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여행자는 바다를 동경한다
여행을 떠났다. 창을 열면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는 곳으로 말이다. 바다 위에 떠있는 윤슬과 하늘에 찍힌 구름은 지평선을 경계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모래사장을 걸으며 두 개의 푸르름을 한껏 만끽한다. 파도는 발을 톡톡 건드린다. 내 뒤로는 기나긴 발자취가 남아있다. 그것들 또한 결국 파도에 지워질 걸 알기에 더욱 힘을 실어 발자국을 남긴다. 일정한 간격으로 모래를 적시는 파도가 들린다. 바람은 햇빛으로 데워진 피부를 식힌다. 바람의 끝에는 약간의 짠내음이 묻어 있다. 그렇게 내 모든 오감이 바다를 향하는 순간, 메마른 마음은 바다를 동경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시작됐다. 예보대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그늘 너머를 적시는 걸 보며 생각했다. 다리 밑 공터로 자릴 잡은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말이다. 나는 이번으로 세 번째 캠핑용 의자를 펴며 물었다.
"이런 장소는 어떻게 알게 된 거야?"
"근처 운전하다가 점찍어둔 곳인데, 오늘 같은 날에 오기 좋을 거 같더라고. "
확실히 다리가 만든 그늘 덕에 비를 피할 수 있고, 왼편에는 강이 흐르니 뒷정리하기도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인적이 드문 덕에 마음 놓고 웃고 떠들기 좋았다. 선배는 비 때문에 장작이 습해지지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다. 다행히 박스 깊숙이 있던 장작은 건조한 모양이다. 그중 서너 개를 꺼내 숯과 함께 양철통에 넣었다. 맨 아래에 깔린 번개탄에 불을 붙자 장작과 숯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곧이어 터져 나온 불씨는 부리나케 하늘로 올라간다.
회의 때문에 늦게 합류한 사람을 마지막으로 5명이 모두 모였다. 처음에는 이곳까지 잘 찾아올까 걱정했지만, 가로등보다 오히려 장작불이 눈에 잘 띄어서 찾기 쉬웠다고 한다. 비 오는 날 불 피우고 있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으니 납득했다. 각자 맡았던 재료도 꺼내고 식사를 준비한다. 남자 선배는 양철통에서 숯을 꺼내 화로 바닥에 깔고 위에 석쇠를 올린다. 두꺼운 고기부터 굽기 위해 여자 동기가 사 온 양고기 립을 먼저 올렸다. 나는 옆에서 고기와 같이 먹을 마라샹궈를 만든다. 여자 선배는 여자 동기와 함께 밥과 쌈장, 음료수를 세팅하며 그간의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남자 동기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필요한 일손을 돕는다. 그 와중에 불꽃색을 바꾸는 오로라 가루를 가져왔다고 자랑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에도 같이 캠핑을 한 적이 있던 터라 손발이 척척 맞는다. 어느덧 고기가 다 익었고 하나 둘 캔을 따기 시작했다. 운전하는 사람은 탄산음료를, 나머지는 맥주를 든다. 테이블 가운데로 5개의 캔이 모이며 오늘의 만남을 축하한다.
왼편에선 여전히 연기와 푸른 불꽃이 흘러나온다. 팀플 수업 때의 인연이 5년이 지난 오늘까지 이어진 셈이다. 당시 3학년이던 여자 선배는 이제 박사 졸업을 앞두고 있다. 남자 선배와 여자 동기는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고, 남자 동기는 대학원을 희망하며 막학기를 준비하고 있다. 모두 20대 중반이 넘었고, 그러다 보니 진로 얘기를 할 때가 많아졌다.
"석사를 마치면 취업을 할지, 박사까지 할지...."
"요즘에는 졸업을 해도 취업이...."
"이번 프로젝트 기한이..., 이번 출장이... "
걱정과 불안이 담긴 이야기가 불 위를 오간다. 그에 반해 나는 할 말이 없어 음료수를 마실 때 빼곤 입을 떼지 않었다. 이들뿐 아니라 내 주위 모두가 앞으로 무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들 곁에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뭐라도 해야 하나란 생각이 피어났다. 뒤이어 그들이 이번에 이룬 실적들을 듣는데, 조금 전에 피어난 생각은 조바심으로 변했다. 나는 그동안 무얼 했던 걸까란 자책도 따라붙는다. 타닥, 불씨 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무언가 금이 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장작불 곁은 따듯했으나 그 색은 여전히 차갑다. 시선을 왼편에 있는 강으로 옮겼다. 강물은 자동차 전조등에 잠깐 빛나는 것 같다가도 다시 어둠으로 돌아갔다. 어디로 이어질지, 그 깊이도 알 수 없는 채로 말이다.
