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박이는 커서를 앞에 두면 자꾸만 비장해진다.
그래서 글과 멀어지는 날이 잦다.
요즘 나는 주로 T 식 문장을 읽는다.
정보성 글이다.
그런 종류의 책과 글은 나를 할퀴는 일이 적어서
자주 펼쳐 본다. 물론 끝까지 읽는 일은 드물다.
소설책과 시집, 에세이를 읽은 지는 꽤 오래됐다.
그들은 자주 나를 후벼 파고
작아진 나를, 더욱 못난이로 보이게 한다.
그러면 나는 물성의 표지에 질투를 퍼붓는다
훽, 하고 책을 덮고 소파에 내던진다.
왜 나는 그런 마음이 없냐고,
당신은 왜 그저 그랬냐고,
어째서 그런 글을 떠올렸냐고.
그 감각을 짚어낸 당신이 밉다고. 샘을 낸다.
요즘의 나는 헐렁하고 느슨한 삶을 추종한다.
한때 사랑해 마지않던
가슴 축축해지는 글들은
이제 나를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
당분간은 계속 그럴 것 같다.
이런저런 나의 못남이
나를 자주 비장하게 만든다.
깜박이는 커서 앞에 앉아
한 글자도 적어내지 못하는 나를 만난다.
‘괜찮아, 괜찮아.’ 되뇐다.
요즘의 나는 '좋다'.
작지만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아이들도 내 손으로 맞이한다.
적어도 불행하지는 않은 요즘,
그럼에도 글 앞에서는 자꾸만 비장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괜찮아, 괜찮아.' 하며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