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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Feb 28. 2022

얼마전에 위 내시경을 했습니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텨온 당신에게


 얼마전에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습니다.

위 관련 가족력도 없고, 위 하나는 튼튼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온 인생인데, 요즘들어 위와 식도의 불편감을 자주 느꼈거든요.

여행지에서 신나게 그곳의 음식을 즐기지 못하고 일상의 식사에서도 불편감을 느끼게 되던 차에, 그림책 전시회에서 윤지회 작가의 위암 투병기에서 다시 한 번 큰 울림을 받아  결심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내시경 검사를 예약하고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겁니다. 별거 아닌 검진인데도, 생각해 보니 받은지 5년이 넘었더군요. 첫째때만해도 중간 중간 받았던 것 같은데, 둘째를 낳고는 모유수유 끝나면 한 번 받아봐야지, 하다가 연이어 터지는 둘째의 건강 관련 이슈들에 이렇게 많은 해를 넘겨 버렸습니다. 아이 둘을 낳고 키우다 보니 아무리 자식을 위해 살게 된 인생이라지만, 내 몸인데 참 자만하고 묻어뒀구나 싶었습니다. 아이를 위해 이사를 하고, 아이들을 위해 밥을 짓고, 아이들을 위한 물건들을 사고… 그렇게 저도 여느 엄마들처럼 살고 있었던 겁니다.

내시경 검사를 예약하고 나서는 이제부터라도 내 몸을 위한 인생을 좀 살아보자,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서운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크게 불편하거나 아프진 않은데, 덜컥 큰 병이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검사 전날엔 문득문득 찾아오더군요. 나 하나 사는 건 그나마 포기할 수 있는데, 이 어린 아이들을 두고 떠나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감 마저 들었습니다. 혹자는 말도 안되는 기우에 불과한 상념이라고 하겠지만, 불안감이 높고 예민한 저한테는 확실히 어떤 나쁜 이벤트가 있을때마다 별의별 생각이 끝에서 끝까지 찾아오곤 했습니다.


이럴 때 제일 좋은 해결책이 뭔지 아세요?

일단 끝까지 가보자, 하고 생각하는 겁니다. 혹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걱정의 끈을 탁 놓는 것. 그게 제일 좋더라고요.

일단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검사 받고 생각하자,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겁니다. 걱정을 하다하다, 내 걱정으로 나아지는 게 없다면 그냥 놓아버리세요. 언제나 그랬듯, 운명은 나랑 상관없이 알아서 굴러가니까요. 그게 마음이 편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내시경 검사를 받았습니다.


감사하게도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역시 기우였습니다. 전날 백 번 제 걱정을 들었던 남편은 옆에서 그것보라며 핀잔을 줬지만, 저는 다른 것 다 상관없이 안도감만 느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나를 챙겨야겠구나, 그런 생각과 함께요. 그래서 그 이후 바로 식단관리에 돌입했습니다. 전원에서 배달음식 없이, 좋은 것을 요리해서 먹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보니, 냉동실에 차 있는 간편 조리식품들과 간간히 포장해오는 식품들, 아이들 입맛에 맞춘다고 튀기고 단 음식을 많이 요리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결심했죠. 이게 나도 챙기고, 우리 가족 건강도 챙기는 길이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려 조금이라도 맛있게 더 먹여보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건강한 제철 채소들을 더 많이 상에 올려서 나도, 우리 가족도 먹게 해야겠다, 그런 결심을 했습니다.

저의 장점이라면 장점인 것이 어떤 벽에 부딪혔을때 바로 해결책을 뭐라도 찾아서 실천해보는 것 이거든요. 그러니 또 일단 뭐라도 해봐야죠. 해보다 안되면 또 다른 방향으로 턴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저희 부부는 14시간 공복을 유지하고, 저탄수화물과 고단백, 그리고 아주 많은 채소를 먹기에 돌입했습니다. 안하던 달리기도 시작했습니다. 거창하게는 체력에 자신이 없어서 15분, 20분만이라도 달리고 걷기로 했어요. 가족들과 함께하는 밥상에는 전보다 많이 채소가 올라왔습니다. 저도 장을 볼 때 채소 코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공식품과 냉동식품 코너는 지나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달라져야 아이들의 식습관도 달라질테니까 조금 더 귀찮을지라도, 조금 더 노력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내시경 검사를 예약하기 전 약국에서 식도염 약을 한 번 구입한 적이 있어요. 남편보고 좀 사다달라고 했더니, 남편이 사다주면서 이러더군요. 약사님이 식도염은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고 요즘 뭔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냐고 묻더라고요.


