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곰순이, 그리고 뽀삐
내가 가장 처음으로 가장 사랑했던 개, 그 아이의 이름은 '곰순이'였다.
곰순이가 처음부터 우리 개는 아니었고 아빠가 어디서 얻어 왔다고 했다. 듣기로는 한 번의 출산 경험도 있다고 들었다.
전에 키우던 집에서 곰순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 그렇게 불렀다.
까만 발바리 개였다.
너무 예뻤고 똑똑했다.
눈이 너무도 예뻤고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곰순이가 새끼를 낳았고 그 아이가 뽀삐였다. 두루마리 휴지 광고를 보고 우리가 그렇게 지어 불렀다.
곰순이와 뽀삐를 기억하는 건 내가 너무도 사랑했던 그 아이를 부모님이 개장수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그게 수순이었다.
개를 키워서 엄마는 그 돈으로 쌀을 사고 생필품을 샀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어렸어도 개장수에게 팔리는 개가 죽는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풀린 목줄과 주인 잃은 개집을 보고 나는 오래도록 울어야 했다.
우리 개는 아니었지만 나는 보았다.
개장수에게 가지 않으려고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몸부림치는 개들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그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곰순이가 팔리고 뽀삐가 팔리고 많이 울었다.
개장수에게 팔린 곰순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참아지지 않는다.
그냥 너무 미안한 마음, 인간의 그 이기적인 마음에 대한 사과, 너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든다.
큰 개에 물려 곰순이가 다리를 다친 적이 있었다.
곰순이는 집에 들어가 며칠을 못 나왔다.
곰순아, 하고 부르면 곰순이가 아픈 다리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는 다친 다리를 연신 핥았다.
곰순이가 뽀삐에게 젖을 물리는 것도 모두 지켜보았다.
하지만 우리가 키우는 개들은 새끼를 낳고 젖을 떼면 어김없이 팔려 나갔다.
곰순이가 가고 뽀삐가 가고, 어느 순간 나는 우리 집으로 오는 개들의 이름을 짓지 않았다.
부모님은 개를 기르고 다시 파는 일을 그 후에도 오랫동안 하셨다.
나는 개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고 머리를 쓰다듬지 않았다.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나는 나의 마음을 지키고 싶었다.
슬프고 싶지 않았고 마음을 주고 싶지 않았다.
상처 받지 않으려고 마음을 주지 않았다.
내 상처를 감당하지 못했고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다.
나는 비겁했다.
곰순이는 까만 털이었는데 뽀삐는 하얀 털이었다.
작은 발바리, 눈이 예쁜 내 강아지.
지켜주지 못해서 내가 많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