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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UMIN HYUN Dec 30. 2020

문경 여행

새도 쉬어 넘는다는 문경새재, 즐길거리가 가득하여 쉴 틈이 없네.

문경. 

한국지리, 혹은 국사 교과서에서 스치듯 본 것이 전부인 지명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급작스럽게 꺼낸 "야, 짚라인 타고 오자." 가 발단이 되어 나와 내 친구 송모씨는 전국의 짚라인을 체험해볼 수 있는 지역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결국엔 그 생소한 이름에 모험심을 자극받은 우리는 문경으로 향하기로 결정하였다.


출발.


정체모를 계란 푼 갈비탕

토요일 이른 아침, 맞춰둔 알람 소리에 금요일 밤의 술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문경으로 향하는 버스가 적어, 동서울터미널에서 08:20에 출발하는 버스를 놓치면 13:20 버스에 타야하는 상황이었기에 부랴부랴 채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주말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붐비는 4호선과 2호선의 인파에 피곤함이 몰려왔지만, 뭐 이 정도의 비일상적인 불편함이 있기에 여행이 더욱 즐거운 것이 아닐까-하는 헛소리를 맘속으로 되뇌이다보니 어느새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여 먼저 와있던 송모씨와 접선하였다. 아침부터 배가 고프다는 그를 달래주기 위하여 괜찮은 식당을 찾아 위아래로 터미널을 한 바퀴 훑었으나, 재건축 계획으로 인해 이미 상당히 많은 점포가 빠진터라 결국 그냥 보통의 식당에서 계란을 푼(!?) 정체 모를 갈비탕을 먹어야했다. 허기를 채우고는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올라탔더니 아뿔싸, 또 한 번 상상과는 다르게 문경행 버스는 승객들로 가득하였고, 심지어 우등이 아닌 40인승 일반버스여서 그런지 그 바글거림은 실로 압도적이었다. 다른 옵션이 없을 뿐더러 두 시간 남짓이면 목적지에 도착할테니 그냥 불편해도 참고 가야지-하고 생각하자마자 깊이 곯아떨어졌고, 이내 눈을 떠보니 이미 버스는 문경버스터미널에 도착하고 있었다.


문경버스터미널과 블랙빈카페.


버스에서 내리자 서늘하고 상쾌한 공기가 몸 안으로 흘러들어와 남아있던 잠기운을 달아나게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저 멀리 알록달록 물든 문경새재의 산과, 짙은 갈색 나무 외벽의 터미널이 눈에 들어왔다. 교통량을 생각하면 차고 넘쳐보이는 여섯 개의 승차플랫폼과, 한껏 멋을 낸 글씨체로 "Welcome to MunGyeong"이 진지하게 붙어있는 모습이, 어쩐지 그 정겨운 촌스러움을 더욱 강조하는 듯 하여 괜시리 마음이 편안해졌다. 

짚라인을 예약해둔 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꽤 있어 그 사이에 시간도 때우고 정신도 좀 차릴 겸, 터미널에 단 하나 있는 블랙빈카페의 문을 열었다. 꽃무늬 커텐과 비범하게 묵직하고 화려한 유리잔, 그리고 바깥에 보이는 촌티나는 간판의 중국집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이 90년대 바이브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레일바이크.

한 때 경북 석탄산업의 중심지였던만큼, 문경의 땅에는 철길이 촘촘하게 깔려있다. 폐광 후 버려진 철길을 활용하여 레일바이크 어트랙션을 상당히 활발하게 개발하였는데, 느긋하게 자연경관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기에는 이만한 게 없겠다 싶어 송모씨와 나는 지도를 확인 후 걸어서 문경역으로 향했다. 10분 남짓 걸어 문경역에 도착하였으나, 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들쑥날쑥 자라난 풀들이 보도블럭을 따라 자라있었다. 찾아보니 코로나의 여파가 심해진 이후로는 문경역의 레일바이크 운영을 중단한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우리는 20-1 버스에 올라타 문경시 레일바이크 사업의 중심인 진남역으로 향했다.


약 20분간 한적한 시골길을 달려 진남역에 도착했으나, 매 시간 정각에 출발하는 레일바이크 탑승까지는 아직 30여분 정도가 남아있는 상황이었기에 우리는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진남역 바로 앞에는 영강이라 불리는 폭 30여미터의 강이 흐르는데, 주차장이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어 그런지 몇몇의 전문적으로 보이는 캠핑족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낚시, 식사 등 제각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퍽이나 즐거워보여 나도 무언가 했으면 좋겠단 마음에, 송모씨와 나는 강가의 납작한 돌멩이들을 주워모아 물수제비 (a.k.a. 돌튕기기) 대결을 펼쳤고 내기에서 진 그는 근처 슈퍼에서 우리들의 첫 "문경food"가 될 오미자 막걸리를 구매하였다. 



