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의 기념비

우메다 스카이빌딩과 아베노하루카스

by R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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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향수병에 걸린 아내를 위하여 전례가 없던 프로젝트를 지시한다. 당대에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었던 바빌론 공중정원은 진흙벽돌로 지어졌는데 높이가 20m가 넘었으며 테라스마다 귀한 꽃과 나무를 심어 멀리서 보면 작은 산처럼 보였다고 한다. 영광의 시대에 높이가 100m에 가까운 거대한 지구라트가 새로이 보수되었고 시민들을 감명시킬 위대한 판테온이 건설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황금기의 절정에 이른 도시는 거대한 사치재를 탄생시킨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마천루다.


오사카를 대표하는 마천루가 여럿 있겠지만 오사카를 다녀온 관광객이라면 우메다 스카이빌딩과 텐노지의 아베노하루카스를 떠올릴 것이다. 1993년, 경제 호황의 막바지에 구상된 173m의 우메다 스타이빌딩은 경제 침체로 기존의 프로젝트가 대폭 축소되었다. 이로 인하여 4개의 마천루가 2개로 줄어들었고, 살아남은 두 건물 사이에는 독특한 전망대가 설치되었다. '더 타임스'는 '천공의 섬 라퓨타'를 모티프로 건설된 신-공중정원과 우메다 스카이빌딩을 세계의 건축 TOP20에 선정하였다.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오사카의 야경과 낙조가 특히나 아름다워 '일본의 석양 100선'에 뽑히었고 준공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관광객이 꾸준히 찾는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 우메다 스카이빌딩은 주유패스가 있다면 3시 이전에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출처 : 우메다 스카이빌딩 공식 홈페이지


2013년 여름, 우메다 스카이빌딩 동남쪽으로 약 7km 떨어진 텐노지 지역에 높이가 300m에 달하는 아베노하루카스가 새로이 준공되었다. 전망대에 자그마치 3층을 할애한 마천루는 최고층인 60층에서 한 층 씩 내려오며 오사카의 빛나는 야경을 바라볼 수 있게 설계되었다. 그중에서도 백미라 할 수 있는 60층 전망대는 4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 있는데 지면에서는 체감할 수 없는, 지평선에서도 끝나지 않는 오사카의 광활함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날, 아름다운 야경을 보며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아베노 하루카스에 방문했다.


전망대 입장료는 20,000원으로 제법 비싼 편이지만 저녁 피크 시간대에는 엘리베이터 앞에 긴 대기줄이 생긴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처음 개장했을 때 입장료 수익이 임대 수익을 넘었다고 하는데, 전망대를 마천루의 자존심이자 캐시카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에베레스트 등산 '허가' 비용에만 이천만 원 태우는 사람이 있듯이, 고지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은 언제나 많지만 정상은 협소할 수밖에 없으니 부르는 게 값일 수밖에.


* 간사이 조이패스가 있다면 시간에 상관없이 무료입장. 사전 예약을 하면 마천루의 끝인 헬리포트에도 다녀올 수 있다.



하루카스 300에 오르기 위해서는 16층까지만 운영되는, 폐소 공포증이 절대로 생길 수 없는 초대형 엘리베이터를 탄 다음에 라운지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갈아타야 한다. 최고급 고층 아파트에 주로 설치되는 미쓰비시 고속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자그마치 10m/s. 유리로 마감된 천장으로 벽을 따라 설치된 푸른 조명이 보이는데 비행선을 타고 우주로 날아오르는 듯한 상승감이 아주 생생히 느껴진다. 60층에 도착하면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 환히 빛나는 오사카를 만날 수 있다.


아이는 마감시간이 될 때까지 전망대를 빙글빙글 돌아다녔고 우리는 아이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다 완전히 지쳐버렸다. 데스크 직원들은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았고, 우리가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건담 포토존에서 우리의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잠시 숨을 고른 아이는 다시 전망대를 빙긍빙글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우리와 달리 언제나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논다. 그래서 아빠처럼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는 모양이다. 근심도 체력도 남아나질 않으니. 아빠는 잠든 아이의 볼에 진하게 입술 도장을 찍은 후에 노트북 앞에 앉는다. 그리고 남겨놓은 에너지를 꺼내어 밀린 작업들을 하나씩 처리한다.



내가 태어난 1995년,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은 1월 중순에 간사이 지역에 최악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한신-아와지 대지진으로 약 6,000명에 달하는 시민이 사망했고 이는 일본의 대도심이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첫 번째 사례였다. 일본에서도 손꼽히던 항구 도시 고베는 이를 계기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동일본 대지진과 마찬가지로 일본 시민들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기게 된다. 아베노 하루카스는 고베시에서 직선거리로 약 20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일본은 매년 1,500건 정도의 지진의 나라이다. 그럼에도 자국의 기술력을 믿은 일본 정부와 시공사는 항공 규제 완화와 용적률 인센티브를 적용해 한동안 일본의 최고봉 자리를 차지했던 마천루를 세웠다. 2018년에 발생한 강도 6.1의 오사카 지진에도 꿈쩍하지 않은, 바빌론 시대의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불가사의가 지각판의 교차점 위에 건설된 것이다.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한신-아와지 대지진 피해지인 효고현 출신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담긴 명문장이다. 인간이 사용하는 완벽함이라는 수사에는 언제나 여지라는 모순점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이유를 알 듯 모를 듯한 기쁨과 슬픔의 정념에 잠식된 채 살아간다. 도심의 불빛 너머로, 어둠 속에 잠긴 지평과 하늘의 접점을 바라볼 때 헤밍웨이가 떠올랐다. 인간은 파괴될 뿐,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했던가. 잠들지 않는 도시 속에 우뚝 세워진 마천루는 자연에게 승리할 순 없으나 패배하지 않겠다는 인간들이 남긴 숙명의 실천이자 과거로부터 남겨진 불패의 기념비가 아니었을지.


* 하루카스 300의 화장실은 꼭 한 번 이용해 보길. 오사카에서 가장 비싸고, 높고, 전망이 좋은 화장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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