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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잉오렌지 Oct 19. 2024

당신은 왜 이 자리에 있나요?

이번 면접: https://brunch.co.kr/@blueingorange/72



나에게 있어 회사란 성장의 관문이자, 동시에 '탈출구'다. 가장 두렵고 간절한 과도기다. 지금은 아침과 밤이 180도 다른 짧은 시기의 가을 나날들이다. 항상 뜨거운 여름과 항상 차가운 겨울은 날 나타내주지 못한다.


맞아. 가을은 짧지만 자유롭다. 이리저리 바뀌며 변덕스럽다. 그리고 추후 일어날 진정한 변화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그게 나와 닮았다. 가을은 고민한다. 나도 고민한다.



말없는 아이의 입이 뻥끗뻥끗 꿈틀거린다. 툭 치면 금방이라도 안에 담긴 것들이 쏟아져나올 것 같다. 하지만 난 내 힘으로는 입을 열 수 없다.


누가 한번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왜'냐고.








제 발표 한번 들어보실래요?




그렇게 한마디를 던지고, 잠깐의 정적. 대표님과 팀장님은 잠시 서로를 흘깃 쳐다보았다.


"기껏 준비해왔는데 한번 보자." 대표님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내 안에선 무수히 많은 생각이 흘러넘쳤다. 내 포트폴리오는커녕 이력서조차 검토하지 않은 회사. 면접 일정을 당일날 취소한 회사. 나에 대한 질문 하나 없이 본인만 질문을 듣고 싶어했던 회사. 기껏 준비해온 내 포트폴리오를 향해 "어차피 이런 일은 할 일이 없어요."라며 개무시를 했던 회사들.



나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는 일이 이렇게 기쁜 일인지 몰랐다. 나는 드러내고 싶었다. 나는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나 자신이 생각하는 '나'를 주장하고 싶었다. 겉모습으로 판단되는 건 싫었다.


내 과거를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날 바라볼 수 있는 시선. 나의 순수한 현재만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존재가 필요했다. 내가 자유롭게 가면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 두 개의 본캐끼리 자유롭게 왔다갔다할 수 있도록 하는.


내가 바라는 건 대단한 명예와 연봉, 워라밸 같은 게 아니라 그냥 나를 인정해주는 존재, 진짜로 나를 '평가'해주는 존재였다.



너는 '성장'을 했니?



너는 그동안 변화하고자 노력을 했니? 



너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니?




그렇게 내게 물어봐주는 이가 필요했다. 그럼 나는 그 질문을 듣고, 내가 준비해온 '답변'을 꺼낼 수 있다. 상대의 질문을 듣고 대응한다. 아주 당연한 의사소통의 방법이다.


그렇게 내가 답변을 꺼내면, 상대는 그 말을 듣고 내 답변을 이해하고자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의사소통의 방식이다. 



그 당연한 걸 하는데 왜 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벌벌 떨고 있는 걸까.




왜 그 프로젝트를 하려고 했나요?


왜 그 서비스를 선택했나요?


왜 이 길을 선택했나요?



왜 여기에 있나요?



왜, 왜, 왜, 왜. 나는 '왜'가 참 두려우면서도 좋다. '왜'는 정성이 있다. '왜'는 탐구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 내 가면을 파헤치고 그 안에 있는 걸 까발리려는 욕구가 담겨 있다. 그 점이 싫다. 그리고 좋다.



내가 어떤 어눌한 답변을 하던 간에 당신은 그 말을 귀기울여 듣고 파헤친다. 내가 어떤 꾸며낸 답변을 하던 간에 당신은 그 말을 귀이울여 듣고 파헤친다. 답변을 할 때까지 기다린다. 면접 시간은 어느덧 1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그럼에도 계속 내게 '왜'를 던진다.



당신은 내게 의도와 계기와 과정을 물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니라.



당신에게선 나를 이해하고자 하는 정성이 느껴졌다.




90분 가량의 면접이 끝났다.



나는 터덜터덜 건물 밖으로 나왔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모든 것을 쏟아냈다. 나는 주변의 시선을 보지 않고 그냥 눈앞에 놓인 길만을 따라 내려갔다. 




이렇게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적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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