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우리 반은 17명이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그 인원이 전부였다. 그 아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정말이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제일 학생 수가 많았을 때는 22명까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출석번호는 생일 순이었다. 나는 빠른 2월 생이어서 16번 혹은 17번이었고 간혹 전학생이 있었기 때문에 번호가 뒤에서 왔다 갔다 했다.
나보다 생일이 느린 친구가 한 명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맨 끝번호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6년 내내 같은 아이들과 달리기를 했다. 4명씩 달렸는데 매번 같은 아이들과 달렸기 때문에 나는 항상 꼴등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정말 달리기를 못하는 줄 알았다. 중학교에 올라와보니 내가 잘 달리는 편은 아니었어도 매번 꼴등 할 정도로 못 달리는 편도 아니어서 좀 신기했던 것 같다.
나랑 달렸던 친구들은 다 잘 달렸다. 나는 꼭 조금 처진 상태로 달렸다. 정말이지 운동회가 너무 싫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꼴등을 면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Y의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Y가 다리를 다쳤고 Y는 보조기를 차고 나타났다. Y는 내 기억으로도 참 잘 달리게 생겼다. (그래, 나는 못 달리게 생겼다.) 그 길쭉길쭉한 다리로 잘도 달렸다.
Y를 포함한 1,2,3등은 정말 치열했다. 나 빼고 셋이 서로 박빙이었는데 Y가 가장 잘 달렸다. Y는 항상 나와 같은 조였다. 설마 달릴까 싶었는데 Y는 우리 조에 서서 평소처럼 준비 자세를 취했다.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셨다.
“달릴 수 있겠어?”
“네, 선생님. 저 달리고 싶어요.”
Y의 대답에 선생님이 더는 묻지 않으셨다. 달리기가 싫었던 나는 사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시작을 알리는 그 총소리에도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였다면 어떻게든 달리기를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보조기를 찬 Y가 아무리 잘 달려도 멀쩡한 두 다리로 달리는 나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Y가 뒤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달렸다.
나는 달리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Y가 나보다 잘 달리는데 뒤에 있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내가 꼴등일 때가 편했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고 마음 같아서는 Y 옆에서 같이 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드라마에서처럼 옆에서 함께 달리는 모습은 말 그대로 연출이었다. 나는 계속 돌아보기만 했지 Y와 함께 하지 못했다. 그게 너무도 미안했고 비겁한 것만 같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시간이 흘러 Y는 전처럼 다시 잘 달리게 되었다. 다음 해 운동회에서 Y는 달리기를 일등으로 들어왔고 나는 예전처럼 꼴등으로 들어왔다. 정말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그렇게 싫던 달리기가 그때는 싫지가 않았다. 뭔가 정정당당한 경기를 끝낸 것 같아 꼴등으로 들어왔지만 우울하지 않았다. 내 양심을 지킬 수 있어서 오히려 Y에게 고마웠다.
다치지 말라고! 나는 꼴등이 편해. 거기가 내 자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