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이었다.
옆집은 작은 구멍가게를 하고 있었다.
어릴 적 집에서 불리는 내 이름은 ‘백 원만’이었다.
백 원을 생기면 옆집으로 가서 과자를 사 왔다.
백 원이면 불량식품이나 껌을 살 수 있었다.
옆집은 집 앞에 작은 창고를 가게로 사용했다.
어두컴컴했고 가게보다는 집에 계셨기에 가게에 도착하면 소리쳐 주인을 불러야 했다.
가끔 주인아주머니가 아닌 아주머니 아들이 나왔다.
컴컴한 가게 안으로 아들이 들어오면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어두운 기운이 느껴졌다.
창고에는 작은 창이 있었는데 뿌연 창으로 주인집 아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머리를 빡빡 깎은 20대 청년이었다.
당시 군인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머리가 굉장히 짧았다.
내가 과자를 고르고 계산을 하려고 했다.
“이것 좀 만져봐.”
그 사람에게 시선이 갔다.
양손으로 몽둥이를 잡고 있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내 손을 잡고 거기에 손을 갖다 대었다.
뜨거웠다. 촉감이 살갗이었다. 살갗인 것 같은데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 후로 몇 번을 그렇게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 일을 겪은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몽둥이가 발기된 성기였다는 것을 말이다.
다행인 것은 그 사람은 그 집에 살지 않았기에 그 후로는 마주할 일이 없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버스정류장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옆집 아저씨한테 인사도 안 하네.”
“네?”
“이제 옆집 아니라고 인사도 안 하네. 이사 갔다며.”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나를 당연히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십 년도 훨씬 전에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나에게 계속 말을 걸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너무 소름이 끼쳐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이 전혀 없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 사람이 내게 한 짓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절대 잊을 수 없다.
소름 끼치게도 나는 손에 느껴지던 그 촉감과 대화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오래도록 화가 났었다.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 수 있을까?
자신이 얼마나 큰 죄를 저질렀는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 화가 났다.
오랜 시간이 흐르자 내가 성추행만 당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나를 위해서 나는 그 사건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포장하고 싶었다.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 멀리서부터 그 아저씨가 있을까 살폈다.
피해자는 나인데 내가 왜 힘들어해야 하는 것인지 그 사실이 나를 또 분노하게 했다.
이제는 이 일을 그랬었어,라고 동생에게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악의 욕을 하고는 넘기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용서했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저 내가 나이를 먹었고 기억이 옅어진 것뿐이다.
마음에 피어오르던 불씨가 꺼진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계기로 다시 피어오르게 될지 나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