스트레스?


그래서 오랜만에 나의 스트레스는 뭘까, 생각을 해 봤습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육아에서 오는 기본적인 스트레스… 외에 솔직히 쓸데없는 걱정거리들(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하나도 기억에 나지 않을만한)은 늘 끼고 살죠. 예전에 공황장애 비슷한 걸 겪었을 때, 동생에게 스트레스가 없다고 말했더니 그런 말을 해 준 적도 있었습니다.

 “누나, 스트레스가 늘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상황이 스트레스라는 걸 모른다는 거야. 늘 스트레스풀해서, 늘 레벨이 높은 상태의 그래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 더 큰 스트레스가 오지 않는 이상 자각을 못하는 거지. 누나도 그런 거 아냐?”

그 말에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그게 맞는 얘기였거든요.

예전부터 좋게 말하면 완벽주의, 나쁘게 말하면 걱정이 많은 성격이었어요. 직장에서 발표라도 할라치면 그 전날까지 완벽하게 준비를 하면서 일어날지도 모를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했습니다. 사실 그 다음날은 준비했던 A-Z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적이 많은데도 말이죠. 그러면 최선을 다해서 잘 끝냈다, 하고 안도를 하지만 제 스트레스는 솔직히 필요하지 않은 부분들에서도 받고 있었던 거죠. 직장에, 상사에게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겠지만(물론, 후배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다고 칭찬받을 수도 있겠지만), 저 자체에게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일들을 굳이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 자신을 잘 알고, 많은 부분을 저를 위해서 살았다고 자부하던 인생이지만, 어쩔 수 없이 커다란 스트레스는 남을 위해서 사는 경우에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말이예요. 좋은 딸에서 시작해서 좋은 학생으로, 좋은 직장인으로, 좋은 선배로, 좋은 엄마로… 그렇게 제 역할만 늘려왔던 것 같습니다. 이게 바로 임포스터의 한 예일 수도 있겠네요.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오면서, 그 시기에 많은 고통을 받고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많은 가면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성격이라서,
요즘의 상황이
더 없이 불안하게
다가오는것 같아요.



일단 코로나19가 이제는 불편감을 넘어서 공포감으로 다가오고 있죠. 확진자 수 10만이 훌쩍 넘는 수치를 우리나라에서도 보게 되다니,(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고, 전문가들은 이미 예측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이 엄마라서 적잖은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괜찮지만, 내 아이만이라도 무사히 지나가길. 혹시 확진이 된다고 해도 경증으로 무탈히 지나가길, 그런 기도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당연하게 친구를 만나는 일상, 사람들과 술 한잔을 기울이는 일상,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가끔의 행복들이 모두 어려워진 지금,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방법들이 달라져 버렸죠. 이 최첨단을 달리는 시대에 마스크 없이 자유로운 보행이 힘들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끔씩 예전의 여행 사진을 볼 때, 그 다름이 확 다가오더라고요. 여러 명이서, 해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사진을 찍었던 당연한 상황 자체가 참 대단하고 낯설게 느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날아온 지구 저 편의 전쟁 소식.

전쟁을 야기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나라, 나하고 연결고리가 없는 국가의 소식일지라도 안타깝고 두려워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같기 때문에, 지구 여러 곳에서 전쟁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노랗고 파란 조명들이 켜진다고 하죠.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처럼 전쟁상황도 2022년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예요.


기우로 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이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2022년입니다. 코로나 팬데믹도 마찬가지지만, 얼른 전쟁이 끝나서, 더 이상의 인명피해가 없길 바랍니다.


이런 거대하고 위험천만한 상황들 속에서 한낱 인간으로 살고 있으니 어떻게 스트레스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작고 소소한, 크고 작은 우리 인생 속의 스트레스는 일상 속에 늘 산재해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살아야 하기에, 한 발 앞으로 발걸음을 디뎌야 하기에, 용기를 내 봐야죠. 당연했던 일상의 테두리가 타의로 인해 좁혀져도 일단은 그 안에서 내 작은 행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일상이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삶이 변화해버렸지만, 일반 사람들이 추구하는 사랑과 소통같은 보편적이고 가장 큰 가치는 변하지 않을테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이 버거운 하루를 잘 버틴 모니터 너머의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저 오늘 하루도 잘 버텨 왔다고.

내일은 조금이라도, 무언가라도 좋아질 거라고.


그렇게 되지도 않을 위로일지라도,

진심을 다해 작은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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