸드트럭도 문을 닫았다. 그렇다고 근처에서 식사를 할 수도 없었다. 주변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1시간에 1대 운행하는 열차를 타고 다시 시드니로 돌아가야 했다. 낯선 곳에서 식사를 하다가 혹여 열차가 끊겨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수습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열차 시간은 Tripview라는 앱을 통해 연착 여부 등의 실시간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여행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제 때 아이들에게 식사를 먹일 수 있는가의 여부이다.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식사를 먹이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아내는 뜨거운 물에 풀어 아이들에게 먹일 수 있는 대용식을 준비해 나왔다. 그 대용식과 남은 간식으로 이 날은 간단히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시드니 기차에는 조용히 이용해야 하는 객실이 지정돼 있다. 돌아가는 열차가 올 때 열차에 비해서 매우 조용한 편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말소리만 정적을 깨고 있었다.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던 중에 우리가 탑승한 칸이 말없이 조용히 가야 하는 곳이란 걸 뒤늦게 발견하고 부랴부랴 다음 칸으로 이동하여 마음 편하게 시드니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 끼니를 때우지 못한 우리 부부는 뒤늦은 저녁을 먹었고 그렇게 아쉬운 시드니의 하루가 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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