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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휫먼 Sep 19. 2023

사라진 장아찌를 찾아서

벌들의 초대장 네 번째 초대, 장아찌 먹으러 우리 집으로 놀러 오세요!

첫 번째 벌들의 초대였던 격정의 텃밭에 다녀온 저녁, 나와 룸메이트들은 한아름 들고 온 작물들로 요리를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깻잎 장아찌다.



저희가 이 깻잎으로 장아찌 담가서 초대할게요!

깻잎 수확의 현장


갓 딴 향기로운 깻잎 향기에 한번, 가진 것을 넉넉히 베푸는 재팔 님의 마음에 두 번 반해, 우리 집에서 초대를 열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콘셉트는 텃밭의 보은. 텃밭에서 따온 작물들을 활용한 요리를 대접하기로 하였다. 재료가 신선해서일까, 장아찌의 맛은 아주 훌륭했다.


우리 집은 '논스'라는 코리빙 커뮤니티로 한 집에서 16명의 친구들과 함께 산다. 여럿이 함께 사는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은 언제나 빠르게 동나기 마련이다.


"헉! 따로 빼놨던 장아찌 누가 먹었나 봐!!"

"그럼 어떻게 하지?"


바람처럼 사라진 깻잎 장아찌


초대장을 작성하던 저녁, 나와 룸메이트들은 냉장고를 뒤지며 바람처럼 장아찌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어쩔 수 없으니 일단 다른 깻잎을 사용하기로 하고, 초대장을 마저 작성했다. 재팔 님 텃밭에서 나온 그 깻잎은 아니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알아주실 거라며 초대의 이름을 정했다. 바로 '사라진 장아찌를 찾아서'.



초대에는 나와 룸메이트들(4명), 텃밭 초대에 함께 했던 분들과(2명), 사정상 아쉽게 취소하셔야 했던 분들(2명), 자신도 함께 요리하고 싶다고 손을 든 친구(1명)까지 총 9명이 참여하기로 하였다.


초대 하루 전, 여러 번의 논의 끝에 메뉴를 한식과 베이커리 디저트로 결정한 우리는 부지런히 요리를 준비했다. 누군가는 장아찌를 새로 담그고, 누군가는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만들고, 누군가는 복숭아잼을 졸였다. 초대날 아침까지 부엌은 쉴새가 없었다. 룸메이트 Y는 무밥을 만들었고, 먼저 온 친구는 차돌야채말이를 정성스레 만들었다. 나는 무엇을 했냐고? 나는 열심히 차림표를 만들었다. 각자가 만든 음식에 개성 있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렇게 완성된 목록은 다음과 같다.


<벌들의 초대장 차림표>

사라진 장아찌를 찾아서 (깻잎 장아찌)
주는 대로 무밥 (미나리 무밥)
오 나여, 오 된장국이여 (미소 된장국)
무지개 터널 말이 (차돌 야채 말이) 
해체주의 마리네이드 (토마토 마리네이드)
위버멘시 복숭아잼 (수제 복숭아잼)


주는 대로 무밥
무지개 터널 말이
선물받은 농작물
곰순이 님의 오이소박이


'몸만 오세요!'를 외쳤지만, 정 많은 꿀친분들은 다들 나눌 음식들을 가져오셨다. 재팔 님께서는 텃밭에서 따오신 고추를, 곰순이 님께서는 직접 만드신 오이소박이를! 심지어, 블루비 님께서는 초대에 참석하지 못하심에도 요리에 활용하라며 직접 재배하신 텃밭 작물을 선물로 주셨다. 



이제 남은 일은 이 자연을 가득 담은 식탁을 나누는 것뿐!



함께 건강한 식사와 디저트를 먹는 시간은 행복했다. 지속가능한 생태계, 먹을거리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은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이 식사가 그 외로움이나 고민을 덜어낼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좋았다.


