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과 노랑 사이

by RNJ



망할 구글맵!


폭이 1m도 되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로 우리를 이끌더니 지금은 공사장 앞에 우리를 던져놓았다. 도로는 모두 깨어져있었고 인부들은 자재를 옮기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 길을 지나갈 수 없다면 거의 30분 정도를 빙- 돌아가야 했다. 그때 가장 연장자로 보였던 한 아저씨가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아, 뒤로 돌아가라는 뜻이구나. 우리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아저씨는 다시 손짓을 했다. 이건 분명 이리 오라는 신호다, 그런데 저 공사판을 유모차를 가지고 어떻게 지나가지?


아저씨의 말 한마디에 공사가 멈췄고 가장 젊어 보이는 남자가 우리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아무런 말 없이 유모차를 덥석 잡은 다음에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일정에 없던 가마 타기 체험을 한 아이는 신이 났고, 우리를 도와준 젊은 남자는 나의 감사 인사에 살짝 웃은 다음 다시 일터로 돌아갔다. 공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포장되지 않은 길을 1분 정도 오르니 작은 대나무숲이 펼쳐졌고 숲의 끝에 거대한 주홍색 도리이가 서있었다. 이 길은 센본 도리이로 가는, 주민들이 이용하는 숨겨진 지름길이었다.


영특한 구글맵! 고마운 인부들!



면적이 야구장의 20배가 넘는 후시미이나리 대사는 이나리신을 모시는 신사다. 전체 신사의 25%, 30,000개소의 신사에서 이나리신을 숭배하는데 이곳은 신사들의 우두머리인 총본사에 해당한다. 후시미이나리 대사는 신도들과 함께한 1,3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증명하는데 바로 끝이 보이지 않는 주홍색 터널, 센본 도리이이다. '1,000개의 도리이'라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그 열 배인 10,000개에 가까운 도리이가 신사를 향해 오르는 산도를 따라 이어져있다.


작은 도리이는 이백 만원, 큰 도리이는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봉납해야 세울 수 있다. 신사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이 끝이 보이지 않는 자본주의 도리이의 길을 2시간 가까이 거슬러 올라야 하며 경사길에 계단까지 많아 덥고 습한 여름에는 등정이 쉽지가 않았다. 후시미이나리 대사는 예로부터 조정에서 주관하는 기우제나 오곡풍작을 기원제를 주관하였으며, 지금은 사업이 번창하길 바라는 기업과 가족의 행복을 비는 수많은 시민들이 이나리신 참배를 위해 이곳을 방문한다.


센본도리이를 소개할 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게이샤의 추억>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장면을 미국의 세트장에서 소화하였지만 어린 주인공이 센본도리이 속을 뛰어가는 모습은 교토까지 와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영화의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이름조차 몰랐던 주홍색 도리이의 도열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쉽게 재현할 수 없는 공간, 이런 장소는 유모차를 번쩍 들어 올려서라도 찾아올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아이가 잘 걸을 수 있는 다음에 오는 것을 '강력'하게 두 번 추천한다.

신사에 입구에 세워진 누문은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봉납으로 지어졌다고 하는데, 어머니 오만도코로의 쾌차를 빌며 신사에 거금을 헌납했다고 한다. 무자비했던 쇼군이 '효자였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만 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오사카로 입조 시키기 위한 대가로 어머니를 도쿠가와 진영에 인질로 보내버렸다. 이에야스의 부하들은 혹시나 주군이 오사카에서 변을 당할까 봐 두려워 오만코도로의 거처 주변에 기름 먹인 나무를 가득 세워두었다고. 다행히 도쿠가와가 도요토미에게 고개를 숙임으로써 오만코도로는 무사히 아들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인질 역할은 물론이고 자애로운 시어머니이기지 했던 그녀를 도요토미는 지극정성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르막길 한편에는 기이하게 생긴 소나무 뿌리가 있는 작은 제단이 있다. 한 이묘가 봉분모양으로 쌓아 올린 흙더미에 소나무 길렀고, 소나무가 충분히 자란 다음에 흙을 걷어내 뿌리를 노출시켜 만들었다고 한다. 뿌리의 이름을 직역하면 '오르는 뿌리'가 되는데 상승의 이미지가 생긴 덕분에 일본에서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성지순례처럼 찾아오는 명소라고 한다. 상태가 좋지 않은 00 전자 주식을 생각하며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살짝 훔쳤다(놀랍게도 두 달 뒤, 삼성전자는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월가 앞에 세워진 '돌진하는 황소' 동상에는 사진을 찍고 색 바랜 황소 불알을 만지는 아주 세속적이며 외설적인 전통이 있는데, 이곳에선 뿌리 아래를 쪼그려 통과하면 관절이 튼튼해진다고 하는 인본주의적인 전설이 남아있다.


