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일본의 스타벅스

by RNJ



40도에 육박했던 일본의 끔찍한 더위 속에서도 아이는 "안아!" "안아줘!" "안아줘! 아빠!"를 연발했고, 두 남자는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와중에도 코알라처럼 뱃가죽을 꼭 붙인 채 낯선 교토 시내를 돌아다녔다. 더위를 많이 타는 아내는 유모차에 달린 미니 선풍기에 의존해 간신히 이성의 끈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도를 보기에도 지쳐버렸다. 그때 땀에 절어버린 여행자를 유혹하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모강 건너편에서 세이렌이 우리를 보며 "이리 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바로 스타벅스였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스타벅스가 문을 두드린 나라이다. 1996년에 첫 매장이 도쿄에 문을 열었고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가장 사랑받는 카페가 되었다(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중국 다음으로 스타벅스 매장이 많은 나라이다). 담배냄새와 반지하 마냥 어두컴컴한 실내로 입장을 망설이게 하는 일본식 찻집인 킷사텐과는 달리, 스타벅스는 개점부터 현재까지 금연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며 신세대와 여성 손님으로부터 절대적인 충성을 받고 있다. 우리는 교토 산조 오하시점에만 이틀 연속으로 방문했는데 교토에 둘 뿐인 콘셉트 스토어이자 맛 좋은 리저브 매장이며, 테라스에서 보이는 가모강은 아라시야마의 가쓰라강만큼 아름다웠다.


리저브 메뉴판과 시간제한이 있었던 테라스 자리

가게 내부는 노트북을 두드리는 현지인과 주머니 속의 동전을 탈탈 털어내는 외국인으로 가득했고, 검정 앞치마를 두른 커피마스터는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느라 두 손 두 발이 부족해 보였다. 처음 방문한 날에는 자리가 없어서 생애 처음으로 카페의 바-테이블에 앉아서 리저브 매장 한정 커피를 홀짝거렸다. 에스프레소 투샷에 생크림, 바닐라와 화이트 모카 시럽을 뿌린 Bitter cream coffee는 2025년 여름부터 판매한 따끈한 신상 메뉴였는데 한 모금 마시자마자 일본을 떠나기 전에 한번 더 마시리라 다짐을 했다. 아이는 처음 보는 망고 케이크를 꿀떡꿀떡 잘도 삼켰고,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찰나의 여유를 즐겼다.


그때부터 우리는 여행 중 슬슬 힘이 부치기 시작할 때 "스타벅스나 갈까?"라는 말을 농담처럼 내뱉곤 했다. 아이가 안전벨트로 삼았던 아빠의 두 팔은 무게 초과로 인하여 진동벨처럼 달달달 떨리고 있었고 저녁만 되면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그럴 때마다 스타벅스를 떠올렸다. 카페의 의자 위로 쓰러진 엄빠가 시원한 얼음과 카페인으로 뇌를 강제로 깨우고 있을 때 아이는 <타요>를 보며 잠시나마 독립심과 안정(?)을 되찾곤 했다.



해가 완전히 지자 가모강변에 우뚝 솟은 식당의 테라스에 하나둘씩 불이 켜지기 시작했고, 낮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인파가 강변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니시키 시장과 축제가 벌어지는 가모강변은 금세 시끌벅적 해졌고 검색을 해서 찾아간 회전 초밥집은 웨이팅 시간이 자그마치 200분이었다. 우리는 스타벅스 테라스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차례를 기다렸고 한국과 그다지 맛 차이가 없는 회전 초밥집에서 와구와구 저녁을 해치웠다. 이렇게 더운 나라에서 어찌 살아가나 싶었는데 땡볕 아래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다니던 사람은 모두 관광객이었음을, 해가 진 가모 강변을 걸으면서 깨달았다.


익숙한 카페와 평범한 산책, 그리고 기계로 찍은 듯한 밍밍한 회전초밥. 특별할 것이 없었던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주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여행에 지쳐있었고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던 쉼표가 필요했다. 따분한 일상은 여행을 부르고 예측불허의 여행은 단순명료한 일상으로 해소된다. 아이가 '용눈이'라고 부르던 애착인형을 여행 내내 들고 다니던 것처럼 익숙하여 설렐 것 없는 프렌차이츠 카페는 바로 지친 부모의 애착인형이 아니었을까.


* 히토츠(1개), 후타츠(2개), 밋쯔(3개)만 제대로 알아들어도 주먹만 한 스콘이 3개가 준비되는 참사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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