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 중인 아토모스에서는 매월 첫 번째 주가 되면 채식 주간 이벤트를 한다. '채식 주간'이라는 말에 뻑적지근한 비건 행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이벤트는 소소하다. 이 이벤트 기간에는 우유가 들어가는 모든 음료는 추가 금액 없이 오트밀 변경이 가능하고, 1L 오트밀을 할인 판매하는 것이 전부다. 이런 이벤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우리 부부가 매월 첫 번째 주에 채식 지향 식사를 하고 있기 때문으로 매장 방문객들도 비건을 쉽게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나는 잡식 인간이지만 육식주의자로 표현하는 것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육류를 좋아한다. 원룸에서 혼자 사는 동안 배달음식으로 1인분 삼겹살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부지런히 파절이를 무쳐 삼겹살을 구워 먹곤 했다.
내용이 궁금하여 구입했던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은 오랫동안 책장의 장식물로 존재했다. 책을 읽고 나면 채식을 해야 할 이유가 생길 것 같았지만 자신이 없어 책을 펼칠 수 없었다. <육식의 종말>이 책으로써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비건 실천의 7가지 유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채식 유형의 7가지에는 전반적으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지만 경우에 따라 육류나 생선을 먹는 플렉시테리언(Flexitarian)부터 엄격한 채식을 하는 비건(Vegan)까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 이 유형을 보고 난 뒤 아주 조금은 채식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채식해볼까요?
육고기러버인 나는, 나의 현실적인 채식 가능성을 가늠해 본 뒤에야 <육식의 종말>을 펼칠 수 있었다. <육식의 종말>은 계급적이고 과시적인 육식 문화의 시작과 자본적 축산산업으로 인한 복합적인 문제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난 뒤 남편에게 "할 수 있는 만큼 채식을 해볼까요?"라고 물었다.
<육식의 종말> 이후 두 권의 책을 더 읽게 되었는데 어쩌다보니 두권 다 선물을 받아 읽게 되었다. <아무튼, 비건>은 저자가 비건을 시작하게 된 개인적/사회적 요인과 비건을 실천하는 것의 의미와 방법, 그리고 비건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있다. <나쁜 비건은 어디든 가지>는 이전에 읽은 두권의 책과는 결이 다른 책으로 페미니스트이자 비건을 실천하는 두 사람의 대담집이다. 주류문화에서 벗어나있는 삶의 방식과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겪는 고민과 마음의 부침 등을 이야기한다.
내 주변에는 각자의 방식으로 채식을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교적 엄격한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페스코 채식을 하지만 지인과의 치맥은 포기할 수 없어 가끔 치맥은 허용했고, 어떤 이는 생협에서 판매하는 육류만 먹겠다고 했다(동물을 고려한 축사에서 키워지기도 하고 가격이 비싸니 고기를 조금은 덜 먹게 될 것 같다는 이유에서).
이성이 욕망을 완전히 이기기는 쉽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선택한 채식이 바로 월간 채식이다. 하루 한 끼 채식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아주 조금은 연속성 있는 채식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적당한 부담감으로 '월간 채식'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해산물과 달걀, 유제품을 먹는 페스코(Fesco) 혹은 달걀과 유제품까지 허용하는 락토(Lacto) 채식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2020년 9월 월간 채식을 시작했다.
나는 부산 출신인 것이 무색하게 해산물(어묵, 잔멸치도 거의 안 먹는)을 좋아하지 않아 큰 노력 없이 락토 베지테리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첫 주만에 나의 최대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육고기를 못 먹으니 평소에 먹지 않던 해산물이 들어간 음식이 먹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채식 주간 동안에는 몇 가지 맛(짠맛, 매운맛, 기름진 맛)이 간절해졌는데, 이 맛들이 대부분 육류가 들어간 음식에서 맛볼 수 있는 맛이었던 것 같았다. 우습게도 나는 육류를 해산물로 대체하여 부족한 맛을 채웠다. 몇 번의 채식주간을 겪고 난 뒤 부족한 맛을 채울 수 있는 음식을 한, 두 끼만 먹어도 채식주간이 덜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콩기름 맛이라도 봐야겠어.
처음 팔라펠을 먹은 것은 홍대 인근의 브런치카페였는데, 맛있었지만 가격 대비 성에 차지 않는 양에 병아리콩을 구입하여 집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병아리 콩을 불려 고수와 큐민을 듬뿍 넣은 반죽을 기름에 튀겼다. 그리곤 살사 소스, 샤워크림, 샐러드와 팔라펠을 함께 먹으니 다양한 맛을 한 번에 즐길 수 있었다. 팔라펠 반죽을 오븐에 구워 본 후에 알게 된 것은 고깃기름 대신 콩기름 맛이라도 봐야 성에 차는 맛이 난다는 것. 여하튼 팔라펠은 나에게 채식을 하며 짠맛, 매운맛, 기름진 맛을 모두 늘길 수 있게 하는 메뉴이다.
채식 주간에 즐겨먹는 메뉴 중에는 커리도 있다. 커리 전문점에는 다양한 야채 커리가 있어 맛있게 채식을 할 수 있는데 야채 커리 중 특히나 알루 고비와 머라이 코프타를 좋아한다. 알루 고비로는 매운맛을 머라이 코프타로는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즐긴다. 이 두 메뉴는 채식 주간이 아니더라도 틈틈이 떠오르는 맛이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종종 즐긴다. 채식을 하는 일주일 중 한 끼를 이 두 메뉴를 먹고 나면 부족한 맛이 채워져 채식 주간이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이 외에도 매운맛을 채우기 위해 떡볶이를 먹을 때도 있고, 짜고 매운 국물이 먹고 싶을 때는 채식 라면이나 우동 등을 먹을 때도 있다. 몇 해 전부터는 오뚜기, 풀무원, 삼양에서도 비건라면이 출시되어 대기업의 맛을 고루 돌려먹는 재미가 있다. 단점이라면 채식 주간에는 평상시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게 되어 탄수화물 섭취가 대폭 증가한다는 것. 이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번 7월에는 더운 날씨 덕에 밑반찬을 만들기도 귀찮고 밥맛도 없어 라면과 우동으로 채식주간을 보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실천 방법들이 있고, 과거에 비해 다양한 채식 음식이 있어 실패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채식을 시도하기 수월한 것 같다. 그리고 나와 같이 육류를 좋아하는 육식주의자에게는 '육식 줄이기' 관점으로 채식에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아! 월간 채식을 하고 나서 가장 크게 변한 나의 습관은 냉장고에 고기를 쟁여놓지 않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