시간이 되어 레일바이크에 올라탄 우리는 슬근슬근 페달을 밟으며 숲속을 따라 난 철길을 따라 나아갔다. 요령이 없어서 그랬는지, 전동모터가 달려있음에도 불구하고 레일바이크 운전은 상당히 체력을 요하는 액티비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그냥 빈 속에 막걸리를 마셔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살짝 취기가 오르며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맞고 있노라니, 이렇게 평화롭고 즐거운 순간이 또 있을까-하며 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여하튼 이 좋아진 기분의 여운을 즐길새도 없이, 약 50분간의 레일바이크 탑승을 마친 우리는 그 다음 여행스팟인 짚라인장으로 향했다.


불정자연휴양림, 그리고 짚라인코리아.

짚라인은 지역마다 탑승 형태나 코스의 특성이 다양하다고 한다. 하동, 정선의 짚라인이 높은 지점에서 빠른 속도로 긴 트랙을 따라 내려오는 강하형이라면, 문경의 짚라인은 등산을 하며 계곡사이를 넘나드는 트레킹형에 가까운 트레킹형이라고 한다. 찾아본 결과 강하형은 대부분 가성비에 대한 불만이 많았고 (30초 타는데 5만원을 내라니!! 와 같은), 이에 반해 트레킹형은 긴 시간 동안 모험하는 기분을 낼 수 있어 전반적으로 평이 좋은 듯 했다. (정가 55,000원에서 약간의 할인을 받아 52,000원에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진남역에서 택시를 타고 10분을 달렸을까, 짚라인 안내사무소 앞에 도착한 우리는 각종 규정 및 안전 동의 서약서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신체포기각서)를 작성한 뒤 하네스와 안전모를 착용, 안전 수칙에 대한 짧은 설명을 들은 뒤 8인승 승합차에 탑승하였다. 비포장 산악도로를 약 10분간 달렸을까, 산의 (거의)정상에 도착했고 이 때부터 짚라인 경험은 시작되었다. 총 9개의 코스를 따라 서서히 산을 내려오는 체험은 약 90분간 진행되었고 특히 400m에 달하는 마지막 코스는 상당히 빠른 속도와 함께 멀리 문경시내가 보이는 멋진 경관까지 즐길 수 있어 아주 만족스러웠다.

9번코스가 끝나면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승합차에 올라타, 2,3분을 달려 다시 안내소에 돌아와 안전장비들을 반납하고 수료증을 받는다. 90분 체험을 함께한 동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에서, 안내해준 직원이 이름을 부르면 앞으로 나가 수료증을 받고 나머지 사람들은 박수를 쳐주는데, 마치 초등학교 시절의 조회시간이 떠올라 다들 "뭘 이런걸 하냐"며 부끄러워하면서도 내심 오랜만에 느끼는 그 기분이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뭐하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극도의 허기짐이 몰려온 우리는 점찍어둔 대흥정육점으로 발길을 서둘렀다.


대흥정육점

수요미식회에 소개되어 더욱 유명해져버린 대흥정육점. 문경에는 세 개의 대흥정육점이 있다. 1호점, 2호점, 그리고 3호점. 어차피 공급받는 고기는 다 같을테고, 기왕이면 새로 생겨 조금 더 쾌적한 식사가 가능한 3호점을 방문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왠지 모를 "본점"이라는 단어가 갖는 울림에 이끌려 우리는 본점으로 향했지만 역시나, 오후 여섯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도 본점의 고기를 맛보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상당했다. 일본에서 살던 5년 동안, 줄 서는 것에는 상당히 익숙해진 나였지만,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느라 쌓인 허기에 이기지 못해 걸어서 3,4분 거리에 위치한 2호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때깔도 참 고운 고기들

도착하니 이미 본점 자리를 놓쳐 헐레벌떡 2호점으로 넘어온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다행히도 나와 송모씨는 서두른 덕택에 선두권에 설 수 있었고, 10분 정도를 기다려 고기를 살 수 있었다. 정육코너에서 58,000원에 한우모듬 400g과 돼지 삼겹살 200g을 구매하고 식당코너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으니, 눈 깜짝할 새에 쌈채소, 각종 소스, 야채절임 등이 차려졌다. 숯불구이가 아닌 점이 조금은 아쉬웠으나, 이 아쉬움은 처음 집어든 안창살을 입에 넣는 순간 사라졌다. 짙은 향이 밴 고기는 적당히 쫄깃했고 적당히 부드러웠다. 이 만족스러움은 그 뒤를 이은 갈비살에서 한 단계 더 오른 뒤, 돼지고기 삼겹살에서 정점을 찍었다.  식당의 벽에 걸린 "문경의 소,돼지는 약돌이라 불리는 거정석을 사료에 섞어 먹이기에 육질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뻔한 글 조차도 믿게 만들 정도로 고기는 훌륭했고, 또 저렴했다. (근데 번외로 나오는 반찬들 하나하나도 너무 맛있어서 처음엔 뭐지-고기맛집이 아니라 백반맛집인가-하고 생각했다.)


