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무 이유도 없이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아파오곤 한다.
아.. 이유가 아예 없진 않다. 커피를 먹지 않아서 그런가. 중증 카페인 중독인가.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할까.
아무 이유도 없이 불안하고, 역겹다. 역겹다는 감각은 단순히 물리적인 메스꺼움이 아니다. 내 안에서부터 알 수 없는 뿌리로부터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사이에 있는 감각.
난 이 느낌이 뭔지 잘 알지.
이전에 매우 많이 느껴보았던 익숙한 감각들이다.
5번 면접_02:https://brunch.co.kr/@blueingorange/84
현재 내 상황은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5번 면접을 본 후 약 한달이 지났다. 결과 발표가 나올 거라 회사에서 약속한 시간이 2주. 4주가 거의 다 되어가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 동안 내가 뭘 하고 지냈냐 하면...
5번 면접이 끝나고 약 2주 동안, 나는 1주일동안은 그동안 못 들었던 인강을 들었다. 마음 편하게.
이렇게 마음 편하게 내 활동에 집중해본 게 얼마만인가. 그 과정에서 헤드헌터에게 자연스레 버려지기는 했지만, 어쨌든 하나의 기회가 더 남아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3주차. 이제부터 폰을 조금 신경쓰기 시작했다.
뭔가 알림이라도 오면 바로 하던 걸 집어던지고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모모 앱 약관 개정. 에이씨.
핸드폰에 조금이라도 불빛이 들어온다 싶으면 바로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내 착각이었다. 에이씨.
조금 불안해졌다. 혹시 또 무시당한 건가. 또 속아버린 건가.
나는 5번 회사 측에 메일을 보냈다. 실례가 안된다면 면접 결과가 언제쯤 확정될지 알 수 있겠냐고.
답장이 왔다.
"우선 결과 발표가 늦어지는 점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2주 안에 결과 발표가 확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불안은 죽는다. 날 무시하지 않았다. 다른 회사들과 달리, 그냥 늦어지는 것뿐이다. 그 회사가 지금 들어온 스케일 큰 프로젝트로 인해 정신이 없다는 건 나도 직접 보고 들어서 알고 있었고, 시간이 길어지는 것쯤이야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결과 발표가 온다는 것만 확실해진다면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왜냐하면 난 그 회사에서 떨어지는 것이 이상하다고, 면접을 보면서도 합격했음이 확실하다고 느꼈으니까.
그로부터 또 1주일 후. 4주차.
안도의 한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자존감은 극단으로 치솟고 땅끝으로 추락하길 반복한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잘 변하는 사람이니까.
안도의 한숨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자존감은 극단으로 치솟고 땅끝으로 추락하길 반복한다. 어쩔 수 없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잘 변하는 사람이니까.
방문이 조금이라도 열리면 화들짝 놀라 하던 걸 집어던지고 방문을 쳐다본다. 내 착각이었다.
갑자기 화들짝 놀라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내 착각.
귓가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서 방을 나가서 어머니를 불렀다. 착각.
계속 헛소리가 들린다. 헛게 보인다. 머리가 아프다.
나는 여전히 면접 결과를 기다리며 그동안 취준을 하느라 못해왔던 활동을 쉬면서 하고 있었지만,
이건 정말로 쉬는 게 아니었다.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은 점점 안달복달 썩어간다.
왜 안 오지?
혹시 누락됐나?
떨어졌는데 연락을 안 준건가?
그렇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면접도 없었는데?
내가 이메일을 못 보고 씹었나?
알림이 안 오더라도 매일매일 메일함을 체크했다. 혹시 내가 잠결에 넘겨버렸을까봐. 답장을 못했을까봐.
메일함에는 메일이 없다. 그러자 나는 이제 '네이버에 오류가 나서 혹시 결과 발표 메일이 처리가 안된 건 아닐까?' 이렇게 착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착각. 환각. 망상. 망상.
나는 오랜만에 쉬는 시간이 찾아와서 거의 두 달동안 하지 못했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을 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게임을 꺼버렸다. 나는 속이 메스꺼워져서 의자에 앉아있을 수가 없어 타이레놀을 먹었다.
타이레놀 한 알이면 충분하다. 실제로 내 몸이 아픈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내가 살면서 가장 바쁘게 보냈었던 대학교 4학년 때와, 작년에 부트캠프를 했었을 때를 떠올렸다.
몸이 너무 바빠서 매일 시체 상태로 다녔던 나날들. 피부가 뒤집어지고 피가 나서 옷을 입지도 못할 지경이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자체휴강을 때렸던 나날들.
3시간 자고 일어나서 12시간 공부하고 또 3시간 자고 일어나서 공부하는 괴상한 사이클로 활동을 하고 있었던 그때. 심지어 자취방 이사를 해야 해서 3시간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이사를 마치고 한시도 쉬지 못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혼자서 공부를 달달 하고 있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 나는 전혀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왜냐하면 즐거웠으니까.
지금은? 한가하다. 여유롭다. 내가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게임, 유튜브, 인강, 책, 뭐든지 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내게 눈치 주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노력했던 만큼 지금 보상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머리가 아프다.
날 아프게 만드는 건 나 자신뿐이다.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