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잉오렌지 Oct 12. 2024

전남친을 잊기 위해 난 면접을 봤어

이렇게.


그 면접: https://brunch.co.kr/@blueingorange/84



6.


다섯번째 면접에서 '완벽한 면접'을 보고 내가 결과 발표를 기다린 시간.



접을 보고 결과를 알려주기로 최초로 약속한 2주가 지나고 나는 회사측에 메일을 보냈다. 사과를 받고 추가 2주를 배정받았다. 그래서 또 2주를 기다렸다. 3주가 지났다. 이번엔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바보라도 알 수 있다. 소위 말하는 '간보기'를 당한 것이다. 래서 난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합격 후보까진 들어간 모양이다. 2주 후에 알려주겠다고 답장이라도 받은 거 보면. 어장에 담가줘서 고마워요.




총 몇번 면접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히도 많은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아예 대책 없이 떨어진다면 모를까,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듯 아찔하고 유익한 면접들이 반복되어 나는 그 면접 경험을 통해 망설임없이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결과는?


결국은 불합격이지. 얼마나 합격선에 근접했다고 한들 그 끝은 변하지 않지.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실패 끝에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혹시 내 스펙 때문인가?





내가 '비전공자도 본인이 노력한다면 전공자를 넘어설 수 있다' 등의 수많은 광고에 속아서,


내가 '겉보기적인 스펙과 학력보다는 실질적인 실무 능력이 중요하다'는 나 자신을 위한 달콤한 합리화에 속아서,


내가 '결과보다는 과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라는 기성 작가 및 크리에이터들의 달콤한 세뇌에 속아서,


'난 부족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나 자신의 가스라이팅에 속아서.



그래서 내가 애초에 되지 않을 목표를 잡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번 면접이 몇번째 면접인진 모르겠고 아무튼 난 다시 서울을 찾아왔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나는 지하철 타는 걸 싫어하는 시골 사람이었는데, 이젠 만석의 지하철에서 1시간 내내 서서 가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진 훌륭한 '서울사람'이 되었다. 이제 서울에 손님으로서 방문하는 게 아니라 소속된 주민으로 당당히 향할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서울의 지하철은 어떤 시간대이든 사람이 많다. 꼭두새벽과 늦은 밤에도 사람은 항상 존재한다. 지하철은 수다를 떠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시끌벅적하게 느껴지는 기분 나쁜 공간이다.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이방인이다. 만석의 지하철이라는 익숙한 고통에 가볍게 투정 부릴 수 있는 수많은 서울사람들과 다르게, 서울사람이라는 나의 가면은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 익숙한 척 행동하지만 나에겐 아직 모든 게 어색했다.



나는 터덜터덜 면접장에 도착했다. 건물을 들어서자 1층에 대기실이 있었다. 면접자를 위해서 설치해놓은 건지, 다른 회사가 설치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터덜터덜 대기실 소파로 걸어가 무너지듯이 털썩 주저앉았다. 대기실이라고 하기에도 좀 초라한 공간이었지만 그래도 의자가 있단 것만으로 회사에 대한 첫인상이 좋게 느껴졌다.



의자에 앉아서, 발표 대본과 면접 스크립트를 외우는 대신 약간의 생각을 했다.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흔한 생각부터 시작해서,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맞는지에 대한 생각까지.


직무가 내 적성에 맞냐, 내가 실력이 있냐를 넘어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걸 버리고 도전을 하는 게 정말 맞는 선택이었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7층을 누르고 올라간다.



면접관은 두 명이었다. 장과, 대표.


나는 지금까지 면접에 대표가 참석하는 건 본적이 없어서 조금 당황했다. 기껏해야 실무진이나 높으면 본부장 정도였지. 내가 최종 면접까지 가본적이 없어서 그런가.



아무튼, 가장 먼저 받은 질문은 이거였다.



면접은 많이 보셨나요? 공백기가 좀 긴데요.




첫 질문부터 난감하다. 상당히 불안한 냄새가 나는 질문이었다. 그래도 난 애써 잘 대답하려 노력했다.


"직무를 기획으로 바꾸고 디벨롭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 디벨롭을 했다고? 그럼 직무를 바꾼 이유는 뭐예요?"

"음.."


