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페러다이스
공무원으로 신분을 유지하며 부업을 하려면 결국 나한테 맞는 건 '글쓰기' 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하지만 당시 운영하던 네이버 블로그는 점차 침몰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브런치라는 이 공간이 너무 탐이 나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다음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플랫폼이다. 네이버 블로그도 글을 쓰는 공간이지만 두 공간은 느낌이 굉장히 많이 다르다.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차이점은 브런치는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는 플랫폼이고 네이버 블로그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글을 쓰는 플랫폼이다. 더 간단히는 브런치는 아름답게 글을 쓰는 곳, 네이버 블로그는 정보 전달을 하는 곳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고 본다.
아름답게 글을 써야 하는 곳이다 보니 브런치는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이 있다. 그런데 그 조건이 상당히 도전이 필요한 벽처럼 느껴져서 시작하기가 쉽지가 않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브런치 심사팀에 자신이 연재할 글 계획서와 작성한 글 몇 개를 첨부해 보내서 통과해야 한다. 마치 출판사에 자신의 책을 출판해 달라며 투고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호칭을 해주며 글을 쓸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처음에 브런치 플랫폼을 훑어보다가 저 ‘작가’라는 호칭을 보며 몸이 쭈뼛쭈뼛 설정도로 설렜다.
일단 브런치 작가 지원을 해보기 위해 브런치에서 많이 읽힌 글들을 죽 읽어 보았다. 정말 클릭을 안 해보기 어려울 정도로 참신한 제목들과 톡톡 튀는 소재들이 많았다. 그런 글들 중에 ‘브런치 합격을 위한 팁’ 관련된 글들도 굉장히 많았다. 죽 읽어 나가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많은 글들이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라’라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가 여기서 멈춰 섰다.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육각형으로 골고루 발달된 평범한 사람이다. 직업도 공무원, 어디 하나 크게 특출 나게 잘 난 것도 없고 크게 두드러지는 문제점도 없다. 그런 나에게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이라니?
네이버 블로그를 할 때처럼 자리에 앉아서 멍하게 화면만 보고 있었다. 맥북은 어서 나에게 뭐라도 입력을 해보라며 빨간색 커서를 정처 없이 깜빡거리고 있었지만 나는 나만 쓸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네이버 블로그의 주제처럼 ‘다른 사람들보다는 취미활동을 조금 많이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취미활동과 관련된 글 계획을 세우고 글을 몇 개 썼다.
블로그 때와는 달리,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수많은 페이지들 중에서 내가 공유하고 싶은 페이지들만 잘라서 한 편의 글로 엮고 내 생각을 적었다. 나의 취미 활동의 역사들을 떠올리며 글을 써나가기 시작하니, 얼마나 잘 썼는지와는 상관없이 분량은 죽죽 잘 써졌다. 그렇게 잘 써지는 글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글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 글로 흥할 사람이구나’ 그렇게 며칠을 써 내려가자 몇 편의 글이 완성되었다.
아내에게 자랑하며 보여주자 “재미있긴 한데, 이걸 사람들이 많이 읽을까?”하며 아주 솔직한 말을 했다. 조금 멈칫하긴 했지만 ‘이걸 사람들이 많이 읽을까?’는 흘려듣고 ‘재미있긴 한데’에만 오롯이 몰두했다. 역시 사람은 찾고 싶은 대로 구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자신감 넘치게 브런치팀에 심사 메일을 보냈다. 합격 후기에서는 '합격하면 좀 빠르게 답장이 오고 떨어지면 좀 천천히 보내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라는 말을 했다.
써온 글 몇 편은 아내에게 보여줬지만, 브런치 작가에 도전 메일을 보냈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늘 받는 사람이 감동도, 큰 즐거움도 없는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편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메일 새로고치기만 하며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상생활을 하며 “하하하” 웃고 대화를 하고 있지만 사실 머리카락 끝부터 발끝에 붙은 먼지까지 모두 답메일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되어도, 그다음 날이 되어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브런치팀이 휴가를 갔나 보다.’라고 애써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브런치팀에서 답장 메일이 왔다.
’브런치 작가 신청 결과를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