라마다호텔 문경새재와 밤산책

일요일은 문경새재에서 보내기로 결심했던지라, 숙소는 읍내/시내가 아닌 문경새재도립공원의 입구에 위치한 라마다로 결정하였다. 여행느낌을 물씬 느끼기에는 근처에 위치한 펜션이나 산장과 같은 형태의 숙소도 좋은 선택이 될 뻔 했으나, 나와 송모씨는 둘 다 잠자리가 바뀌는 것에 꽤나 예민한 편인지라, 몸에 익숙한 베딩이 되어있을 라마다에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다 좋았으나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가 어찌나 크고 긴지, 잠귀가 밝은 나는 새벽 중간중간 잠을 깨야만했다.)

체크인 후 짐을 풀고, 온 종일 몸에 묻힌 먼지와 피로를 말끔히 씻어낸 우리는 밤에 마실 맥주도 살 겸, 문경새재 관문을 향해 밤산책을 나갔다. 마치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푸르른 빛의 밝은 조명이 비춰주는 계곡길을 따라 설렁설렁 걷고 있노라니, 이 낭만적인 호젓함이 나의 일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없던 귀농에의 욕구가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웬 영화촬영팀이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따로 조명을 설치했다고 한다. 평소였다면 칠흑같은 어둠만이 존재하여 낭만보다는 공포가 앞섰을지도 모름.)  뭐하튼, 느릿느릿 흐르는 시냇물 위에 배를 띄우고 그 위에 올라타 약주를 즐기는 상상을 하며 걷다보니 결국 짙은 어둠이 길을 막아선 지점에 다다랐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었다.


탄광촌식당


피곤했는지, 체크아웃 시간이 거의 다되어 일어난 우리는 부랴부랴 씻고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한국의 모든 등산로 입구가 그렇듯, 문경새재의 진입로에도 그다지 차이가 없어보이는 식당들이 즐비했기에 우리는 딱히 큰 고민없이 적당히 걷다가 이름이 괜시리 멋져보이는 탄광촌 식당에 발을 들였다. 지난밤의 돼지고기의 맛과 향을 잊지못한 우리는 돼지고기 석쇠구이 정식을 2인분 주문하였고, 별생각 없이 들어온 식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괜찮은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직화로 구워 그 고소함이 배가 된 제육은 물론, 무심하게 주어진 열 몇 가지의 밑반찬 또한 훌륭하여, 가볍게 먹자던 다짐을 깨고 밥 두 공기를 먹어치워버렸다.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공기밥은 추가 요금을 받지 않았기에 그 감동이 더욱 컸고,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상당히 만족스런 식사였다고 기억에 남아있는 듯 하다.


문경새재 과거길


옛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들이 걸었던 길이라고 하여 과거길이라 불리는 문경새재의 트레킹 코스는 제1관문에서 3관문까지 이어지는 왕복 16km의 완만한 경사로이다. 등산 기분은 물씬 내면서 그 부담은 훨씬 덜해서 그런가, 장년층 이상의 관광괙과 초딩 이하의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코로나 시대라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의 인파가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잘 닦인 산책로와 우거진 단풍, 푸르른 계곡물은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걸어 중간 지점인 제2관문에 도착한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물론 중간에 있는 주막? 느낌이 물씬 나는 휴게소는 그냥 지나칠 수 없기에 잠깐 들러 차가운 오미자차를 구매하여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미자차의 시원함, 상쾌함에 더해 이 깊은 산 속에서도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감동케한 것은 비밀이다.)


가나다라 브루어리

문경시내의 슈퍼, 편의점을 돌아다녀보면 굉장히 후잡한 느낌의 라벨이 붙어있는 맥주를 판매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이는 문경의 맥주 양조장인 가나다라 브루어리에서 제조/판매하는 맥주들이다. 최근에는 많이 넓어진 입지 덕택에 서울을 비롯한 기타 지역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되었으나, 본토에서, 그것도 그 생산 공장에서 갓 뽑은 맥주를 맛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기에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나다라 브루어리의 양조장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2차선으로 곧게 뻗은 준-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급작스레 웬 허허벌판이 나오는데, 이 위에 덩그러니 놓여진 건물이 가나다라 브루어리의 양조장이다. 정말 너무나 뜬금없는 입지에 돌아가는 택시를 잡을 수 있을까-하고 걱정을 하던 찰나, 양조장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탭룸 영업합니다. 2층으로 올라오세요." 문구를 보고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듯 2층으로 향했다. 2층 탭룸에는 자그마한 4인 테이블이 네 개 정도 놓여있고, 큼직한 유리창이 있어 이를 통해 1층의 양조장 시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론 미리 전화만 해두면 양조장 견학 및 시음회도 참여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이 모든 것을 중단하고 탭룸만 운영하고 있다니, 아쉬운 맘에 나와 송모씨는 탭룸에서 뽕을 뽑기로 하였다.


