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육아시 2 1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NJ May 07. 2024

어린이날


  마지막 수업을 끝내고 학원을 나서니 밤 10시가 훌쩍 넘어버렸다. 장대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빵집을 향해 뛰었다. 하트가 잔뜩 박힌 25,000원짜리 초콜릿 케이크를 골랐고 초 1개를 요청했다. 밖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신선한 비 내음을 한숨 가득 들이켰다. 그제야 일터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택시 뒷좌석에 본 홈캠 속 아기는 쿨쿨쿨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아기의 첫 어린이날은 아빠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끝났다.


 우리는 5월 6일 아침, 하루 늦은 어린이날 기념식을 열었다. "어린이날 축하합니다~" 아기는 촛불을 보고 눈이 땡그래졌고, 아기 엄마가 초를 '후' 불어서 껐다. 주인공은 이유식을 먹었고 우리는 아기 덕분에 촉촉한 초콜릿케이크를 아침으로 먹었다. 불가피했던 아빠의 부재를 만회하기 위해서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섰다. 유모차에 묶인 2시간, 아기는 한숨도 자지 않은 채 세상을 구경했다.


 처음 가보는 동네 마트에서 아기는 인기 스타가 되었다. 모든 종업원들이 아이를 보고 활짝 웃었고, 한층 텐션이 오른 부자는 신나게 동네를 질주했다(시속 5km/h 정도 되었으려나?). 금세 체력이 고갈된 아빠는 벤치에 앉아 얼마 전에 읽기 시작한 '월든'을 꺼냈다. 한두 장 읽었을까, 아이가 심상찮은 표정으로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빠, 나의 어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나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욕심은 아기띠 30분 노역형으로 귀결되었다. 아기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고, 나는 텅 빈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린이는 항상 어른에게 세 가지를 가르칠 수 있다. 
이유 없이 행복하고, 
항상 무언가 바쁘고, 
원하는 모든 힘으로 요구하는 법을 아는 것이다.

파울로 코엘뇨


 

이전 17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