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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Sep 13. 2021

배민 음식배달과 마켓컬리 샛별배송이 안되는 집

산책과 전원주택의 새벽 단상




가을,

참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전원주택에 살지만 퇴근하고 저녁해서 먹이고, 정신없이 두 아이들을 챙기다보면 마당에 나가지 못하고 하루를 마감할 때가 많아요.


지난 몇 주 가을 비가 참 오래도 왔어요. 그래서 더 가을 마당과 전원을 즐기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길고 긴 가을 장마가 끝난 어느 날,

동네 산책을 꼭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섰습니다.

어느덧 벼가 많이 자랐어요.

오랜만에 보는 파란 하늘과 초록초록한 논에 눈이 시원해집니다.


우리집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의 어느 밭에,

누군가 열심히 키워 놓은 커다란 해바라기도 보고,


동네 어귀에 벌써 밤송이들이 떨어져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또, 놓치고 있었네요.
이 가을을.



집에 돌아와 앞 산을 바라보니,

정말 밤나무의 밤송이들이 초록에서 갈색으로 색을 바꾸고 있더라고요.



얼마전 정원에 심어 놓은 천일홍과

천일홍 주변을 빙 둘러 씨를 뿌려놓은 코스모스가

어느새 정말 많이 자랐습니다.

특히, 코스모스는 키가 천일홍 만해졌더라고요.

계절과 자연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어요.


갑자기 봄,

갑자기 여름으로 가는 게 아닌데,

정신 차리고 그 순간, 순간을 즐기지 않으면 어느새 갑자기 가을을 맞이하게 됩니다.


꽃봉오리부터 신기하게 바라봤어야 하는데,

갑자기 꽃이 만발했네?, 라는 생각이 들면

또 제가 놓쳐버린 거죠.

그 계절을 말입니다.


전원에 사는 일은 도시보다 마음을 놓게 만들지만,

열심히 계절과 그 계절에 맞춰 변해가는 자연을 관찰해야만 그 진가를 만나게 됩니다.



자연과 계절에 마음을 놓으면
그 변화를 놓치기 쉬워요.



계절과 자연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우리를 불러 주지 않으니까요.







어느 날은 산책 나갔다오니 마켓컬리 택배 배송 마감 시간인 8시를 넘겼어요.

카레랑 그래놀라를 사려고 했는데 말이죠.

내일 사야겠다 하고 있는데 새로운 공지가 보입니다.

저희집 주변 동지역에 샛별배송을 하게 되었다는 글이었죠.


비슷한 지역에 살고는 있지만 역시 우리집은 안 들어가네요.​ 주변 친구들은 이미 편하게 배송받고 있다고 해요. 마켓컬리 샛별배송이든 쿠팡 로켓프레시든 말이죠.

전원에 산다는 건 이런 편리함과는 멀어지는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만큼 다른 것과는
가까워 지는 일인 건 알고 계신가요?
(아마도 자연적인 행복에 가까운)







퇴근 후 아이들 밥 먹이고 설거지하고 조금 놀아주고 하다보면 9시 넘어 애들 재울 때 같이 누워 그냥 잠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엔 애들 재우고 다시 일어나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체력은 거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오늘은 새벽 다섯시에 깨 버렸어요. 그것도 정신이 아주 맑게 말이죠.

다시 누워서 잠을 청해볼까 하는데, 도통 닭과 새소리에 잠이 들 수가 없네요. (아파트에서는 밖에 자동차 소리가 잔뜩 들렸던 거 같은데, 이 곳의 아침은 닭과 새소리가 들립니다.) 다시 오지 않는 잠을 포기하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먼저 요즘 키운지 얼마되지 않은 미니비숑 솜이에게 밥을 주고, 똥을 치우고 배변 패드를 정리합니다.


그리고는 바로 마당냥이들한테 나가봐요.

현관을 열면 다다다 다가오는 티티를 만날 수 있습니다. 티티의 새끼들도 엄마따라 걸어오죠.


고양이들 밥을 그릇에 담아주는데 시원하고 맑은 공기가 방금 산소호흡기를 낀 것처럼 충분히 공급됩니다.

그 덕에 정신이 더 또렷해져요.


티티 밥도 챙겨주고

고개를 들면,

아직 달이 떠 있는 하늘이 보입니다.


가로등도 아직 꺼지지 않은 새벽입니다.


그런데 벌써 해가 뜨려고 준비 중이예요.

핑크빛 하늘도 너무 예뻐요.


오랜만에 일찍 일어나서 해 뜨기 전 새벽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 호사를 누립니다.


새 소리도 서라운드로 실컷 들으면서요.


이름도 알 수 없는 여러 새들의 지저귐이 어떤 노래보다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것 같아요. 물론, 이렇게 주변에 다른 소음은 없을 때 말이예요.



배민 음식배달과

​마켓컬리 샛별배송은 안 되지만,​

이렇게 새벽에 시원하고 맑은 공기와

싱그러운 숲내음과

새소리가 다이렉트로 배송되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

아직은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이 새벽을,

새와 닭이 우는 소리를 들으며,

나무내음이 나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조금 더​

오롯이

혼자 즐겨보려고요.


그러기 위해서

먼저,  글을 마쳐야겠습니다.



모두, 좋은 가을날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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