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탁탁 탁탁탁”
분명히 숙제 많다며 책상머리에 앉은 아들 방에서 계속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 노… 예쓰! 1등이다.”
뭐지, 진짜 게임하나? 본래 숙제부터 안 하면 스스로 안절부절못하는 아들의 성격을 아는지라 게임부터 할 일은 없는데 뭔가 이상하다. 쓰윽 다가가 보니 자동차 경주 게임이다.
“그런데 아까 숙제한다고 하지 않았어?”
“숙제 중인데요? 타이핑 연습하는 게 숙제예요.”
자세히 보니 상단에 나오는 글들을 그대로 빨리 타이핑하면 그 속도에 따라 나의 경주차 속도가 빨라지는 원리다. ‘책상에 책, 공책만 펴놓고 집중해야 공부지’라는 옛날식(?) 사고방식을 가진 나로서는 가끔 이곳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가 어이없을 때가 많다. 수학 숙제를 한다고 해서 보면 ‘스트리트 파이터’를 연상케 하는 두 사람의 무술판에 서있고 하단의 연산 문제를 풀어 빨리 답을 고르는 사람이 상대방에게 펀치를 더욱 많이 날려 이기는 게임을 하고 있다. 한창 게임을 좋아하는 나이의 아이들을 겨냥한 학습 게임법인 모양이다. 재미와 함께 연산의 속도를 높여주려는 기발함이 놀랍긴 하다. 지난주 선생님과의 미팅에서 내년 초 보는 모의고사 한 섹션이 시간 내에 에세이를 타이핑하는 거라 준비시키겠다 공지했는데 아마도 그것을 준비시키는 모양이다. 이렇듯 숙제가 재미있으니 학교에서 오면 ‘숙제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겠지.
“어머머, 아깝다. 조금 더 빨리 쳐봐. 조금 더! 더!”
스릴 넘치는(?) 숙제에게 자꾸 2등만 하는 아들의 경주차를 보니 나도 모르게 안타까워 옆에서 응원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아들의 타자 속도가 엄청 느렸는데 그간 굉장히 빨라지긴 했다. 신기한 눈으로 그의 손가락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는데 어랏, 독수리 타법 아닌가! 세, 네 번째 손가락으로 쳐야 하는 일정 부분의 것을 두 번째 손가락으로 엄청 빠르게 치고 있었다. 타이핑 연습하면서 자기의 독수리 타법이 고쳐졌다고 자랑하더니 반 정도 고쳐진 걸 말한 건가. 나의 응원에 힘입었는지 계속적으로 1등을 하기 시작하는 아들.
짝짝짝
저런 독수리 타법으로 경주 게임에서 1등을 하다니. 절로 박수가 나온다.
“그런데 독수리 타법 다 고쳤다 하지 않았어? 엄마 눈에는 아직도 두 번째 손가락으로 몇 부분은 치는 것 같던데?”
“아 엄마 내가 원래 손이 작잖아요. 새끼손가락이 잘 안 닿으니까 그 부분들은 두 번째로 쳐야지 편해요. 봐봐요. ”
맞다. 손이 작은 남편과 나로 인해 우리 아이들은 유난히 손들이 작다. 과거의 나였다면 ‘그래도 연습하다 보면 다 적응이 되고 그게 더 빨리 치게 할 수 있어.’라고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삶 속 여러 층을 바라볼 수 있는 유연함이 생긴 지금에 와서는 나름의 기지를 통해 ‘자기의 불편감’을 ‘자기식 편안함’으로 만든 아들이 오히려 기특해 보인다.
세상에 그런 타법으로도 1등을 했다니.
“타자의 신’으로 명하리오!”
칭찬과 함께 아들이 좋아하는 망고 스무디를 상이라 하며 내어 주니 신나 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틀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는 순응자보다는 나에게 맞게 비판하고 응용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람’이 되길 바랐는데 아들, 잘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