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극
등장인물: 남자 (40대 초반)
무대: 빈 공간. 의자 하나.
소품: 종이컵, 작은 봉지(씨앗호떡 상상), 재킷.
[조명 ON]
(남자, 의자에 앉아 종이컵을 들고 있다.)
남자
부산에 갔습니다.
(잠시 웃는다.)
이 나이에 “부산 데이트”라니.
솔직히 좀 웃기지 않습니까?
청춘 영화도 아니고.
배낭도 아니고.
중년 남자 둘이 아니라…
아, 둘이 아니라, 한 명은 여자친구고.
(머쓱하게 정리한다.)
광안리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광안리해수욕장 앞 카페였죠.
햇살이 이렇게… (손으로 표현)
사람을 좀 괜찮아 보이게 만드는 조명 있잖아요.
그날 제가 좀 괜찮았습니다.
커피가 달더라고요.
이상하죠?
설탕이 특별히 많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달았을까요.
(한 모금 마시는 시늉)
아마 옆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잠시 정적]
그리고 오륙도에 갔습니다.
오륙도 해맞이공원.
거긴…
카페랑 다릅니다.
바람이요?
바람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 멱살을 잡아요.
“정신 차려.”
이렇게.
(팔을 벌려본다. 균형 잡으려는 몸짓)
저는 멋있는 척 팔을 벌렸는데
속으로는
“이러다 날아가면 뉴스 나오나?”
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자친구가 말했습니다.
“메멘토모리. 카르페디엠.”
(웃는다.)
와…
이건 대사상감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바람이나 좀 멈춰주면 좋겠다…”
근데요.
그 말이 이상하게 남더라고요.
죽음을 기억하라.
지금을 살아라.
바람이 세니까
지금이 더 또렷해졌습니다.
[조명 약간 이동]
마지막 날, 국제시장에 갔습니다.
국제시장.
남포동 골목.
기름 냄새.
사람 소리.
씨앗호떡이 기름에서 튀겨지는 소리.
(손으로 둥글게 만들어 보인다.)
씨앗호떡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안에서 씨앗이 우르르 쏟아집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인생도 이런 거구나.
겉은 평범한데
안에는
이렇게 많이 들어 있구나.
충무김밥도 먹고
비빔당면도 먹고.
대단한 요리는 아니죠.
근데 왜 그렇게 맛있습니까?
아마
그 순간이 진짜였기 때문이겠죠.
[천천히 걸으며]
부산은요,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한 편의 영화였습니다.
근데 저는 주인공이 아니었어요.
엑스트라 3번쯤?
(관객을 보며)
근데 그게 좋았습니다.
주인공은 힘들잖아요.
서사 끌고 가야 하고.
저는 그냥
그 장면 안에 있었습니다.
달콤한 커피 한 모금.
거친 바람 한 줄기.
씨앗이 씹히는 소리.
그게 전부였습니다.
[조명 서서히 부드러워짐]
저는 이제 압니다.
행복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고급 호텔 로비가 아니라
시장 골목에 있고,
완벽한 대사가 아니라
어설픈 농담에 있고,
영원한 약속이 아니라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잠시 멈춘다)
바람이 불어도,
커피는 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을
잊지 않을 겁니다.
(조용히 종이컵을 내려놓는다.)
[조명 천천히 Fade Out]
남자(마지막 한 줄)
“오늘도…
엑스트라로 충분합니다.”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