핀란드는 겨울이면 오후 4시에 해가 진다. 그러니 수업을 마치고 밖을 나서면 하늘은 벌써 깜깜했다. 해외 연수 프로그램으로 핀란드에 온 지 4일 차, 아직까지 해는 고사하고 맑은 날씨를 본 적이 없다. 수업이 끝나야만 놀 수 있던 우리에게 긴 밤과 흐린 날씨는 걸림돌이 되었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헬싱키 시내를 걷는다. 그럼에도 내심 밤거리만은 예쁘다고 생각했다. 큰 창문 너머로 노란빛을 뿜는 건물이 양 옆으로 마주하고 있다. 전등을 매달고 있는 전선이 건물 사이 잇는다. 널찍한 인도에 쌓여 있던 눈은 중간중간 지나다니는 지상 열차로 녹아 없어진다. 창 너머로는 가족이나 친구끼리 모여 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보인다. 바다조차 얼리는 추위와 싸라기눈이 옷틈 사이로 들어오는 와중에도 눈앞의 풍경은 따스하다고 느낀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한다. 그리고 어제도 그랬듯 로비로 내려와 일기를 쓴다. 노곤한 몸 그대로 침대에 뛰어들고 싶지만, 오늘 느낀 감정을 잊기 전에 남겨야 한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한참 놀다 밤늦게 돌아온 사람, 자다 깨서 물 마시러 온 사람, 다음날 아침을 미리 챙기러 온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만난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여행의 설렘은 사람을 더 개방적으로 만들었다. 그들을 자리에 앉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마라톤을 하는 친구, 유럽 여행을 위해 한 학기 동안 돈을 모은 친구, 친한 지인의 친구까지 참으로 다양했다. 그중 극단에서 일하던 친구가 있었다. 공대를 졸업하면 대학원, 취업, 창업 이 세 가지 중 벗어나질 않는데 의외였다. 진정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서 하게 되었고, 돈은 입에 풀칠할 정도만 번다면 상관없다고 했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었다. 핀란드의 밤은 길었고 남은 이야기는 쉼 없이 오갔다.
2월 말, 함께 핀란드를 갔던 친구 몇 명이 졸업했다. 극단에 다니던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학번이지만 앞서 간 그들을 보며 진로를 고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실감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자기가 속한 극단이 공연을 한다며 티켓을 보내주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간, 원하는 일을 하는 친구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공연 당일 밤, 앳된 안내원 분의 도움으로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공연이 시작됐고 한 시간 반은 금세 지나갔다.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두 남녀가 서로를 위로하는 내용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친구에게 공연을 잘 봤다는 인사를 건넸다. 조감독으로 일하던 그녀는 피곤해 보였지만 빙그레 웃으며 보러 와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그리고 5월, 올해까지만 극단을 다니다가 내년에는 대학원에 갈 거란 연락이 왔다.
자존감에 관해 지인과 나눈 대화가 있다.
"나는 자존감이 높은 편은 아닌 거 같아. 그렇다고 낮은 편도 아니고, 딱 중간 정도? 겸손 이런 게 아니라. 역치가 높거나 회복력이 빠른 사람들을 자존감이 높다고 하고 싶거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오랫동안 쌓아왔기에 방어벽이 단단하고 회복력이 빠른 거지. 근데 나는 좀 다른 거 같아.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되, 나만의 공간에 가야만 회복할 수 있어. 메시지가 담긴 음악, 영화, 소설이 그래. 혹은 내가 멋지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 거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굳건히 해내는 모습이 그렇게 멋있더라고. 그러니 내가 무너져도 버텨줄 주위만 건재하다면 다시 재건할 수 있어. "
'임한올'이란 사람을 좋아한다. 건축학과를 다니면서도 유튜브 제작, 음성 녹음, 디즈니와 협업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해내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런 그녀가 갑작스레 영상을 올리지 않고 있다. 한 달, 계절, 그리고 일 년이 지났다. 그녀의 이름이 구독 목록 아래로 잠길 때쯤 '나의 자존감'이란 영상이 올라왔다.
