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새해였다. 집 뒤 편에는 백월산이라 불리는 선산이 있는데 해돋이를 보자는 아버지의 설득으로산을 올랐다. 어제 본 해랑 뭐가 다르다고 난리인지 찬바람이 부는 정상에서 외투를 여매며 투덜댔다. 해의 모서리가 지평선에 걸치기 시작했다.빛은 불 꺼진 방에 취침등을 킨 것처럼 어둠을 반대편으로 몰아넣었다. '저거 뜬 거 아니야?' 란 말이인파 속에서퍼지더니,곧이어 모두가 환호했다. 어둠에 보이지 않던 산 아래 마을도, 소나무도, 웃는 얼굴도, 옅게 떠있는 구름도, 그리고 붉은 태양까지 이 모든 것이 한눈에 담겼다. 모두 작년의 것과 다를 바 없으나, 정해진 날에 같은 걸 보고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쁨이었다. 그렇게 10분쯤 멍을때렸을까.산을 내려오는 동안 내가 부여한 의미에 따라 본질조차 변할 수 있다는 걸 생각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는 내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좋은 것만 보며 살 순 없겠지만 좋은의미만을 부여하며 살 순 있다.올해의 새해 다짐으로 적격이다.
소중한 사람에 대한 글, ‘민들레의 꽃말은’을 완성하고 복학을 준비했다. 3년 만에 학교 사람들을 만나며 느낀 건 내가 회의적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나긴 우울증과 간병인 생활 때문에 세상을 보는 시선이회의적으로 변했다.글로 풀어보려 해도 혼자선 해결될 기미가 안보였다. 여럿이 함께 고민한다면 될지도모른다. 전에 많이 의지했던 학과 친구, 졸업한 여자 동기, 동아리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다들 반갑게 맞이해 줬다. 그들은 ‘술 한잔 하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이 되었고, 나는 그걸 핑계 삼아 여럿을 술자리에 불렸다.
“전에는 감정의 폭도 깊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봤는데, 지금은 감정이 둔해지고 세상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어. 지금 모습은 과거의 내가 싫어하던 모습이야. 변한 나 자신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 그들은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삶의 이정표가 되었을 본인 가치관에 따라각자만의 답을 얘기했다.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였다. 변화를 받아들이든지, 아예 새롭게 변하든지, 아니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든지 말이다. 무얼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선택해야만 할 일이 벌어졌다.
수업을 마치고 본 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 알림이 있었다. 총 세 통으로 모두 고모의 것이었다. 연락을 자주 하던 사이가 아닌 만큼 괜히 불안해졌다. 마음을 다잡고 전화를 걸었다. 기나긴 통화음 끝에 목소리가 이어졌다. 짧은 안부를 주고받고 본론이 나왔다. 고모는 아빠와 엄마가이혼한다는 걸 알고 있었나 내게 물었다. 자취를 한다고 집을 나온 사이에 두 사람 사이는 더 나빠졌나보다. 고모는 몸도 안 좋은 아빠가 혼자 살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엄마에게 전화하긴 싫고, 아빠에겐 눈치 보이고, 결국 나인가 보다. 엉엉 울고 있는 고모를 두고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질 않았다. 오히려 엄마와 아빠의 지난 20년을 빠르게 돌이켜본 후에 든 감상을 덤덤히 말했다. 철이 든 때부터 봐온 두 사람은 정말 안 맞았다고. 눈만 마주쳐도 싸우는데 오히려 같이 사는 게 서로에게 스트레스이지 않냐며 말이다. 그러니 이혼을 한대도 내가 말릴 이유를 못 찾겠다고 했다. 차가웠다.
이혼 얘기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보험금 문제로 크게 싸웠던 5년 전에는오히려 내가 울고 불며 이혼을 반대했다. 지금과 너무 다른 태도다. 통화가 끊긴 뒤에도 고모의 말은 여전히 귓가에 맴돌았다. 너의 말은 이해된다만 언제든 싸울 수 있는 게 가족이고, 또 쉽게 헤어질 수 없는 게 가족이라고 말하셨다.이번엔 그 말이 가슴으로 옮겨와 한참을 찔러댔다. 지금의 나로선 최선의 결론을 내렸으나, 일주일이 지나서도 여전히 가슴은 답답했다. 그제야 나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닐까란 의심이 들었다.돌이켜보면 친구를 만나도 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전엔 광적으로 좋아했던 작품을 봐도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감정이 무뎌진 사람이 남에게 감정을 전하는 글을쓸 수 있을까. 아니 제대로 살 수나 있을까. 어릴 적부터 품어온 동경에 닿을 수 없으리만치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잃어버린 셈이다. 싫든 좋든 결국 내게남은 길은 예전으로 돌아가는것뿐이다.
