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제 익숙할 법도 되었는데 여전히 학교 수업은 부담되고 긴장된다. 어쩌다 학교 일정 변경이나 시간표 변경으로 그날 수업이 없어지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와. 이제 좀 한숨 돌리겠네. 다행이다"
이런걸 보면 나는 참 수업에 대해 많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실제 수업 시간이 다가올수록내 긴장감은 고조된다. 보통 2교시가 마치고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 와 드디어 2교시 끝났다. 이제 좀 쉬자.'
하고 분주하게 복도를 뛰어다니거나 친구를 부르거나 때론 잠을 보충하기도 하지만 나는
'3교시 수업이 이제 10분 남았구나. 준비가 잘되었나? 어디 놓친 것은 없나? 긴장되네 ㄷㄷ'
하며 본격적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이제는 좀 편하게 수업할 수 없을까. 그래도 10년동안 최소 50번은 가르쳤던 내용이잖아! 하며 수업 직전 여전히 콩닥콩닥거리는 내 가슴에 손을 대며 원망해본다.
하지만 수업을 100번 하든 200번 하든 앞으로도 내 가슴의 두근거림은 계속 될 것 같다.
예전에는 이런 문제로 약간의 스트레스도 받았었다. 특히 수업 시작전 항상 여유있게 웃으며 교실에 들어가시는 베테랑 선생님들을 볼 때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도 저 정도 짬(경력)이 되면 여유가 생기겠지. 그때되면 안보고도 수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초임때는 나도 저렇게 될 것이다 애써 위안을 삼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되기는 커녕 여전히 내 마음 속의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콩닥콩닥 거림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선 긴장을 하게 되니 매시간 수업 준비를 허투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미 50-60번이나 가르친 내용이고 머릿속에서는 "삼국의 발전" 이라고 하면 고국천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고이왕, 근초고왕, 법흥왕, 진흥왕등 오늘 수업할 중요 포인트가 술술술 생각나지만 지금 이 시간 나에게 수업듣는 이 아이들에게는 모두가 학교에서는 처음 배우는 새로운 내용들이다. 그것도 50분 동안 전적으로 나에게 의존해서 말이다.
한 반에 이들 30명 시간을 합치면 모두 1500분, 내 수업 하나로 나는 타인의 소중한 1500분을 책임져야 한다.
어찌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업시간이 다가올수록 혹시나 빠트린 내용은 없을까. 이 주제는 무엇과 연관해서 설명할까. 우리 일상생활과 관련해서는 어떤걸로 비유를 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점검하고 생각하고 고민한다.
긴장감은 고조되지만 그래도 그렇게 공을 많이 들이고 신경을 많이 쓴 수업일수록 아이들 수업 집중도가 참 좋다. 특히 나도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어버버'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정확한 개념을 또박또박 말해줄 수 있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아이들도 쉽게 알아 들었다는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떡인다. 그럴 때 나는 기쁘기도 하고 보람도 느끼고 다행이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모든 아이들이 내 수업을 집중해서 잘 듣는 것은 아니다. 표정부터가 나 지루해요 하며 턱을 괴고 수업 듣는 아이들이 있고 대놓고 엎어져 자는 아이, 수업시간 계속 옆만 쳐다보는 아이 등 수업시간 아이들 표정과 행동도 저마다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감정을 가장 당황케 하는 장면은 뒷자리에 앉아서 내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다른 과목 공부에 열중 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럴 때 나는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며 허탈한 감정이 들면서 화가 날 때가 있다.
"내 과목 중요도가 그렇게 떨어지는건가. 아니면 내 과목에 관심이 없는걸까. 저 아이에게 내 수업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저 아이는 대체 내 수업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속으로는 그런 장면을 목격하면 수업하다 말고 거기 ! 하면서 소리를 빽 지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머리는 감정이 밀려오면서 수업을 계속 해야 하나 고민하는 머리랑, 화를 내야 하나 고민하는 머리가 뒤섞여 혼동이 되어 한동안 침묵이 흐를 때가 생긴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갑자기 심각해지셨어요."
"응? 아...아니야. 아무것도."
예전에는 이럴 때 나는 화부터 다짜고짜 냈었다.
이런 행동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이건 너 잘못이다 그러니 너에게 난 소리지를 자격이 있고 너는 이 버릇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지적받아야 한다는게 내 "화"의 논리였다.
그런데 그렇게 몇번 화를 내고 나면 항상 후회가 많이 남았다.
- 그렇게 화낸 내 모습에 굴복한 그 아이는 과연 진심으로 그날의 행동을 반성했는가? no
- 그 아이는 앞으로 두번 다시는 그런 행동을 안할 것인가? no
- 수업시간에 화낸 내 모습은 다른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교육적효과가 있었나? no no!
결국 화를 내고 나면 당황했던 내 마음만 잠시나마 해소되었던 것이지, 다른 아이들에게 불편한 감정은 생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한 지적받은 아이들도 보통 진심으로 반성하기보다 '부끄럽게 뭘 그렇게 애들 보는 앞에서 개 망신을 줘? 아 진짜 짜증나' 하며 나에 대해 반발심만 더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나는 교사이면서도 어른이다.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들 앞에서 감정적으로 대하거나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내 화는 잘못된 일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 아이들이 수업시간 어떤 행동을 해도 지속적이지 않고, 타인에게 방해를 주는 행동이 아니라면 크게 지적하지는 않게 되었다. 특별히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해도 그 자리에서 지적하기보다는 한참 지켜보다 나중에 따로 불러서 차분히 타이르고 조언하는 정도로 끝냈다.
무엇보다 교사는 누구나 수업을 맡게 되면 30명 중 해당 교사의 수업을 학수고대하는 팬그룹 아이들이 생기게 된다. 이 아이들은 늘 밝은 얼굴로 내 수업을 기다리고, 내 발문에 적극적으로 답변하고, 내 이야기에 가장 크게 귀를 기울이는 아이들이다.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지만 나는 수업시간 늘 이렇게 최선을 다해주는 고마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감정적으로 수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내일도 나는 교실에서 아이들과 또 하나의 의미있는 배움의 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특히 배움의 주체자가 바로 나이고 30명이 오매불망 나를 바라보고 있을텐데 내가 어떻게 설레지 않고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일을 준비하는 지금 나는 긴장하고 있지만, 밝은 모습으로 내 수업을 집중해서 경청해 줄 아이들을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수업준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