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장미상회 06화

금지옥엽(金枝玉葉)

무명의 기록집

by 나비란

동그스름한 얼굴, 쌍꺼풀이 없는 단정한 눈, 오뚝하게 솟은 코와 처진 입매.

작은 키, 매끈하지만 어두운 피부 탓에 ‘까만 콩’이라고 불리던 금옥이가 있었다.

87년생이 갖기엔 다소 예스러웠던 그녀의 이름은, 늦은 결혼과 몇 번의 상처 후 얻게 된 딸을 위한 이름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늘 ‘금지옥엽’이라 불렀다. 하지만 우리들은 세상 온갖 것의 작고 까만 것들로 그녀의 이름을 대신 불렀다.


금옥이는 중학교 2학년, 같은 반 친구였다. 또래 친구들보다 꾸밈없고 수수한 모습이 나와 친구들에겐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우리들은 금옥이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쉬는 시간에는 그녀의 숱 많고 긴 머리카락을 빗질해서 요란한 머리를 만들어 놓고 철없이 깔깔깔 웃기도 하고,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방과 후에는 서로 주머니를 털어 순대꼬치와 떡볶이를 사 먹고, 서점에 가서 잡지와 부록을 구경하며 잡화점을 돌아다녔다.


주말에는 함께 동대문에 가서 그 당시 유행하던 ‘니뽄삘(일본풍) 스타일’의 옷을 사러 가기로 하고, 이화여대 근처 라이브 홀에 가서 데뷔를 기다리는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금옥이에게는 동네를 벗어나 친구들과 서울을 누비는 일이 낯선 경험이었다. 함께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탈 때의 그녀의 눈동자는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으로 반짝였다. 그때의 금옥이는 파도를 만나 한껏 적셔진 몽돌과 같았다. 신이 나서 작은 입으로 종알종알 떠들 때면 자꾸만 몽돌 구르는 소리가 났다. 그녀와 함께할 때면 늘 그렇게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반이 달라지면서 우리들은 서로에게 소홀해졌다. 새로운 친구들에게 나를 알려주고, 이해하고 이해받는 시간이 필요했다. 적응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같은 반 친구들과의 약속은 늘었고, 새 친구들과의 우정 쌓기에 분주해졌다. 우리들은 이런 시간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의 세상을 넓혀가고 있었고, 어쩌면 당연했을 시간이었다.

서로에게 서운할 새도 없이 유년 시절은 흘러갔고, 내가 금옥이를 다시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이따금씩 길에서 마주칠 때면 스치듯 인사하며 헤어지곤 했던 금옥이가 어느 날 나를 붙잡아 세웠다. 오랜만에 만나서 함께 놀자는 그녀의 말에 우리는 그 주 토요일, 천호동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만났다.

금옥이는 내게 그동안 잘 지냈는지, 요즘은 어떤지에 대해 물었다.

나는 대학교에서 친해진 친구 10명과 함께 롯데월드에 간 이야기를 했다. 각자 졸업한 학교 교복을 입고 놀이기구를 탄 이야기, 핫도그 빨리 먹고 휘파람 불기 대회에 나간 이야기, 교복을 입은 채 맥주를 주문해서 남들 눈을 피해 먹어야 했던 이야기들을 했다. 또 단체 사진을 찍었는데 정신이 없었던 탓에 가장 덩치 큰 친구를 빠뜨리고 찍었는데도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금옥이는 내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다며 웃어 보였다.

“너는 요즘 어때?”라고 물었을 때, 나는 금옥이의 눈을 보고 내 이야기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사실 나는 잘 못 지내.”

금옥이는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또 하필이면 친구들과도 사이가 틀어져서 지금은 학교에서 없는 사람처럼 지낸다고 말했다. 아, 우리들의 사랑스러웠던 금옥이가 어쩌다 그림자가 되었을까. 금옥이의 말을 듣고 뭐라 위로의 말을 내뱉기도 전에, 그녀는 지금은 괜찮다는 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 “최근에 친해진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 덕분에 나도 요즘은 좀 즐거워.”

금옥이의 마음속 빈자리를 채워주는 사람은 아마도 올해 초 알게 된 세 살 많은 언니인 것 같았다. 금옥이는 그 언니와 자주 밥을 먹고, 영화도 보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같이 사는 가족보다도 더 가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언니 이야기를 할 때면 금옥이의 입에서 몽돌 구르는 소리가 났다.

우리의 얼마간의 대화가 끝나갈 때쯤 금옥이는 오늘도 언니를 만나러 갈 예정이라고 했다. 천호동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거리에 산다는 언니는 타로 카드도 잘 보고, 정말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그러면서 내게 시간이 괜찮다면 함께 만나보지 않을래?라고 금옥이가 물었다.


나는 금옥이의 언니가 궁금했다. 지금 제 부모보다 좋다는 언니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 없이 금옥이와 함께 언니를 만나기로 했다.

5분의 거리. 아차산역.

지하철 문이 열리자 금옥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하게 길을 찾아 나를 이끌었다. 금옥이의 언니는 잠시 약속이 있어 집을 비웠다며, 자신의 집에 먼저 가서 놀고 있으라고 했다. 집 비밀번호를 나눌 만큼 둘은 생각보다 깊은 사이인 것 같았다.

주인 없는 빈집에 들어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던 나와 달리, 금옥이는 언니를 소개해줄 생각에 잔뜩 신이 나 보였다.


어느 낡은 연립주택 101호.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금옥이가 현관문을 열었다. 불 꺼진 거실과 방들이 보였다. 금옥이가 노련하게 손을 뻗어 형광등을 켰다.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였던 집안에는 기체조 같은 동작의 포스터가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으며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거울 속 낯선 내가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나는 금옥이에게 모르는 사람 집에 먼저 들어와 있는 게 마음이 불편하니 밖에서 언니를 기다리자고 말했다. 나의 재촉에 금옥이가 마지못해 밖으로 따라 나왔다. 그 후 나는 곧장 그녀의 손을 붙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말했다.


“금옥아, 너도 알고 있지? 저거 사이비 종교야. 너도 알고 있었지. 현관문 열 때부터 느꼈어. 집에 온통 향냄새로 가득 차 있더라. 금옥아. 네가 그동안 힘들고 외로웠을 거라는 거 아는데, 이건 아닌 것 같아. 네게 친구가 필요하면 내가 너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줄게. 이제 다시 그곳에 가지 말자. 금옥아, 너도 알고 있었지? 너도 알고 이……”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플랫폼에 다다라서야 나는 내 손에 붙잡혀 끌려온 금옥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여전히 작고 까만 나의 친구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었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 나의 말에 금옥이는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남긴 채 손을 풀고 달아나듯 가버렸다. 내가 늘어놓았던 수많은 말들에 대한 그 어떤 대답도 없이.

금옥이가 떠났다.

금이야.

옥이야.

귀했던 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날 이후 금옥이는 나의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 흔한 소문조차 남기지 않고, 이렇다 할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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