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처럼 겨울을 기다리기
제 생일 즈음이 되면 이미 가을의 한가운데 입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긴팔티셔츠를 넘어 외투를 꺼내 입는 시기, 옷장을 열어 작년에는 뭘 입고 다녔는지를 찾고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시기. 마당 한 가운데서 흐드러지는 꽃을 뽐내고, 초록초록한 무성한 잎들을 자랑하던 벚나무가 그 많던 잎들을 다 떨궈내고 휑하니 서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뭐, 조금 있으면 제대로 단풍도 들고, 마을 초입의 커다란 은행나무가 노오란 금빛 위용을 떨치겠지요.
그리고 제 브런치가 많이 채워지는 가을입니다. 이상하게도 여름에는 글이 하나도 안 써져요. 브런치로부터 '작가님이 사라졌습니다.'라는 알림까지 받았으니 이번 여름엔 정말 오랫동안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뭘 쓰고 싶었지만, 뭐 도저히 분위기가 잡히지 않으니 그냥 흐르는대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어요. 정기적으로 올려야한다는 압박감에 아무거나 제 공간에 올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이런 글을 시작으로 이번 가을과 겨울엔 열심히 달려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가을이 되면 확실히 창 밖으로 보이는 마당의 정원도, 숲도, 산도 너무 쓸쓸해져서 집 안을 꾸미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얼마전에는 용인의 오랑주리 정원생활에 다녀 왔습니다. 실내 정원이 정말 멋지더라고요.
그리고 제 손에 남은 전리품들.
정원용 장갑과 가위는 언제나 탐나는 물건이죠. 그리고 정원에서 쓰면 딱일 모자까지.
그리고 너무 귀엽고 멋진 식물들을 데려왔습니다. 하나는 거실에 하나는 주방 아일랜드 식탁에 올려두었어요. 그것만 해도 벌써 실내가 조금 채워진 기분이 듭니다.
계란을 사 온 것만 같은 포장 안에는 샐러드 씨앗들이 들어 있어요. 바로, 샐러드 씨앗 키트랍니다.
손끝이 야무진 첫찌가 그날 저녁에 잘 심었어요. 이렇게 지피필렛에다 심으니 확실히 편합니다. 잘 자라서 수확하는 날이 얼른 오길.
생각해보니 이제 스토크를 키워야 하는 계절이예요.
작년에 구입한 곳에서 얼른 스토크 씨앗을 구입했습니다.
겨우내 집 안에서 향기로운 꽃을 오래도록 볼 수 있다고 해서 키워 봤는데, 작년에 정말 만족스러웠거든요. 작년에는 늦게 씨앗을 심어서 12월 넘어서야 꽃이 피었는데 올해 봄까지 계속 집에서 꽃이 피고지고를 반복하면서 아름다운 풍경과 값비싼 디퓨저도 흉내내지 못할 향기를 계속 선사해주었습니다. 정말 고마웠어요. 그리고 나서는 따뜻해져서 마당에 심었는데, 그 후로도 나름 오래 꽃을 피워주더군요. 자그마한 씨앗으로 6개월은 꽃을 만나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씨앗을 구입했습니다. 올해는 그래도 스토크 2년차니까 재빠르게 준비를 시작해서 다행입니다.
정원을 가꾸면서 매번 느끼는 건, 노력한다고 모든 게 성공적이지는 않다는 거예요. 제가 습도와 온도를 잘 챙겨줬다고 해도 결국 꽃이 피는 것은 이 아이들의 마음이더라고요.(물론, 제가 전문적인 가드너가 아니라서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요.) 또, 미리 생각한 것과 다르게 키가 자라는 것도 있고, 생각보다 꽃이 빨리 져서 갑자기 정원 한 가운데가 휑해져 버리는 경우도 있죠. 모든 게 사람의 마음처럼 되지는 않더라고요. 열심히 키우고 가꾸며 하늘에 맡길 뿐입니다. 그래서 부디 올해도 저에게 스토크의 멋진 향기와 아름다운 꽃을 허락해달라는 바람을 전할 뿐입니다.
꽃 한송이, 그것도 꺾이거나 잘라져 있지 않은 생명이 지속되고 있는 꽃은 볼 때마다 많은 감흥을 주는 것 같아요. 스토크를 키워보니 한 봉우리에서 꽃이 피고 지면, 또 다른 봉우리에서 꽃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당장에 예쁘던 꽃이 지고 있다는 절망이 아니라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꽃이 아름답게 피어 오를 거라는 희망을 줘요.
올 해 제 생일에 엄청난 계획은 없지만, 스토크 꽃씨를 심으려고요.
그렇게 우리 가족의 멋진 겨울을 준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