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끝자락에서 새로 배우는 것들
어느덧 전원에서의 3년째 가을입니다. 그런데 이번 가을은 더 특별해요. 왜냐하면 제 30대의 마지막 가을이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참 많이 달려온 것 같아요. 학창시절을 달려 직장인으로, 그리고 결혼과 육아로. 그렇게 서른아홉까지 달려왔습니다. 돌아보니, 제 30대는 거의 출산과 육아만 하다 끝난 것 같습니다. 바라던 현재를 벅차게 살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절망하고, 미래를 막막해하며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30대의 끝자락이네요.
그런데 사실 이것도 얼마전에 교수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생각이 났지 뭐예요. 그 전까지는 이 계절이 제 30대의 마지막 가을인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고보니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는 엄청난 감상에 시달렸던 것 같은데, 서른아홉은 다르더군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서른이 되는 것에 비해 마흔이 되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의미로는 얼른 나이를 먹고 싶기도 합니다. 이 번뇌와 고민들에서 좀 해방이 되고 싶어서요. 지나고 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닐, 이 시기의 고민들과 걱정들에서 해방이 되고 싶은 것이 맞겠지요. 그래서 '올해도 이제 달력 몇 장 안 남았네.'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미 부여를 하니까 진짜 30대의 마지막 가을이더라고요. 나는 그때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떠나 책을 쓰셨다는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야말로 '현타'가 왔습니다.
'응? 나는 왜 아무렇지 않았지?'
'30대의 마지막 가을이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네.', 하고 말이죠.
그런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다들 사정은 비슷하더라고요. 저만 무감각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학창시절 떨어지던 잎새에도 까르르 웃고, 눈물을 짓던 그녀들도 이제는 덤덤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언제부터 감상을 누군가에게 뺐겨버린 걸까요. 아니면, 스스로 이런 것쯤은 필요없다고 어딘가에 던져버린 걸까요.
전원에 와서 사실 다시 감상을 찾기도 했었는데, 현실 속에서 쳇바퀴도는 일상을 살다보면 어느새 그 감상이라는 스위치가 꺼져있는 것을 발견하곤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면 이미 마당의 벚나무잎이 안녕을 고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작년에 폴킴의 찬란한 계절을 들으며 마음이 아리던, 그 계절이 다시 찾아왔어요.
이번 가을은 서른아홉의 가을이라는 것말고도, 또 새로운 것들을 여러 개 알게 된 가을이기도 합니다.
사진의 손톱만한 수박이 보이시죠?
마당 한켠에 어느새 보니 수박이 자라고 있었어요. 심은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누군가 수박을 먹다가 뱉어놓은 씨앗이 저렇게 자라난 것 같아요. 제대로 심은 것도 아니고, 이 계절도 수박을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서 제대로 자라지 않겠지만 스스로 자라난 생명이 너무 탐스럽고 귀엽게만 느껴졌어요. 그리고 장미는 다시 꽃을 피웠습니다. 전원에 살기 전까지 이 때 자라나는 장미는 그냥 봄에 펴야 하는 것을 잊은 돌연변이정도로 생각을 했었는데, 그 온도와 습도가 되면 한 해에도 두 번 꽃이 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습하고 더워 지내기 힘들었던 지난 여름에 제라늄은 한창 아름다운 꽃을 선사해주었는데, 이제 저는 살기 편한 온도가 습도가 되었지만 제라늄은 꽃이 피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는 그 시기, 저마다의 맞는 온도와 습도가 다르다는 거죠.
또, 저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또 몰랐던 저를 발견했던 가을이기도 했습니다. 많이 다듬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부족한 면을 발견하게 되었죠. 이렇게 어리숙한 채로 마흔이라는 땅을 밟아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유연하게, 웃는 얼굴로 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몇 년간 펼쳤다, 덮었다만 반복하던 '사피엔스'를 제대로 읽어낸 가을입니다. 한창 소설을 탐닉하던 20대를 지나 라이트한 육아서적과 실용서적에만 꽂혀있던 30대를 지나, 대학원에 와서 다시 진지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뇌의 가소성을 다시 한 번 스스로 느꼈던 올 가을이었어요. 안 읽히던 것이 읽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가을이었죠. 감상적인 에세이 정도만 쓰다가 부족하지만 조금이나마 전문적인 지식의 글을 쓸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 가을이기도 했어요.
이렇게 여러 이야기를 한 마당에, 한 가지 더 TMI를 보태자면, 저는 십여년 초등교사로 근무하고, 요즘은 석사과정으로 문해력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브런치라는 이 공간에 앞으로는 요즘의 관심사인 초등의 문해력에 관한 이야기도 좀 담아볼까해요. 그리고 5년 전쯤 써 놓았던 하드디스크 속 200장이 넘는 미완성 소설도 제 브런치 공간에 조금씩 담아볼까 합니다.
제 관심사는 시시각각 달라지고, 그때 그때 집중하는 일들도 달라지다보니 제 브런치도 유연하게 흘러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전원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사는 엄마로서, 초등 문해력을 공부하는 교사로, 그리고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저의 삼십대 끝자락에서 새로운 시작들을 풀어볼까 합니다. 여러가지 하고싶은 것 많은 저로서는 이 공간이 참 감사할따름이예요.
부디,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무탈한 가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