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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Feb 16. 2022

그래도 우리가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는 이유

학교생활이 답답하면 자퇴를 해야 하나?

해마다 고등학교에는 자퇴생 수가 늘어나고 있다.


우리학교도 예외는 아니라서 한 학년 300명 중에 2-3명 정도는 평균적으로 자퇴를 희망한다.



사실 자퇴를 신청하는 아이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학교생활이 나와 안맞아서, 대학 입시를 생각해야 하는데 고등학교 내신이 안좋으니 차라리 빨리 정시준비하는게 나을것 같아서, 학교 친구들이 너무 불편해서 등등.



예전 내가 학교 다닐때만 해도 아이가 자퇴를 한다고 하면 선생님들은 우선 반대부터 했다. 다시 생각해보라. 별로 좋은 결정 아니다. 나중에 후회한다 라고 계속해서 자퇴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더불어 당시 사회에서는 자퇴생이라고 하면 별로 좋지 않은 시선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는 경향도 강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의 학교는 다르다. 아이가 자퇴를 희망한다고 하면 학교에서는 우선 부모님과 충분히 논의된 것인지 확인해보고, 부모님도 아이 뜻에 동의하면 곧 자퇴를 절차에 따라 진행해준다.



 나 역시 자퇴는 아이가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9년동안 같이 학교 다닌 친구들과 아이가 이제는 다른길로 가겠다는데 이 얼마나 담대한 결정인가. 아마 그 아이는 수십번도 더 고민하고 고민해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따라서 난 아이가 자퇴를 결심하면 이는 아이의 신중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존중 해준다. 특히 자퇴 후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이나 비전이 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일부 아이들은 자퇴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학교는 정해진 규칙과 시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잘맞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또 학교생활을 하다가 때론 선생님이나 친구와 충돌해서 감정적으로 그냥 자퇴를 하고 싶어할 때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나와 상담을 할 때 본인의 속마음을 툭툭 내뱉는다.



 "너 지난번에 OO 선생님과 충돌이 있었다면서?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니?"


" 아 몰라요. 학교생활은 나와 영 안맞는 것 같아요. 전 편하게 살고 싶어요. 그냥 자퇴시켜 주세요."



 실제 이런 아이들은 부모와도 갈등이 많고 대화가 잘 안된다. 그래서 아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조차 부모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혹시나 해서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가 자퇴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알고 계셨냐 하면 부모는 깜짝 놀라며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극구 부인한다.  



 사실 학업에도 뜻이 없고 학교에서 그저 잠만 자거나 수업시간이 지루해서 팔만 계속 꼬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교사인 나도 가끔씩 '쟤넨 차라리 자퇴하고 밖에서 뭐라도 하나 배우거나 하는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같이 공부하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텐데 '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일반고등학교에서는 아이가 학업을 포기하거나 수업 외의 다른 것을 하고 싶다 해서 그것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그저 학생은 수업을 잘 들어야 하고 수업태도가 좋아야 한다. 수업 듣는 것 외에 다른 짓(핸드폰 보거나 다른 책을 보는 것, 화장하는 것)을 해서도 안된다.



 이런 현실을 안 아이들에게, 즉 딴짓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그저 재미없는 일상일 뿐이고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어쩌면 차라리 자퇴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게 더 나을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입장에서도 생각해 봤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면서 대한민국의 공교육 교사인 내가 아이에게 자퇴를 권하지 말아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해봤다.



첫째로 아이가 내 수업을 듣고 내 반 학생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이제부터 이 아이의 학교 보호자는 바로 담임인 내가 된다. 아이가 아무리 좋든 싫든 나는 담임을 맡은 1년동안은 이 아이를 잘 이끌어 나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아이에게 자퇴를 권한다면 이는 내 스스로가 이 아이를 관리할 의지도 없이 아이를 포기하는 것 밖에 안된다. 이는 너무 무책임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둘째로 학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교과 공부하고 배워 오라고? 아이가 학교에 가서 배우는 것은 그저 국영수사과 식의 공부가 전부가 아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교우관계도 형성하고 기본적인 인성, 생활습관도 배우게 된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또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아이는 계속해서 학교라는 교육적 환경에 온전히 있음으로서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나 사회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특히 학업을 싫어하고 학교에서 소위 껄렁대는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이 아이들이 학교를 안 다닌다면 과연 자퇴 후 어디를 가겠는가? 보나마나 동네 큰 형들과 어울려 좋지 못한 것을 배우고 더 사회 부적응자가 되거나 이제는 학교라는 통제공간에서도 벗어났으니 더욱더 부모에게 반항하고 사회 일탈 행동을 할 염려가 생긴다. 학교는 최소한 아이들이 20살이 될 때까지 즉 성인이 될때까지는 이런 일탈공간에서 비행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최소한의 보호막인 것이다. 말을 안 듣는 비행 청소년의 부모일수록 더욱더 아이를 학교에 맡기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셋째로 학업에 뜻이 없는 아이에게 학교는 정말 답답한 공간이긴 하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공간에서 인내심을 또한 배운다. 가만히 버티면서 2-3년동안 멍때리고 앉아있는게 무슨 의미인가? 바보짓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우리가 국방의 의무를 하러 간 군대에서는 과연 즐겁게 시간을 보냈는가? 내가 취업해서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는 행복하고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육아는 어떻고?


사실 인생의 많은 순간들이 따지고 보면 상당한 기다림과 지루함, 인내심을 요구한다. 기쁜 순간이 조금이라면 답답하고 지루한 순간이 대부분인게 인생이다. 학교는 그런 인생의 인내를 가장 먼저 배우는 곳이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처럼 말이다. 그래도 학교 생활을 끝까지 버텨내며 인내하며 마침내 졸업장을 따낸 사람은 인내심이라는 탄탄한 근육을 키우게 된다. 이 사람은 이후 군대에서도, 회사에서도, 결혼 후 육아에서도 자신을 이겨내고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이들이 학업에 뜻이 없이 교실에 그저 앉아 있는다 하여, 그 시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 아이들도 생각이란 것을 한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소위 "멍" 때리면서 자신의 인생 진로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민을 한다.



 실제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이 잘하는 것을 성찰하며  "프로게이머" 가 된 친구도 있었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고 뭐라도 해야겠다며 진지하게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며 "배우"의 길을 배우는 친구도 있었다.


 

자 결론이다. 아이가 학교가 안맞으면 자퇴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무조건 찬성도 무조건 반대도 할 수 없다. 그 아이 인생이니까 말이다. 백번 생각하고 다음날 다음날 또 생각해서도 정말 자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자퇴를 하는게 맞을수도 있다.


하지만 말이다. 꼭 자퇴만이 해답은 아닐 수도 있다. 당장의 내가 찾은 자퇴를 하지 말아야 되는 이유만 해도 3개는 되니까 말이다. 신중하게 생각하자. 학업에 뜻이 없다하여서 학교에서의 시간은 결코 아무 의미없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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