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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Sep 28. 2021

진짜 이웃을 만난 적이 있나요?

전원주택의 이웃사촌들


마음을 다친 채 전원주택에 이사를 왔습니다.


아이의 난치성 질환 자체도 견디기 괴로운 것이었지만, 사실 가장 큰 상처는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었죠.


아이의 민머리를 힐끗 쳐다보는 사람들.

왜 이렇게 늦게 머리를 밀어줬냐며 돌 전에 밀어줬어야지, 라고 훈수를 두는 어른들.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아이와 비교를 하며 안심을 하는 듯했던 다른 엄마들.

얘 머리카락 왜 없어요?, 라고 천진난만하게 질문을 하는 아이들.


그들이 건넨 말과 질문에 대한 답을 차마 할 수 없었던 적이 많습니다.

내 아이의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닌데도,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도 말이예요.

하나를 대답하면, 또 하나의 질문이나 조언이 금세 날아들어 가슴에 비수를 꽂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움츠러 들었습니다.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운 채로

거북이처럼 딱딱한 등껍질 속에 연약한 살들을 감춰 버렸습니다.


가뜩이나 추운 겨울,

마음도 꽁꽁 얼어붙었던 그 겨울,

2019년의 그 겨울은 제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추운 2020년 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누군가를 마주치게 되고 놀이터만 가도 누군가가 꼭 있었던 게 싫었던 그 때의 저는,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내 집과 내 마당이 생긴 것이 참 기뻤습니다.

다른 것보다 여긴 내 땅이야, 아무도 들어오지 마,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주차도 내 땅에 하고, 아무도 마주치지 않고 집으로 휑하니 들어가 버릴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들이 노는 마당엔 아무도 없다는 것, 그게 그렇게 안심이 되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참 별거 아닌데, 그 땐 그게 특별하고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사온 날에,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떡은 돌렸지만, 저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선을 긋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긴 내 구역이예요, 허락없이 들어오지 마세요.’ 웃으면서도 그런 눈빛을 보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의 아이들이 다 그렇듯, 둘찌가 제멋대로 동네 여기저기를 막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아무때나 남의 집 마당에 들어가고, 아무한테나 말을 걸어버리고.

아이가 넘어질까 걱정이 되어 그 뒤를 졸졸 따라다녔지만, 할 수 없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지만,

사실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이사 오기 전 아파트에서처럼 모르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신기한 건 다들 아이 머리카락이 왜 없어요?, 라는 쉬운 말을 한 번도 묻질 않으시더라고요.

10가구 남짓 살고있는 저의 전원주택 마을엔 50대 이상의 어른들만 살고 계셔서 그런지, 마냥 우리 아이들을 예뻐해주셨어요. 제 또래의 엄마들과 우리 아이들 또래 아이들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장점으로 다가오다니요. 아무 조건과 비교없이 그냥 예뻐해주셨습니다.

동네를 걸어다니다 마주칠 때, 차를 타고 올라가다가도 마주치면 창을 내려서도 아이들에게 인사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냥, 그런 게 참 신기했습니다.



아파트에서는
옆집에 누가 사는 지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예요.



아파트에서 이웃이란 우연히 근처에 살게 된 사람이면서,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를 바라는 존재였어요. 최소한 저한테는 말이죠.

저도 최대한 피해를 끼치지 않겠지만, 여러분도 매너를 지켜주세요, 그런 사이였달까요.

서로가 어떻게 살고 있는 지는 사실 관심이 없었죠.

제 탓인지, 운이 없었던 건지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에 30년 정도 살면서 이웃다운 이웃을 만나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름대로는 반갑게 안녕하세요, 인사는 했지만 그 뿐이었죠.

그나마 아이가 태어나고 뛰어다니면서 아랫집에 일부러 미리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양해를 구하고, 연락이 오면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는 그런 일련의 소통을 했죠.

그 정도의 인연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아파트에서의 이웃이란.



그런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눈만 마주쳐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밭에서 딴 싱싱한 농작물이나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서로 나누고,

누군가의 근심을 걱정해주고,

공동의 문제가 생기면 서로 해결방법을 모색하는,




그런 이웃들을 처음 만났어요.




