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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Mar 16. 2022

전원주택 3년차 봄정원의 시작, 봄맞이 꽃씨 심기

씨앗으로 꽃을 볼 수 있을까요?

봄이 왔어요.

적막했던 산에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벌이 날아듭니다.


날이 한층 따뜻해지자, 조급한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먼저, 꽃씨를 주문했습니다.

올 해 정원은 유튜브의 정원 고수님들을 따라해보려고요. 올 봄, 저의 도전 과제는 정원 늘리기와 꽃씨 파종입니다.

유튜브 여러 개 보고 참고해서, 봄에 파종할 씨앗들을 샀어요.

백일홍, 루드베키아, 샤스타데이지, 수레국화, 구름초, 바니테일, 팜파스 그라스, 리아트리스, 매발톱, 안개, 스토크, 접시꽃, 천일홍, 루피너스, 해바라기, 러시안세이지, 스카비오사, 허브 딜과 라벤다, 레몬그라스를 구입했습니다.

확실히 무엇을 시작할 때 저는 욕심이 앞서는 편인 것 같아요.

남편은 오래 고민하고 하나씩 실행하는데, 저는 해보고 안 되면 다른 걸 도전해보자, 하고 시작부터 욕심을 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좋은 말로 표현하자면 도전적이고 부딪히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전원주택 3년차쯤 되니까, 정원을 좀 더 크게 만들어 보고 싶어졌어요.

제 마음대로 금을 그어놓았습니다.

전원주택에 이사와서 이게 참 좋았어요. 마당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 텃밭도 내 마음대로 줄이거나 늘릴 수도 있고, 정원 크기나 모양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죠.

내 땅인데 망치면 또 어떤가요.

사실 또 자연은 참 고마운 게, 사람이 만들어낸 콘크리트, 시멘트 이런 걸 쓰지 않는 이상, 작물을 심거나 꽃을 심는 것, 나무를 심는 것과 같은 걸로는 망치게 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인위적이지만 않으면 초보가 해도 그럭저럭 볼만해지는 것 같아요. 물론, 저의 초보티를 숨길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따뜻해지는 날씨에 마음이 조급해진 어느 주말, 본격적으로 정원 늘리기에 돌입했습니다.

작년에 황하코스모스와 아스타를 잔뜩 키워놓았던 옆 땅에서 좋은 흙을 옮겼어요. 그 곳엔 판석을 깔아서 바베큐 장소나, 쉼터로 쓸 예정이거든요.

와, 그런데 가끔 할 때마다 삽질의 고됨을 잔뜩 느낍니다.

삽으로 흙을 퍼서 수레에 싣고, 늘릴 정원의 위치에 가져다 붓고… 같은 일의 무한 반복.

그리고 흙을 평평하게 펴 주었습니다. 이제, 사구석을 사서 경계석으로 예쁘게 만들 생각이예요.


정원 늘리기는 이만큼 하고, 얼른 꽃씨를 심을 차례입니다.

정원 늘리기 작업에 욕심을 쏟으면 오늘 내로 꽃씨를 못 심고 끝날 수도 있기 때문에, 더 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 놓고, 상토와 꽃씨, 그리고 파종할 포트를 옮겨 왔어요.

일단, 포트에 상토를 채우고 트레이 위에 올려 놓았어요. 그리고 이제 물을 흠뻑 주고, 씨앗을 심으면 됩니다.

심을 씨앗이 많은데다가 씨앗 크기가 달라서 천천히 씨앗의 특성에 맞게 심느라고 오래 걸리더라고요.


다 심었으면 물을 흠뻑 주고, 이름표를 꽂아줍니다.


포트에 심지 않고, 노지에 직파할 씨앗들은 아이들을 시켰어요.

둘찌한테는 수레국화를 첫찌한테는 루드베키아와 샤스타데이지를 줬는데 본인 성격따라 심는 모습이 제각각입니다.

첫찌는 조심조심 계획적으로 심고, 둘찌는 마구 뿌리네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둘찌 씨앗만 새싹이 쏙 올라왔더라고요. 성공률은 좀 더 지켜봐야겠어요. ㅎㅎㅎ)


제가 포트에 심은 씨앗들은 이제 20-25도의 온도를 맞춰주기 위해 집 안으로 데려왔습니다.

트레이에 물을 부어 저면관수를 시켜주고, 위에는 비닐을 덮어주어 수분의 증발을 막아주었어요.


그리고 사실 잊고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고 비닐 틈으로 새싹들이 보이는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비닐을 걷어 보았더니,

이렇게 많은 새싹들이 잘 자라주었어요.


사실 정원가로는 초보라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심어놓고, 물만 잘 줬을 뿐인데 이렇게 알아서 얼굴을 보여주니 참 고마워요.


작년 가을에 황하코스모스도 노지에 씨앗을 뿌려 놓았을 뿐인데 참 잘 자라주었거든요. 그 덕에 정말 황홀한 가을 정원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한 일은 별로 없는데 가을의 장관을 허락해준 자연, 참 고마워요. 사실, 이건 텃밭도 마찬가지예요. 심어놓고, 물만 주었는데 봄과 여름, 가을까지 풍성한 먹을거리를 주었죠. 상추, 깻잎, 고추, 방울토마토… 싱싱하고 건강한 먹거리들을 참 많이 내어주었습니다.


자연과 가까이 살면서 사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구나,를 매순간 깨닫습니다.

우리가 욕심을 부려봤자 사실 결과는 하늘에 달려있는 일이 많더라고요.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노력을 할 뿐이죠. 그리고 그냥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하늘에 맡겨야 합니다.

제가 욕심을 부려서 꽃씨 잔뜩 심어도, 모종을 잔뜩 텃밭에 심어 놓아도 사실 안 자랄 수도 있으니까요. 첫 해에 엄청 많은 수확을 거뒀던 블루베리가 사실 작년에는 많이 달리지 않았거든요. 한 해를 거른다는 말도 작년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냥 결과를 받아들이고, 내년을 기약해야 해요.


전원주택 1년차때는 왜 계획대로 안되지? 왜 빨리빨리 안 되지? 이런 답답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2년차, 3년차가 되면서 성장한 게 있다면, 점점 쓸데없는 욕심을 내려 놓고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제가 하고싶은 대로 계획을 세우고 해 보지만, 이게 잘 될지 안 될지는 제 소관이 아니더라고요. 잘 되어도 제 덕이 아닌 것처럼, 또 한편으로 좋은 건 못 되어도 제 탓이 아니라고 마음의 짐을 탁, 벗어던질 수 있는 부분이 생겼다는 거예요.


그 전에는 잘 되어도 제 덕, 못 되어도 제 탓이었거든요. 생각해보면 어떤 일이 잘 되었을 때 제 덕으로 기분 좋았던 적은 별로 없는데, 안 되었을 때 스스로를 탓하고 못살게 굴었던 적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루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하지만, 기다릴 줄도 알고 결과를 초연히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결과라도 초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자세가 사실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여러분도 지금 여러분을 구속하고 있는 무거운 그 짐을 조금 내려 놓으시길.

뭐가 되었든 여러분 탓이 아닌 일이 많아요.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늘 그자리로 돌아와주는 고마운 이 봄을 산뜻하게 맞이해 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이 새싹들을 좀 더 큰 모종으로 성장시키고, 정원에다가 심게 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날들을 여기 이곳에 많이 나누어 볼게요.



이전 13화 얼마전에 위 내시경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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