* 센본도리이는 계단이 많아 유모차로 오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절 입구에 따로 보관을 하거나 입구가 아닌 출구로 오르는 방법이 있다. 출구의 완만한 경사로를 이용하면 제법 높은 곳까지 계단 없이 올라갈 수 있다. 따로 입장료를 받지 않은 신사라 가능한 방법.



일본 신사의 입구에는 쵸즈야 또는 데미즈야라고 부르는 손 씻는 공간이 있다. 오른손으로 국자를 잡아 왼손에 물을 붓고, 손을 바꿔 오른손을 씻은 다음 다시 손을 바꿔 입을 한 번 헹군다. 마지막으로 국자를 세워 손잡이를 씻은 다음 내려놓는데, 이 복잡해 보이는 의식은 멸균과 오염을 명확하게 구분 짓는 의료진의 무균법 아주 유사하다. 깨끗이 손을 씻고 제단 앞에 놓인 종을 흔들어 이름 모를 신에게 우리의 방문을 알렸고, 아이를 생각하며 짧게 기도를 올렸다. 누군가 신에게 더위를 물리쳐 달라 빌었는지, 토리이와 제단 사이로 난 좁은 골목으로 산바람이 불어들었다. 날 교토의 기온은 또다시 40도를 넘었다.


갈증이 나서 들린 산도의 마지막 상점에선 생수 500ml를 5,000원에 판매하고 있었고, 충격적인 가격과 정상까지 1시간 넘게 산행을 해야 한다는 안내판을 보고 충분히 둘러보았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편의점보다 신사가 많은 나라이니 무리하지 않고 얇아진 지갑을 생각하며 하산하기로 하였다. 힘들게 올라온 길을 터덜터덜 내려갈 때 아이는 도리이 하나하나를 손으로 어루만졌고, 내려가면서 처음 본 도리이 뒤편에는 기증자의 이름과 주소로 보이는 한자와 가나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출구에는 거대한 여우상이 서있었다. 이나리 신의 사자는 여우의 모습을 빌렸다고 한다.


종종 아이의 아침밥으로 내어주는 유부초밥이 일본어로 '이나리-즈시'이다. 바로 이곳에서 모시는 신의 이름과 신의 사자인 여우가 좋아하는 튀김인 유부를 합친 음식이 바로 유부초밥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절 입구에는 유부초밥을 판매하는 가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이는 몰랐겠지만 이곳은 우리가 사랑하는 아침 메뉴의 고향 큰집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부초밥을 제외한다면, 주홍색빛의 화려한 외관과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토속 신앙에 기반한 고대의 종교 시설을 색적인 타국의 문화라 느낌에 아무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후시미이나리 대사는 한반도 도래인인 하타 씨가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도래인은 벼농사 기술, 그리고 여우신앙과 함께 낯선 열도에 뿌리를 내렸다. 특히 신라에선 여우가 풍요와 처세의 상징이었고 고대의 이나리신은 대장장이를 돕던 신이라고 하니 굴러들어 온 돌과 박힌 돌이 지의류처럼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새로운 신앙이 어난 것이다. 이나리신은 이질적인 두 문화를 망치로 내려찍어 단단히 합금시켰고, 여우신은 농경이라는 풍요를 선물한 신의 사자로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도리이의 신비로운 주홍색 색감은 수은을 머금은 주석칠을 함으로써 완성되는데, 서역에서 들어왔다고 추정되는 이 염료는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달되었다.


우리가 일본스럽다고 생각하는, 혹자는 왜색이라 낮춰 부르는 오래된 색감은 우리가 오래전에 잃어버린 색깔일지도 모른다. 유화는 여러 번 덧칠을 할수록 입체감이 생기고 장(醬)은 충분한 숙성과정을 거쳐야 제 맛과 향이 탁월해진다. 포용과 조화는 1,000년의 유산을 만들지만 무지와 갈등은 청산할 수 없는 마음의 빚을 만든다. 신사 지름길 입구에서 함께 유모차를 들어 올렸던 이름 모를 청년과 나는 균형을 잡느라 뒤도 옆도 아닌, 오직 정면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한동안 짊어지고 걸어야 하는, 다음 세대의 주인공인 어린 아들은 뒤뚱거리는 어른들을 보며 환히 웃고 있었다.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한 몸처럼 움직였고 덕분에 포장되지 않은 흙길을 무사히 건너갈 수 있었다.


신사로 이어지던 마을 주민들의 숨겨진 길, 그곳은 과거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었다. 바로 미래로 나아가는 오래된 지름길이었다.


구글맵, 여긴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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