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에 혹시 사관이나 서기관이 아니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남들에게는 별일 아닌 것들도 한 참을 서서 관찰하기도 하고, 핸드폰의 노트앱을 수시로 열고 쓰고, 기록을 한다는 의미로 사진과 동영상을 남겨놓을 때가 많다. 고로 대부분 아이들 사진들로만 가득한 엄마들과는 달리 내 핸드폰 사진첩은 뭔가 복잡한 생각들을 담아놓은 잡동사니 창고 같다.
컴퓨터 화면에서 보던 글이나 누군가의 강의를 보다 좋다 싶으면 순간 포착한 화면 캡처들도 많고 산책하면서 보는 여러 풍경 사진은 물론 혼자 설명이나 행동을 찍은 동영상도 많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막 찍었다’라고 할 수 없는 것이 그걸 스스로 또 자주 본다는 점이다. 마치 다른 사람들의 인스타 계정을 보며 그 사람의 취향과 생각을 알아가는 것처럼 내가 찍고 남긴 것들을 즐겨 보며 그때를 회상하고 그때의 감정을 반추해 본다.
‘통 통 통’
아침에 동네 산책하다 만난 초등학교. 학교 입구부터 정문까지 길게 뚫린 보도블록 위에 그려진 그림들이 눈에 띄었다. 학교 가는 길, 아이들에게 따라가 보라 그려놓은 아기자기 선들과 점프하며 앞으로 나아가보라는 색색가지 동그라미들, 그리고 미로 게임까지.
뒤늦은 학교 도착에 지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동그라미들 위를 한 발로 통통거리며 점프하는 몇몇 아이들의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재밌겠는데 나도 해볼까.’
갑자기 동한 마음. 몇몇의 아이들마저 사라진 한적해진 길 위의 그림들에 슬며시 다가가 나 또한 아까 아이들처럼 점프도 하고 선을 따라 뱅글뱅글 돌아본다. 미로를 따라 걷으며 마침내 통과 됐을 때 저절로 나오는 뿌듯한 감탄사.
어느덧 내 나이 8살 무렵 동심으로 돌아간 듯하다.
혹자가 보면 다 늙어서 주책이다 할 수도. 그러나 누구나 마음속 저 깊숙한 곳에는 8살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있지 않을까. 가끔씩 끄집어내어 그때 했던 순수한 웃음으로 소리 내어 웃어보는 것. 그때만큼 행복할 때도 없다.
저녁 식사 후 찍었던 동영상을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와 나 2학년 다닐 때 없었는데! 너무 재밌겠다. 엄마 내일 같이 가서 해보자.”
3학년부터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들이 재밌어 보이는지 계속 돌려본다. 사실 손쉽게 할 수 있는 놀이다.
“지금 해보지 뭐. 나와보세요.”
지하실의 한 박스에서 분필 조각들을 꺼내 뒷마당에 나가 아까 학교에서 보았던 것을 본 따 색색별로 그림을 그린다. 바로 따라오는 아이들. 뱅글뱅글 돌고, 뛰고, 점프하기. 통통거리는 아이들 발소리에 마음까지 유쾌해진다.
이 순간을 놓치면 안 되지!
이 즐거운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 위해 바로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사진으로 또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