노래와 영화, 공연을 즐기며 쉽게 울고 웃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사소한 일상 속에서 행복했다. 감정 체계가 예민한 편이라 할 수 있었다. 반대로 우울 또한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느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는 이 예민함이 오히려 걸림돌이었다. 덜 우울해하고 싶다는 마음이감정의 폭을 줄였다. 아버지가 백혈병을 진단받고 홀로 병간호를 하는 동안에는 감정을 죽였다. 그래야 우느라고 해야 할 일을 못 하는 경우가 안 생겼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살아달라고 설득할 수 있었다.회의적으로 변한 것은 당시의 상황을 버텨내기 위해서였다.다만 지금은 회의적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황이 괜찮아졌다. 지금 상황에 맞는 태도 즉, 예민한 감정과 긍정적인 시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민해야 할 때였다.
효리네 민박 영상 중에 유독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아이유와 이효리 두 사람이 차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아이유는 스스로가 평정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기분이 들뜨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감정을 억누르는 게 버릇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효리 자신은 오히려 감정의 폭이 너무 커서 고민이라고 한다. 감정에 있어 정반대의 고민을 하는 두 사람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두 사람이 만난 게 운명이라고 이효리가 말한다.
내가 널 더 울고 웃게 만들어줄 테니, 넌 내가 너무 들뜬 것 같으면 진정시켜 주면 되겠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삶을 대하는 태도가 결정된다. 혼자 하는 판단은 매번 비슷하고 그러니 혼자 변화를 만들기란 힘들다. 변화하기 위해선 결국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특정 상황 속에서 내가 변했다면, 반대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기 용이한 상황에 들어가면 될 뿐이다. 혼자가 아닌 소중한 사람과 함께 말이다.
그때부터 삶의 목적은 분명해졌다. 풍부한 감정과 긍정적인 사고를 갖게 할 만한 환경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이번엔 다른 목적으로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고민을 털어놓는 것보단좋은 경험을 쌓으러 나선다. 맛집과 카페를 다니고 밤새 취한 채로 공연을 구경했다. 영화를 보며 함께 울고 웃고, 감상을 얘기했다. 열심히 요리 연습을 해서 친구에게 한 끼를 대접했다. 드라이브를 하고, 여행을 가고, 밤새 얘기하며 얼굴도 못 본 사이에 쌓인 화포를 풀었다. 모두 지난 3년 간 못 해본 일뿐이었다. 그렇게 서서히 타인에게 관심과 여유가 생기고, 웃을 일이 많아졌다.
나는 애초에 적극적인 사람이 아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더라도 실제로 행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기껏 찾은 방법조차 통하지 않는다면 영영 돌아갈 길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나의 희망으로 남겨둔 채 지금의 삶을 유지하려는 유혹에 흔들리곤 했다. 그런 내 곁에서 해결 방법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준 사람이 있었다. 방법을 찾자마자 무한한 응원을 보내준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삶을 개선하는 데에 있어서 더 적극적일수 있도록 북돋아 주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전등 스위치가 어딘지 몰라 헤맬 때 같이 찾아 나서준 셈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었을 즈음 그들에게 알렸다. 나 이제 괜찮다고. 진심이었다.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정말 예전으로 돌아왔음이 실감 났다. 나의 취향이었던 것을 온전히 느끼고, 불운한 환경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감동하게 되었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생기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행복해서 운다는 감정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늦은 저녁 어두운 방 안에 앉아 탁상등만을 켜두었다. 빛은 어둠을 반대편 구석까지 슬그머니 몰아넣었다. 잔잔한 노란빛을 두고 아껴둔 소설을 읽는다. 그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평온하다. 그러다 까무룩 잠에 든다. 커튼 사이로 빠져나온 햇빛에 깼고, 침대 옆 조명은 여전히 켜져 있다. 커튼을 걷으니 그나마 구석에 남아있던 어둠까지 지워졌다. 더 이상 탁상등을 켜둘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내 손으로 스위치를 끈다.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건 이런 사소한 조명뿐이지만, 어둠 속에서 타인의 삶이 담긴 책을 읽기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빛이다. 10분쯤 생각에 잠기다가 외출 준비를 했다. 하루의 시작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윤동주, 서시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