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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포레relifore Sep 12. 2021

우리집 마당에서 아이랑 별똥별을 봤다.

전원주택에서의 인생 최초의 경험, 최고의 순간


올해 8월 12일, 이런 기사를 봤어요.


12일 밤 10시부터 달빛 방해가 없어 맨 눈으로 관찰할 수 있고, 관찰은 12일 밤 10시부터 13일 오전 5시까지 가능하다, 라는 기사였죠.

특히, 오전 4시가 피크일꺼라고 기사에 써 있었습니다.


두근두근


기사를 보자마자 괜히 두근두근댑니다.


사실, 저 태어나서 유성우,

그러니까 별똥별을 한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단편 소설속에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속에서나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저한테 별똥별은 과학이라기 보단 문학이었어요.

아무때나 볼 수 없는 특별한 관측이라 언젠가는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오늘이라네요!


기사를 다시 읽어 보니, 관측 장소로 사방이 탁 트인 빛 공해가 없는 곳이 좋다고 적혀 있어요.

그러자 ‘우리집 마당에서도 별똥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원주택이라 빛공해가 없어서 평소에도 날씨만 맑다면 이런 별들을 맨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궁금한 것,

해 보고 싶은 것은

일단 도전해 봐야죠.



남편한테 에어베드랑 모기장을 설치해달라고 했어요.

뭔가 어설프긴 하지만 우리만의 별 관측 장소가 완성되었습니다.

모기에 물리지 않을 수 있는 안락한 장소.


이 때가 12일 오후 10시쯤이었는데,

큰찌, 둘찌 다 씻겨서 잘 준비를 다 해서 데리고 나갔어요.


“마당에서 잘 거야?”

아이들은 신나서 저에게 물어봅니다.



마당에서 캠핑하는 것 같아!

이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즐거워했어요.


그리고 다 같이 누워서 맨 눈으로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전원주택이라고 해도 이런 경험은 흔치 않거든요.


8월의 한 가운데쯤인데

밤의 마당은 그래도 바람이 솔솔 불고, 시원했습니다.

하늘은 깜깜하고요.

그런데 별똥별은 못 찾겠더라고요.


그 와중에 4살 둘찌는 이제 침대에서 자고 싶다고, 찡찡대기 시작했어요.


제가 어쩔 수 없이 철수를 결정하자, 생애 처음해 보는 경험에 너무 신이 났던, 8살 큰찌는 아쉬워합니다.

“새벽 4시가 제일 잘 보인대. 그 때 알람 맞춰놓고 볼 수 있으면 보자.”, 라고 설득하며 집 안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큰찌가 꼭 깨워달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해서 알람도 맞춰 놓았어요.


13일 새벽 3시 반쯤,

알람도 울리지 않았는데 제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제 마음에서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요.


그리고 잠시 고민을 했어요.


저도 졸리기도 했지만,

100% 성공이라는 확신이 없는데 8살 아이를 단잠에서 깨워야 하나, 그런 고민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분 고민을 하다가,

그냥 엄마랑 새벽 마당에서 별 보는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좋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큰찌를 깨워 둘이 마당에 나갔습니다.


어젯밤보다 더 맑아진 하늘,

쌀쌀한 새벽 공기에 정신이 번쩍듭니다.

에어베드와 잔디에 이슬이 맺혀 있어서

둘 다 두꺼운 옷을 겹쳐 입고, 담요를 둘둘말고 에어베드에 앉았어요.


자고 있던 마당냥이들도 에어베드로 다가와 우리 곁에 앉았습니다.

춥고 깜깜한 새벽인데도 이 아이들 덕에 뭔가 따뜻하고, 위안이 되더라고요.

‘우리 새벽에 만난 건 처음이지?’

고양이들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습니다.



엄마, 하늘이 맑아서 지금은 볼 수도 있겠다.



큰찌랑 두근대는 마음으로 별을 관찰하고 있는데,

웬일인지 잠 많은 남편이 잠에서 깨서 나왔네요.


