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구름들
어제 종일 내리던 비 덕분인가 뒷마당 벤치에 앉아 마시는 아침의 첫 공기가 어느 때보다 신선하다. 덩달아 맑아지는 머릿속. 산뜻한 마음으로 노트를 펴고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어 내려 간다.
역시나 오늘도 참 두서없다.
유난히 맑은 공기라도 마음까지 정돈시키긴 힘든가 보다. 하나 둘 마음속을 꽉 채웠던 생각들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져 나온다. 과거 할머니 댁 정문 계단에 앉아 음미했던 햇살을 떠올렸다가, 조만간 이사 가고 픈 미래의 집 속 갖고 싶은 서재와 부엌의 모습을 그려봤다가, 뜬금없이 어제 미처 냉장고에 넣어두지 못한 미역국이 떠올라 화들짝 놀라 부엌을 바라본다.
가끔씩 취미가 뭐냐는 혹자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몽상’을 끼워 말할 때가 있다. 말하고도 아차 싶다. ‘사색’보다는 깊이감이 없는 듯하고, ‘생각’이라 하기엔 약간의 산만함이 더 해진 느낌이다. 그러면서 도개인적으로 이 단어가 좋다. 비록 일장춘몽이 담고 있는 헛된 꿈을 연상할지언정 ‘꿈’을 담고 있는 이 단어만의 예쁜 내음이 있다. ‘가끔씩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상주의자 같다’는 남편의 말이 그리 싫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지 모른다. 오히려 ‘마음만큼은 아직 내 나이만큼 늙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든다.
구름 사이를 넘나드는 산들바람처럼 이런저런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하루의 시작이 가벼워지는 느낌. 물론 ‘뚜렷한 목표의식과 방향성’을 갖으라는 자기 계발서들을 볼 때마다 뜨끔하며 시간을 낭비한 듯한 죄책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따뜻한 위안을 주었던 배철현 작가의 글을 떠올리곤 한다.
‘생각’은 인생이라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집을 짓도록 도와주는 설계도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인생이 있고, 그것을 더욱 감동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우주는 우리 각자에게 생각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주었다.”
남들이 보기에 비록 뜬구름 그리듯 두서없으면 어떠리. 이 또한 ‘가장 나답게’ ‘나만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나만의 생각 방식일 수 있지 않을까.
전혀 기승전결 없는 단상들로 가득 채운 한 페이지 하단에 ‘오늘도 아름답게 시작한다’라고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