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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치즈 Feb 08. 2023

레이더를 끄는 일

재택근무맘의 멀티태스킹 탈출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점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멀티플레잉이요’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곤 했다.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에 어릴 때부터 이 일 저 일 건드려보고 벌려놓는 일들 또한 참 많았다. 다이어리는 매일 촘촘한 일과들로  채워져 있었고 남들보다 여러 활동을 하려다 보니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하는 요령들을 자연스레 터득했다. 남들이 한 걸음 갈 때 종종걸음으로 두 걸음 뛰어가는 성격과, 빠른 손놀림과 추진력은 이 같은 멀티태스킹 능력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졸업 후 직장에서도 이 같은 멀티태스킹 능력은 항상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능력의 빛이 발한 건 엄마가 되고 나서부터다. 

재택근무 시간, 한 손으로는 모니터를 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이에게 아침 이유식 떠먹인다. 그 와중에 아이  점심 이유식을 위한 육수를 가스레인지에 앉히고 부엌과 식탁을 종횡무진한다. 그 순간 전화가 온다면 어깨와 귀사이에 끼기만 하면 된다 (스피커 폰을 하면 아이에게 방해되므로). 틈틈이 아이와 눈 맞춤을 하며 대화하는 건 기본. 여기에 둘째 아이가 생기니 이제는 발까지 동원했다. 아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타고 나에게 돌진할 때마다 열심히 반대 방향으로 힘차게 밀어주기를 반복, 그야말로 허벅지 운동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스스로도 놀라게 되는 이러한 요령 및 기술 볼 때마다 ‘어쩌면 모든 엄마들에게 신이 주신 생존(?) 능력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니 방과 후 대화시간이나 숙제를 도와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에 따라 아예 거실 쪽 식탁을 모두의 책상으로 사용하기 시작.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마다 일을 멈추고 즉각적으로 투여되었으니,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에게 향한 나의 레이더는 언제나 풀가동 중이었다. 

이러한 생활이 체화될 즈음 큰 아이가 어느덧 사춘기 문턱을 바라보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나의 레이더의 감각 또한 예전 같지만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나의 종종걸음부터 그 속도가 느려졌고, 일에 집중하다 보면 아이의 부름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생겼다. 심지어는 저녁 찌개를 올려놓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음식을 홀라당 태웠으니. 비슷한 사건을 세 번째 겪은 날 불현듯 책 <원씽>과 <마지막 몰입>의 제목들이 머리를 스쳤다. 

‘멀티태스킹이야말로 이도 저도 아닌 일들을 생산해 내 는 것이다. 절대 생산적으로 일을 잘하는 것이라 할 수 없다’

망연자실 냄비 밑바닥에 들러붙은 음식들을 허무하게 보고 있자니 책 속 저자들이 나와 나를 꾸중하는 듯했다. 물론 나의 삶 속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젊은 날의 나의 멀티태스킹 능력을 ‘다 부질없는 것이었다’ 단정 짓고 싶진 않다. 그 감사한 능력으로 오랜 기간 일을 하면서 집안일과 육아까지 내 나름대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냈다 자부한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제는 시간이 지나 한 번에 여러 일을 한 만큼의 충분한 체력 및 에너지를 스스로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솔직히 한 가지에 올곧이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기력이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사춘기의 큰 아이는 엄마의 레이더가 무뎌질수록 반가워하는 나이가 되었고, 일과 공부로 바쁜 부인을 둔 남편은 이제는 제법 집안일의 큰 부분들을 담당해주고 있다. 이 같은 자연스러운 변화에도 불구하고 무리하며 예전처럼 모든 것에 촉각을 세우며 나의 레이더들을 켜고 있는 건 어쩌면 나만의 욕심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러한 생각 아래 ‘꼭 필요치 않다면 가족들에게 집중하던 나의 레이더는 잠시 꺼두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작년 말, 지하의 빈 공간에 나만의 책상을 새로이 들였다. 아이들과 집안일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던 레이더를 이제는 이 공간에 비추리라. 물론 여전히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식탁이다. 그러나 ‘타버린 찌개’를 종종 떠올리며 올해는 나만의 원씽 찾기에 조금 더 많은 집중 레이더를 쏘아볼 예정이다. 혹시 아는가.  5년 뒤에는 ‘멀티태스킹’이 아닌 ‘윈씽태스킹’의 대가가 되어있을지. 그러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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