3,000원에 갓만든 생맥주 400ml 한 잔을 맛볼 수 있고, 4,000원에 이를 캔에 담은 맥주를 사갈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 즐겁지 아니한가? 결국 우리는 모든 맥주를 맛보았고, 회사 동료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은 나머지 스무 캔의 맥주를 구매하였다. (스무 캔 + 여덟 잔을 마시고 10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이라니!)


인서니얼키친

얼큰하게 취한 우리는, 우리의 문경일정 마지막 목적지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인서니얼키친을 방문하기 위하여 점촌 모전동의 한적한 주택가로 향하였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문경시는 문경읍, 점촌시가 통합되어 만들어진 행정구역으로, 기존 문경읍이던 지역은 구시가지에 가깝고 점촌시였던 지역이 신시가지로서 주거 및 편의시설이 훨씬 잘 구비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하여, 서울에서 출발하는 대부분의 고속버스 노선도 문경터미널이 아닌 점촌터미널로 이어져있다고 한다 - 그런데도 우리는 바득바득 문경터미널을 고집했으니, 08:20-13:20 문제가 괜히 발생한 것은 아니다.)


여하튼, 회사 동료가 소개해준 인서니얼키친은 인스타그램 유명 여행소개 계정 및 각종 매체, 심지어는 일본의 잡지에도 소개되었을 정도로 그 이름이 자자한 데다, 오로지 예약손님만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얼마나 멋진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을지 괜스레 더욱 기대를 하게 되었다. 예약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상상했던 것만큼 자그마한 가게 앞에서 설렁설렁 대고 있으니, 이를 본 직원분이 예약시간보다 빠르게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아마도 여행 짐을 크게 짊어진 두 외지인이 주택가를 어슬렁대고 있는 모습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카르파쵸, 아란치니, 밀크리조또

자리에 앉아 조금 기다리니, 미리 예약해두었던 소고기 카르파쵸와 카르보나라 스파게티, 밀크리조또가 차례대로 나왔다. 메뉴를 내오면서 직원분이 엄청나게 정성스럽게 재료와 조리법,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데 그 정성과는 상반되게 뻔한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약간의 의아함을 가졌지만, 이탈리안 식당이 흔하지 않은 문경에서는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일 수 있겠군-하는 생각을 하며 식사를 시작하였다.


전반적으로 괜찮은 식사였으나 뭐랄까, 예상했던만큼의 대단함은 결여되어 있었던 식사였다. 전반적으로 간이 약해서 그런지 모양새에 비해 임팩트가 적은 식사였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 또한 지역 손님들의 취향에 맞춘 것이라면 물론 할 말은 없지만, 훌륭한 이탈리안 정찬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 즐비한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과연 이 맛에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물음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 "그럴거면 든드-ㄴ한 약돌돼지 한 근 더 먹지!"를 외치며 우리는 점촌 터미널로 향하였다.


귀가, 그리고 회고

문경과 점촌의 관계를 알고나니, 어떤 버스를 타야했었는지가 자명해졌다. 점촌 터미널은 매 시간 서울을 오가는 버스, 그것도 우등이 있었고, 동서울 이외에도 반포 고속터미널을 오가는 노선이 있었다. 용산 거주자인 송모씨와 내가 굳이 동서울을 선택할 이유는 없었으니 우리는 반포고속터미널행 우등버스에 몸을 싣고, 문경에 오던 날과 마찬가지로 버스에 타자마자 곯아떨어진 뒤, 서울에 다 도착해서야 잠에서 깼다.


산세가 험한 문경새재는 새도 쉬었다간다고 하여 그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허나 문경에서는 쉴 틈이 없다. 온갖 할 것, 볼 것, 먹을 것들을 빠짐없이 만끽하려면 쉬고 있을 여유는 사치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에 맛을 들인 이래로 줄곧 해외로 나돌아다닌 이유는, 한국의 여행지는 다 가보았고, 너무나 뻔하고,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번 문경 여행은 나의 치기어린 착각을 보란듯이 파훼해주었고, 나는 또 다른 문경, 혹은 그 이상을 찾아나설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남은 것은 수십캔의 맥주와, 따봉만 날리고 먹지는 못한 k-오미자돈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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