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운 하루
호주는 영국 여왕을 국가 원수로 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으로서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런던의 하이드 파크와 똑같은 이름의 하이드 파크 공원이다. 우리 가족이 묵고 있는 숙소에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바로 이 하이드 파크가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매일 같이 여유롭게 이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고 싶었으나 빡빡한 일정들로 한 번을 와보지 못하다가 시드니를 떠나야 할 때가 다 되어서야 방문을 하게 되었다.
머릿속에 그리던 대로 여유롭게 일어나 시간에 쫓김 없이 아침식사를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서 마실 나가듯이 편하게 하이드 파크를 향했다. 처음 우리 가족을 맞이한 것은 안작 전쟁 기념관(ANZAC War Memorial)이었다. 세계 1차 대전 때에 유럽에 파병된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의 헌신을 기리는 장소이다. 기념관 앞의 연못은 규모는 작지만 미국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앞의 거대한 연못을 떠올리게 하였다.
공원에서 우리 가족은 유유자적했다.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즐거워하는 큰딸이 더워하여 내복을 벗겨주기도 하고 방향을 정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혹은 발길 가는 대로 걸었다. 길 건너편으로 세인트 메리 대성당도 보였다. 하이드 파크 주변으로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여럿 있으나 아이들이 갈만한 장소는 아직 아니라 생각되어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즐겁게 거닐 뿐. 다음 일정에 대한 부담 없이 거닐어도 30분 정도면 공원을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하이드 파크는 규모면에서는 아담했다.
하이드 파크 산책이 끝난 거리 근처에 시드니 최고층 빌딩 전망대인 시드니 타워 아이가 위치해 있었다. 웬만한 여행지에는 전망대가 없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여행할 때면 전망대를 올라갈 것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매번 고민을 하게 된다. 우리 부부만의 여행이었다면 올라가지 않았을 곳인데 자녀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다 보니 아이들에게 모든 가능한 것들을 다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시드니 타워 아이는 대형 쇼핑몰인 웨스트필드를 통해 입장이 가능하다. 쇼핑몰에 식당이 보여 점심을 먼저 해결하고 전망대에 올랐다. 시드니를 360도 다 둘러볼 수 있지만, 시드니 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곳이 보이지 않는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앞 건물들에 가려서 뾰족한 지붕만이 살짝 보일 뿐이었다. 사전에 정보를 접해 알고 있었음에도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내와 여행을 하면서 생긴 취미가 있다. 여행지의 우체국에 가서 엽서를 써서 보내는 것이다. 시드니 타워 아이에는 실제 우체통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고른 엽서를 구입하여 글을 써서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었다. 이 엽서는 지금도 우리 집 냉장고에 붙어있다. 자녀들이 글을 쓸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나중에는 4명이 함께 쓴 엽서를 보내게 될 날도 오겠지? 훌쩍훌쩍 커버리는 자녀들을 보면서 순간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고 느낀다.
웨스트필드 근처에는 시드니의 살아있는 역사인 퀸 빅토리아 빌딩이 있다. 쇼핑센터로서 앉아서 쉴 카페들과 쇼핑샵들이 입점해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음료를 마시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재충전을 했다. 퀸 빅토리아 빌딩은 내부에 두 개의 거대한 시계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충전을 마치고 우리는 시드니의 상징과도 같은 오페라 하우스를 향했다. 뭔가 하이라이트일 것만 같지만 실상 가면 별로 할 건 없고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바로 옆에 왕립식물원을 둘러본 후 근처 카페에서 식사나 커피를 즐기는 것이 전부이다. 이렇게 시드니에서의 우리 가족의 하루가 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