아주 오랜만에 둘찌가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셋이서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은 낯설지만 익숙했던 느낌이 순식간에 확, 느껴지더라고요.

새벽의 마법처럼요.


한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남편이 여기 맞아?, 라고 물어와 휴대폰 속 나이트스카이앱을 켰어요.

휴대폰을 들어 이리저리 옮기면, 딱 그 하늘을 설명해주는 멋진 별자리 앱입니다.


페르세우스 자리 근처를 찾아보니, 우리가 지금까지 올려다 본 하늘보다 더 위였습니다.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네요.


저희집 맞은편에 가로등이 하나 있는데, 평소에는 어둡고 은은하게만 느껴지는 그 빛도 별을 보는데 방해가 되더라고요.

여름날 잘 쓰고 있던 파라솔을 가져와 각도를 틀어 빛을 막고, 열심히 페르세우스 자리 근처의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렇게 한 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라면 생각이 나더라고요.

새벽 공기가 차기도 하고, 평소 둘찌를 위해 잘 먹지 않았어서 더 땡겼던 걸까요.


때 마침, “컵라면 하나 먹을까?”, 제안을 하는 남편.

그 제안을 덥썩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얼른 부엌에 들어가 휴대폰 불빛을 비춰가며 컵라면 세 개에 물을 부었어요.


집 안에 불을 켜면 밖에 있는 둘의 별 관측에 방해가 되니까 이렇게 한 거였는데, 이것 나름대로 또 재미있더라고요.

어린 시절 정전 때의 생각도 나고 말이죠.



처음으로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쌀쌀한 새벽에 셋이서만 라면먹기.


이것만 해도 저는 참 좋더라고요.


라면 한 젓가락씩 입에 넣고 씹으며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는데, 남편이 다급하게 외칩니다.


어! 저기, 별 떨어진다!


“어디? 어디?”, 하며 바라 본 곳에

밝은 별 하나가 아래로 쭈욱, 내려가요.


처음엔 비행기 불빛 아닐까?, 했는데 비행기의 깜빡이는 빨간 불빛들이 보이지 않더라고요.


진짜, 별똥별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조금있다가 더 밝은 별똥별 하나가 쑤욱.


정말 기사대로 새벽 4시경이 관측하기 제일 좋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별똥별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짧아서 소원 빌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이 별똥별은 생각보다 오래 쭈욱, 떨어져서 큰찌랑 소원을 빌 수 있었어요.

그 다음에 본 별똥별들은 불꽃놀이처럼 짧게만 보였지만요.








이렇게 결국,

우리 셋은 각자 별똥별을 3개 넘게 관측하기에 성공했습니다.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울까 망설였는데, 안 깨웠으면 큰 일날 뻔 했어요.

너무 너무 좋은 경험이었거든요.


유성우 관측에 성공하지 못했어도,

오랜만에 가족끼리 밤하늘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 만으로도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가 우주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이야기들을 하며, 앱도 찾아보고 하는 경험도 좋았고요.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저 하나만 생각해도,

참, 좋았어요.


어린 시절에도 보지 못했던 별똥별을

30대 후반에 내 집에서 이렇게 보다니, 그 자체로 감격스러웠거든요.


보통 제 또래들이 어릴 때 할머니댁이 있는 시골에서 추억으로 가졌을 법한 이야기를,

이렇게 한참 뒤에 어른이 되어서야 시골에서 느껴보고 있다는 것도 참 신기하고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길고 긴 도시생활을 접고 들어온 전원에서

이렇게,

참 좋은 경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 최초의,

인생 최고의 경험들을 말이죠.


최악의 상황에서 도망치듯이 도착한 이 집에서

참 많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맞아요. 위로를 넘어선 멋진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죠.

누군가가 ‘너, 그전에 살았던 인생이 다가 아니다. 이제 진짜 경험을 하며 살아라.’ 하는 것 처럼요.


그 때의 고통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몇 발자국 앞에서 뒤를 바라보니,

그 최악이었던 고통과 시련마저도

참,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 고통이 없었더라면 제가 이런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요?


그 감사한 마음을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이 열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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