식은땀이 흘렀다. 면접 스크립트를 외울 마음의 여유가 도저히 안 나서 이성의 준비도 감정의 준비도 하나도 안된 상황이었다. 주 내내 연습한 포트폴리오 발표 내용도 다 잊어버린 상태였다. 는 어떻게든 돌아가지 않는 머릴 쥐어짜며 내 공백기에 대한 설명이 변명거리로 보이지 않게 애썼다.



다음 질문은 이거였다.



본인 이력서 한번 쭈욱 설명해주실래요?




예? 력서요? 포트폴리오 말씀이신가요?


"아뇨, 이력서요." 엄청 큰 회의실 TV 화면에 내 이력서가 덩그러니 송출되었다.



나는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다. 포트폴리오 발표도 아니고 이력서 발표? 전혀 준비가 안된 상황이었고 나는 어눌하게 내 이력서를 정말 '쭈욱' 하나하나 가리키며 학력부터 이력까지 부연설명을 시작했다. 이렇게 하는 걸 원하는 건가냐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장은 무척이나 지루해보였다. 말 그대로 -_- 이 표정을 시작부터 끝까지 미동도 없이 유지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대단한 포커페이스다. 그래도 이왕 한거 그만둘 수도 없고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참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그때, 갑자기 대표님이 내 설명을 중간에 끊고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데요?



나는 적당히 대답했다. 요즘 부트캠프라고 하면 다 알아들으니까. 그렇게 적당히 대답을 하자.. 갑작스럽게 무한한 질문 폭탄이 쏟아졌다.



어떤 걸 배웠는데요? 저기 두번째 줄에 쓴 건 무슨 뜻이죠? 그 교육이 우리 일이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 더 자세하게 설명해줄래요? 우리 일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계기?



어.. 음.. 계기는 제 전공에서..



그럼 전공에서 뭘 하셨나요? 우리 일이랑 연관이 있다고요? 어떤 점이? 더 설명해줄래요? 이해가 안되는데 다시 한번만?



그게.. 그겁니다. 그냥 제 졸업연구랑 이 직무랑 좀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어떤 의도로 연구를 시작했나요? 왜 시작했나요? 왜? 어떻게 했나요? 방법론은요? 가설은요? 분석은 어떻게 했죠? 결과는 유의미했나요? 무슨 뜻인가요?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더 구체적으로.



이런 질문을 면접자리에서 대표님께 속사포로 연달아 받아본다고 생각해보자. 어떨 것 같으신가?




나는 의외로 괜찮았다.


어차피 면접 스크립트도 다 까먹은 김에 난 그냥 되는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는 지금까지의 면접에서 난 내 이력서를 설명해본 적도 없었고, 내 전공과 대학 시절 했던 졸업 연구에 대한 답변을 질문받은 적도 없었다. 그야 누가 궁금해하겠어. 나 자신마저도 그 질문을 받고 진짜로 당황해서 오래된 기억을 되살리려 안간힘을 썼는데.



하지만 그 대표님은 정말 말 그대로 '쭈욱' 전부 질문했다. 내 이력서를 커다란 화면에 펼쳐놓고 한줄 한줄 읽어가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는 말 그대로 해부당하는 중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팀장님도 아무질문 파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다만 팀장님은 대표님과 다르게 필요한 질문만 짧게 하는 성격이었다. 정말 일일이 세세하게 tmi까지 다 해부할 기세라 나도 모르게 흘러가는대로 말하게 되는 대표님과 다르게, 팀장님은 특유의 -_- 표정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며 날카로운 핵심 질문을 몇개 던지던 터라 긴장의 끊을 놓을 수가 없었다.



어느덧 면접 시간은 30분이 훌쩍 지나있었다. 평범한 면접이라면 이 시점에서 이미 결과가 나와있을 텐데, 이번 면접은 아니었다. 이제 이력서 해부가 끝나고, 포트폴리오를 해부할 차례다.


그때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어차피 이력서에 요약된 내용이 있으니까 포트폴리오는 간단하게만 보고 넘어갈까요."


본인들도 시간을 많이 소비한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대표님도 동의하는 눈치로 고갤 끄덕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도박을 한번 걸었다.



"혹 포트폴리오 발표 한번만 들어보실래요?"





 

이전 24화 나를 무너뜨릴 동아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