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by 윤자매

원래도 어려웠던 우리 집은


버섯 재배 사업이 망하고 더 어려워졌다.


그 시기에 막내가 태어났다고 한다.


엄마는 넷째를 제외하고 네 딸을 모두 집에서 낳았다.


넷째는 아기가 너무 나오지 않아 위험하겠다 싶어 병원에 갔는데 가자마자 낳았다고 엄마가 비용이 아깝다고 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는 돈을 생각해야 하는, 그게 딱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이었다.


막내가 태어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늦은 밤 엄마는 만삭의 몸으로 방을 정리하셨다.


여섯 살이던 나는 엄마가 왜 방을 청소하는지 몰랐다.


배가 부른 엄마가 방을 청소하시고 이어서 아주머니들이 집으로 오셨다.


엄마가 제 손으로 치운 방에서 막내를 낳았다.


밤새 엄마는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안방에서 이불을 덮고 공포에 휩싸였다.


우리 엄마가 죽을 것 같았다.


결국 많은 출혈로 이른 아침 엄마는 구급차에 실려갔다.


여섯 살 내 기억이 너무도 선명하다.


방에 진동하는 피 냄새, 방바닥에 말라버린 핏자국, 들것에 실려가는 엄마, 나는 울었던 것 같다.


후에 엄마가 그러셨다.


피를 일곱 개나 맞았는데 원래는 아홉 개를 맞으라고 하는 것을 돈이 없어서 일곱 개를 맞았다고 했다.


그 돈도 삼촌이 내주셨고 아빠는 삼촌에게 쓴소리를 들으셨다.


능력도 안 되면서 자식을 그렇게나 많이 낳았고


피투성이 된 누나를 다음날 아침까지 방치했으니 얼마나 화가 나셨을까.


그렇게 고생해서 낳았지만 집안 사정이 더 어려웠다.


엄마는 아이를 눕혀놓고 일을 했고 틈틈이 집에 와서 젖을 물렸다고 한다.


그러니 애가 제대로 젖을 먹었을 리가 없다.


엄마 말로는 아랫목에 누운 아이가 항상 울다 지쳐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젖을 물리면 허겁지겁 먹던 아이.


돌 때까지도 걷지 못했는데 돌이라 삼촌이 와보고는 놀라 병원에 데려가셨다고 했다.


영양실조였다. 제대로 먹지 못해 아이가 다리에 힘이 없어 걷지를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막내는 힘들게 성장했다.


막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여전히 우리 집은 어려웠다.


아들이 하나였던 큰삼촌이 막내를 입양하시겠다고 했다.


이름도 지어놨고 입양에 필요한 서류를 가슴팍에 넣고 다니셨다 했다.


엄마만 마음을 먹어주면 언제든 데려가실 준비가 되셨다고.


결국 배를 곯는 아이를 엄마는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엄마가 막내를 데리고 삼촌댁으로 가셨고 엄마 혼자 집으로 오셨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를 따라 막내가 왔다.


우리는 막내를 보고 다들 휘둥그레 했다.


곱게 빗은 머리에 예쁜 핀이 꽂혀 있었고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부잣집 외동딸 같았다.


우리는 막내에게 말했다.


그냥 거기 있지. 거기 있음 예쁜 옷도 입고 너 공주같이 살 수 있는데 왜 왔어.


그럼에도 막내가 우릴 보고 웃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낡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네 살의 예쁜 여자아이


환하게 웃던 그 미소를.




이전 04화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