코리빙 하우스에 함께 살고 있는 다른 친구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밥을 함께 먹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는 우리 집의 문화 중 하나는 '사랑'에 대한 글을 쓰고 서로 돌려보는 것이다. 집밥에 이어 우리가 준비한 두 번째 콘텐츠는, 바로 이 사랑글들을 함께 읽어보기!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쓰였지만, 글의 형식이나 내용은 다양하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 친구들에 대한 사랑, 애인에 대한 사랑 등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개인적인 경험들을 글에 녹여낸다. 글을 통해서 나와 룸메이트들에 대해 더 깊이 소개할 수 있었다. 후일담으로, 초대에 참여하신 한분은 '이런 공간이 있다니! 이런 사랑이 있다니!' 하며 놀라 그날 정말 열병이 나셨다고 한다. (나도 놀랐다..!)



사라진 장아찌를 찾은 사람들!


벌들의 초대장 기획자이지만, 호스트가 되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꼭 특별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집이라는 일상적인 장소에서도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초대가 가능함을 알았다. 또한, 호스트의 입장을 이해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음식을 나누었는데, 오히려 마음이 꽉 찬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초대를 열면서도 더 베풀고 싶은 이유일까? 내 주변 다른 생명들과 함께 공존하고자 하는 생각은, 어쩌면 일상에서 주고받는 마음들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다음날 날아온 정성스러운 초대 후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자연에서 온 먹거리를 가지고 식사를 대접해 주셔서 너무 맛있게 먹기도 했고, 각자가 가져온 것들이 식탁이라는 한 데에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먹거리와 사람의 공존뿐 아니라 초대받은 공간 자체가 공존 키워드 그 자체여서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사랑에 대한 귀하고 소중한 글들을 공유해 주신 것, 앞으로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아요. 사랑이란 무얼까, 쉽게 말해지고 쉽게 써진다고만 생각했는데 두 눈앞에서 본 사랑의 모습은 저 같은 조무래기한테는 충격이어서 무언가 저 스스로에게는 한 꺼풀 껍질이 또 벗겨지는 경험이었구요! 다녀와서 사랑이란 무언가 한바탕 고민하고 충격을 쓸어내리고 되묻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번 초대가 아니었다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니 그렇지 않았을 것 같더라고요(언젠가 한다고 해도 조금은 먼 미래였을 것 같아요).

공존과 사랑은 앞으로 더더 자연과 우리 사이에서 꼭 필요한 가치가 될 것 같은데, 나부터 시작한 사랑이 더 멀리도 퍼져나갈 수 있는 걸 테니. 몸소 사랑을 체험한 이 경험이 앞으로 제가 세상과 자연을 그리고 제 주변을 사랑하는데도 큰 영향이 되어줄 것 같아요. 앞으로 한동안은 사랑에 대한 물음표를 가지고 살지 않을까요? 다시 한번 너무너무 좋은 충격이 되어준 경험을 선사해 주셔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소 사랑을 체험한 이 경험이 앞으로
제가 세상과 자연을 그리고 제 주변을 사랑하는데도 큰 영향이 되어줄 것 같아요.
앞으로 한동안은 사랑에 대한 물음표를 가지고 살지 않을까요?




이번 초대에서 배운 점 / Learning Point


좋은 초대는 좋은 초대를 부른다.

일상적인 공간에서도 자연을 나누는 초대를 열 수 있다.

이번 초대에 활용하라며 농작물을 후원(선물) 받았다. 지난번에 발견한 '후원자' 역할의 가능성이 '돈'에서 더욱 확장되었다. 공간 / 물품 / 기술 등 다양하고 재밌는 후원이 가능할 것 같다.



'벌들의 초대장'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벌들의 초대장' 꿀벌과 인류의 공존을 꿈꾸는 커뮤니티 '댄비학교'에서 시작된 기획으로,

내가 사랑하는 자연으로 친구들을 초대하는 릴레이입니다.


● 기획 의도가 궁금하시다면, 시리즈 첫 글을 읽어보세요!

● 초대에 참여하거나 직접 초대를 열어보세요!



'댄비학교'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댄비학교는 꿀벌과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꾸며, 꿀벌의 멸종 위기를 알리고 ‘공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자 탄생한 커뮤니티입니다. 

서로를 꿀벌 친구들, ‘꿀친’이라고 부르며,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꿀벌처럼 ‘공존을 위한 나의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댄비학교의 비전은 “모든 사람들이 꿀벌의 친구가 되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영감을 전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 댄비학교 가을학기에 참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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