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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21. 2024

정성 어린 개화기 건축물 답사

서울 건축 여행

김예슬 지음 / 576쪽 / 26,000원 / 파이퍼프레스



100년 전인 1920년대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였지만 한편으로는 개화기이기도 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세계사의 무대 위에 첫 데뷔를 하면서 봇물이 터지듯이 서양의 신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새로운 신문물에 바다 건너 서양에서 왔다는 뜻의 ‘양’자가 붙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새롭게 들어온 서양의 건축양식인 양옥의 모습은 어땠을까?


애석하게도 우리의 개화기는 일제강점기와 얽혀있지만, 조선의 백성이 모두 일본식으로 살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사람들은 여전히 상투머리에 한복을 입고 조상 대대로 살던 한옥에 살고 있었다. 다만 그 시기 서서히 변화의 바람도 불고 있었으니 시내 곳곳에 조금씩 양식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경성역(현 서울역사박물관),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그때 일본이 지은 것은 유럽식 건물이었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서둘러 근대화를 이루면서 유럽의 발달한 문명을 받아들였고, 이를 식민지 조선에도 이식했다. “동양에서 먼저 진보한 나라가 아직 그렇지 못한 나라와 서로 연합하여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논리로 침략을 정당화한 것이 그들이었다. 조선에 지어지는 건축 역시 일본식이 아닌, ‘진보한 나라의 양식’이어야 했기에 진보한 나라인 서양식 건물이 이 땅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어진 당시의 건물이 완전한 유럽식도 아니었다. 그때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서는 동도서기(東道西器), 중체서용(中體西用),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말이 유행했다. 서양의 발달한 문명과 기술은 단지 도구로서 받아들일 뿐, 동양의 정신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때 지어진 건축들은 한 지붕 아래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동서 절충식’이 많고, 이것이 독특한 개화기 양식을 형성한다. 『서울 건축 여행』은 바로 이러한 건축들을 직접 발로 답사하여 쓴 책이다.

경교장 전경

백범 김구 선생의 주택으로 알려진 경교장의 본래 이름은 죽첨장이다. 일제강점기 금광으로 큰돈을 벌었던 최창학이 지은 유럽식 주택으로 건축가는 조선인 김세연이었다. 그래서 이 집은 1층에는 서양식 거실, 2층에는 일본식 다다미방이 있을 뿐 아니라 마당 한편에는 한옥까지 갖추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김구 선생이 귀국하자 최창학은 주택을 선생에게 헌납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선생은 4년도 채 살지 못하고 1949년 6월 26일, 2층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이후 주택은 여러 번 주인이 바뀌며 역사적 부침을 겪다가 2013년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비록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지만 선생이 손수 지었던 ‘경교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임시정부 사무실로 사용되던 때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또한 일제강점기 천재 시인이던 이상은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였다. 그가 1926년부터 1929년까지 제도함을 들고 다녔을 경성고등공업학교의 교사는 대학로에 있는 “구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청사(현 방송통신대학교 역사관)”였다. 건물 이름은 중앙시험소였지만 실제로는 1916년부터 경성고등공업학교가 사용했고, 이상도 이곳에서 공부했다. 건물은 유럽의 귀족 저택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흰색의 2층 건물인데,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여기서 열일곱의 이상은 일본어로 떠들썩한 계단과 복도를 오갔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세상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이 만나던 개화기였으며 건축 역시 그러한 시대상을 온몸을 받아내고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건물들에 대한 섬세하고 정성 어린 보고서이다. 


서윤영_건축칼럼니스트, 『대중의 시대 보통의 건축』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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