그녀는 건축학과를 졸업 후 '프리랜서로 일하자'라고 마음먹었다. 다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홀로 해내야 한다는 사실에 불안함이 생겼다. 취업한 지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뭐라도 빨리 이뤄야 할거 같은 조바심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동안 스스로를 몰아붙이다 결국 취향, 가치관, 더 나아가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잊고, 스스로를 미위하기 시작했다. 흔히 알려진 자존감을 높이는 법은 본인에게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며 말이다. 그래서 지난 일 년동안 자신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느낀만큼, 그녀조차도 무너진다는 사실이 공간에 금을 더했다. 틈 사이로 불안함이 삐져 나온다.
그동안 브런치에 여러 글을 올렸다. 우울의 감정을 다루기 시작한 "장마가 시작됐다", 아버지의 간병인 생활을 하며 느낀 것을 정리한 "민들레의 꽃말은, ", 일련의 일을 겪고 무너진 감정 체계를 회복하는 "나는 회의적인 사람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나와 마주하는 "기억의 저편에 갇힌 네게 보낸다"까지. 모두 나를 제일 괴롭히던 고민이었고, 고민이 해소되는 순간 글 또한 완결되었다.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런 식으로 불행을 하나씩 지우다 보면, 덜 불행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말이다. 하지만 평온은 금방 익숙해지고, 시련은 새로이 찾아온다.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그대로이다. 하지만 여기에 조바심과 불안함이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사람이 급해진다. 그리고 평소보다 훨씬 무리한다. '하고 싶은 게 많아'는 이제 '뭐라도 이뤄내기 위해 뭐라도 다 해본다'로 변질된다. 인도 국제학교를 다니는 학생의 과외를 맡았다. 5월에 있는 축제 무대를 세 개 지원했다.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7시에 일어나 2시까지 수업을 듣고, 과제와 글쓰기를 한다. 저녁에는 과외를 다녀오고 다시 학교에 돌아와 축제 연습을 한다.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면 자정이다. 피곤한 몸을 침대로 내던진다. 힘들어도 결과만 좋다면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 달 뒤 축제 무대에 올랐으나 무대에선 연습의 절반도 못 보였다. 소설의 초안은 전부 갈아엎어야 할 수준이었다. 새로 맡은 과외는 내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다며 더 많은 수업을 해줄 수 있는 선생님을 원했고, 결국 잘렸다. 결과에 집착했던 마음은 결과가 흔들리니 손쉽게 부서졌다. 그간 뒤로 했던 감정 위에 허무함이 한 겹 더 쌓였다. 이제는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안될 정도이다. 금이 간 공간 위로 높이도 쌓인 감정들이 짓누르고 있다.
오랜만에 자정 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하루의 끝이 새벽 두 시였던 한 달이 오늘로써 끝났다. 그럼에도 뇌는 도저히 멈출 생각을 않는다. 관성 법칙에 따라, 뇌는 평소 들어오는 정보량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자극을 생성하고 있다. 내게 있어 가장 많은 연상을 일으킬 과거 트라우마를 꺼낸다. 평소라면 문제없이 해소하고 넘겼을 것이다. 글을 쓰며 만든 여유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24층 높이만큼 쌓인 감정들은 금이 간 공간정도는 무너뜨리기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공간이 무너졌고 또 다시 바다가 넘쳐버렸다.
우우우웅.
기상 알림이 선명하게 들린다. 결국 4시간 동안 뜬눈으로 지새웠음을 깨달았다. 외국에서 휴대폰이 방전되며 길을 잃었을 때, 첫 공황이 들이닥친 날, 쇼크가 와서 응급실로 실려가는 아빠의 모습 등 무수한 기억들이 눈앞에 들이닥치니 잘 수가 있어야지 말이다. 점점 산소마저 적어지는 기분이 든다. 이대로라면 질식할 것만 같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비가 오고 있지만 상관할 바 아니다. 강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로 비틀대며 걸어갔다. 비 오는 새벽,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자 속에 있던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몸 안에 이렇게나 물을 많았나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에 반해 명치 부근은 점점 메말라가는 느낌이 든다. 당장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을 되뇌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뿐. 사실 전혀 괜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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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며 걷는 것도 두 시간째. 일렬로 빛나던 가로등은 해 뜰 때가 되었는지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안테나 불량으로 한발 늦게 꺼진 가로등을 마지막으로, 빛과 어둠 둘 중 어느 것 하나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되었다. 기분 나쁜 잿빛이 하늘과 강을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