전원주택이라는 특성상,

아파트보다 이사를 잘 가지 않죠. 이사를 갈일이 없다는 것이 더 맞을까요.

은퇴를 앞둔 분들이 전원주택을 짓고 살게 된다는 것이 그런 의미일테니까요.

그래서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와서 이웃이 중요하다는 말들을 하는 것 같아요. 이사를 오면서 한 번 인연이 시작되면 굉장히 오랫동안 얼굴을 부딪혀야 하는 관계가 되니까 말이예요.

그래서 전원주택에서는 특히 주변에 누가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을 보면 감사하게도 저는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따뜻한 이웃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얼어붙은 마음으로 지냈던 아직은 추운 어느 주말에,

이웃분들이 호미와 꽃잔디를 두손 가득 들고 오셔서 저희집 아래 축대 바위 틈에 꽃잔디를 심어주셨어요.

우리 가족이 동네 산책을 다녀 오는데, 어느새 오셔서 벌써 일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집에 없는 것 같아서 몰래 서프라이즈로 해주려고 했는데, 마주치고 말았네!”, 하면서 멋쩍게 웃고 계시는 이웃분들.

어쩌다, 무작정 전원주택에 이사를 오게 되어, 얼어붙은 마음도 녹이지 못해서 축대 관리고 뭐고 아무것도 손도 못 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짠, 하고 슈퍼맨처럼 나타나셔서 해결을 해주셨어요.

그 이웃 부부분들의 순수하고 멋쩍은 웃음을 보며 언 마음이 슬쩍 녹아 버렸습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사람으로 치유가 되더라고요.









여기 사는 분들은 부부끼리 사이가 참 좋아 보여요.


손을 잡고 저녁마다 동네 한 바퀴 운동을 가는 모습,

반려견의 줄을 끌며 같이 산책을 가는 모습,

쓰레기를 정리해서 동네 쓰레기장으로 함께 들고오는 모습,

부부가 늘 함께하는 모습들에서 웃음이 묻어납니다.

큰 일도 별 일 아닌 듯 털어버릴 수 있는 여유가 묻어납니다.


여기로 이사오니까, 저도 그렇게 살게 되더라고요.

가끔은 여전히 남의 상황과 비교를 하기도 하고, 번아웃상태로 넉다운 되기도 하고, 일터에서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집으로 들고 올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파트때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게 되었어요.


옥수수나 시금치, 포도를 들고 먹어보라며 오시는 동네 아줌마들과 일상의 대화를 나누다 한바탕 웃어 릴 수 있고, 젠가 갑자기 전기가 나가버렸을  단톡방에   마디에 우르르 집으로 달려 오시던 동네 아저씨들의 도움에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아무때나 당신마당에 들어가도 “ 동네가  찌자매네 집이지. 아무때나 와서 놀아.”라고 웃어주이웃 분들 덕분에 얼어붙은 마음이 많이 녹았습니다.

내가 먹을  하나도 키우지도 못했던 저희에게 진짜 지식들을 많이 전해주신 덕분에 작년과 올해 풍성한 식탁을 만날  있었어요. 자급자족의 삶을 처음 알게 되어서 정말 뿌듯하고 특별했죠. 책으로 배웠던 지식보다도, 이게 진짜 지식 같았거든요.



겨울같던 마음에

그렇게 봄이 찾아왔어요.


  주변 지인들이 모두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대화만 누던 때에 기가 빨린  동네 돌아오면, 꽃과 채소와 고양이에 대한 대화를 나눌  있는 이웃분들이 계셔서  좋았습니다.


진짜 쉼과 진짜 삶의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그냥 좋았어요.



이곳에서 이웃분들의 삶에 대한 여유있는 태도와 일상의 감사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따뜻한 봄비에 땅이 천천히 젖어들어가듯이,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주변을 향기롭게 만들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더라고요.


난생처음,
진짜
이웃사촌들을 만났습니다.



이웃분들이 작년 봄에 심어주셨던 작은 꽃잔디가 올해 봄엔 몰라보게 풍성해졌더라고요.


내년 봄의 꽃잔디를 기다리며,


앞으로도 오래오래 우리 마을에서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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