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삶에 필요한 것
유머.
누군가를 만날 때 가장 크게 매력을 느끼는 부분 중 하나다. 나에게 있어 유머란 비단 ‘누군가를 웃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났을 때도 긍정의 힘으로 ‘담대한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탁월한 재능이 있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수다스럽지는 않지만 유머가 있어 말할 때마다 항상 대화를 분위기를 즐겁게 해 주셨던 아빠 덕분에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유머를 접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으니. 그러한 환경 덕분에 나 또한 유머 감각이 없지 않다. ‘조곤 조곤 은근히 웃긴다’라는 평을 자주 듣는 편. ‘재미’와는 절대 거리 멀게 생긴 데서 오는 반전의 힘도 작용했으리라. 감사하게도 어느 모임에서건 ‘ 빠지면 안 되는 존재’로 인식되는 편이었다.
지금의 나를 보면 유머가 많이 사라진 느낌이다. 나이가 먹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그 자리를 진지함, 진중함이 대신한 듯하다. 물론 웃음기 빼고 신중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굳이 필요 없는 경우까지 힘을 덧대어 문제 자체를 더욱 고민스럽게 만들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엄마 이것 보세요. 개학 맞이 OO 쇼~!”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컴퓨터 속 엑셀의 숫자를 세상 진지하게 보고 있는 나를 아들이 부른다. 누나 방에 있던 딸랑이 종을 흔들고 계단을 내려오는 아들이 시끄럽게 자체 등장을 알린다. 아빠 엄마, 그리고 누나 옷을 이상하게 몸에 매칭하고 나와서는 음악을 틀고 원맨쇼를 펼치기 시작. 따라 하기도 힘든 그 요상스러운 표정을 보자니. 빵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예민함에 날카롭게 서있던 마음이 순식간에 누그러지며 가벼워진다.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유쾌한 살랑바람’.
9월 5일 오늘은 개학일이 때문에 축하 특별쇼를 해야 한단다. 굳이 기념일이 아닌 날에도 ‘이번달 두 번째 일요일’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매일의 특별함을 축하하는 우리 아들. 해맑은 웃음과 그 흥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 하루종일 의자에 붙여놓았던 엉덩이를 들고일어나 아들의 축하쇼에 가담한다.
이어지는 아들의 조크 쇼. 밤마다 읽었던 유머책에서 외군 여러 문제들을 내고 맞추면 시리얼 하나씩 건네준다.
“땡큐 땡큐. 즐거우셨으면 팁 부탁드립니다!”
아주 자기 몫까지 톡톡히 챙기는 아들. 옛다. 오늘은 쿼터 2개다! 아들의 기쁨의 환호를 외친다.
누군가에게는 유치할 수도, 민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자. 이런 작은 유치함도 유머로서 수용하지 못하는 삭막한 사람으로 결고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다. 같은 사물을 바라보더라도 그것의 특징을 유쾌하게 포장하고 매일의 지금을 즐기는 것. 맞아, 내가 누리고 싶었던 삶이다.
‘재미없는 어른의 눈’으로만 일상을 보내는데 피로감을 느낄 때마다 자자란 유머와 웃음으로 일상의 재미를 선사하는 비타민 같은 아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팁에 대한 보답으로 마지막 엔딩 댄스쇼를 선사합니다. 나오세요! ”
아들의 마지막 멘트. 오케이, 댄서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온 열정을 다해 아들과 함께 '웃음의 난리 부르스'를 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