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손님의 성

니조성

by R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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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원과 기온마쓰리(출처 : kyoto travel)

교토에는 7월 한 달 동안 열리는 기온마쓰리라는 축제가 있다. 고대의 일본인들은 수도를 휩쓸었던 흑사병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신에게 기원제를 지내곤 했는데 이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축제가 기온마쓰리이며 자그마치 794년부터 황궁 정원으로 이용된 신천원에서 시작되었다. 신천원에는 지하의 용천수가 흘러나와 만들어진 자연 연못이 있는데 유용한 식수원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기우제를 지내는 신묘함이 서린 장소이기도 했다. 용왕신을 모시는 황궁의 정원은 에도막부를 창건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니조성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대폭 축소되었고 현재는 몇 채의 건물과 작은 연못 하나가 남아있다. 그리고 관광객이 주는 먹이를 먹고 비대해진 잉어 수십 마리가 이곳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니조성의 천수각은 낙뢰와 화재로 수차례 피해를 입었고 지금은 돌계단과 몇 개의 벤치만이 빈터에 남아있다. 니조성은 오다 노부나가가 최후를 맞이한 장소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황으로부터 쇼군의 지위를 인정받으며 일본의 정상에 올라선 기념비적 공간이다. 그리고 약 250년 동안 일본을 지배했던 에도 막부의 시대의 마지막 페이지인 대정봉환이 이루어진 장소이기도 하다. 대정봉환의 주역 중 하나였던 사카모토 료마는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통치권의 반환이 이루어지고 한 달 만에 은신처에서 암살을 당하고 만다. 료마의 이유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세상에 태어난 이들이 누구였는지는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관광객이 교토 외곽의 절과 신사를 둘러보느라 니조성은 잘 찾지 않는다. 텐류지나 금각사, 기요미즈데라와 같이 천혜의 풍광을 자랑하는 명소들과는 달리 시내 한복판에 있는 니조성은 학교와 주택가에 둘러싸여 있으며 일반 관광지의 2~3배에 가까운 비싼 입장료가 다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이는 만성적인 재정난에 시달리는 교토시가 니조성을 직접 관리를 하기 때문인데, 일본 역사에 관심이 크지 않은 이상 찾아오기 쉽지 않은 니조성은 도심 속의 외딴섬이 되어버렸다. 니조성 팸플릿에는 문화재 복구를 위해 기부금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황이 기거하는 교토 황궁을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는 높고 화려한 니조성을 지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였고, 해자를 깊게 파고 수많은 감시탑을 세웠다. 그러나 니조성은 거의 사용되지 않은 채 이백 년 가까이 방치되었다. 이곳에서 막부로부터 권력을 돌려받은 천황은 1889년 대일본제국헌법을 바탕으로 권력의 정점에 오르나 2차 대전의 패배로 80년 가까이 소유했던 권위를 상실하고 만다. 다이묘들이 교토에서 힘을 겨루었던 시대는 완전히 끝났고 새로운 수도인 도쿄가 일본의 새로운 권력이 되었다. 도쿄권의 GDP는 교토를 포함한 오사카부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전체 GDP마저 뛰어넘었다. 천황마저 오래된 고향집을 버리고 신도시인 도쿄의 황거로 떠나버렸다.


혼마루 어전

니조성의 바닥은 울퉁불퉁한 자갈이 깔려있고 계단 옆에 따로 경사로가 없는지라 유모차나 휠체어를 동반하여 방문할 만한 곳은 아니었다. 자갈밭 위에서 소가 쟁기질을 하듯이 유모차를 밀고 다녔고 땀이 비 오듯이 흘렀다. 니조성과 혼마루를 둘러싼 두 개의 해자엔 녹조가 가득하여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자판기에서 잉어밥을 구매한 관광객들은 다리 아래로 찾아온 잉어들에게 먹이를 던져주었다. 주인 없는 성을 차지한 잉어들은 손님이 주는 밥을 먹으며 빈둥빈둥 몸을 키우고 있었다.


일본의 빈집이 자그마치 900만 채를 넘어서며 새로운 사회 문제로 부상하였는데 오래된 성마저도 이러한 운명을 피해 가지 못하는 모양이다. 쇼군조차 찾아오지 않았던 고성은 종종 변혁의 심장이 되어 새로운 피를 힘차게 뿜어냈으나, 절대권력이 무너지고 분산되는 과정에서 신성과 정당성이 계속해서 의심받았으며 새로이 힘을 잡은 세력 또한 전임자의 모습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었다. 볼 장을 다 본 역사의 수레바퀴는 이곳에서 멀리 떠나버리고 말았다. 니조성이 휴화산인지 사화산인지, 아마 한동안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은 5월 5일이면 잉어 모양의 깃발인 코이노보리를 곳곳에 세우는데 황허를 거슬러 오른 잉어가 용이 되었다는 등용문 설화를 뿌리로 삼은 오래된 전통이다. 아이들이 성공과 행복을 이루기를 염원하는 부모는 후대의 세상이 해자보다는 강물에 가깝길 바란다. 물은 흘러야 썩지 않고 잉어는 강물을 거슬러야 용이 된다. 뒤뚱뒤뚱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막힘없이 흐르는 강의 시대가 오래오래 지속되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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