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도전은 끝이 났다. 아쉬움이 질척하게 남았지만, '원래 나는 작가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얼굴 크기가 내 손크기만 한 토끼 같은 아기가 내 앞에 나타났다.
세상에 이 수많은 인연들 중에서 우리 부부에게 아기가 와준 것에 감사하고 행복을 만끽했지만 동시에, 차갑게 식어버렸던 나의 부업을 향한 열기가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아기에게 세상 많은 좋은 것들을 주고 싶었으나 공무원 월급으로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부업들을 다시 생각해 보았으나 부업에 관해서 그동안 달라진 조건은 없었다. 여전히 공무원 부업의 항목은 제한적이었고, 얼굴이나 신상을 너무 알리고 싶지는 않았으며, 겸업을 제한하고 있는 일을 몰래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여러 악조건들 속에서, 나는 결국 내가 부업해서 성공하는 방법은 글쓰기 밖에 없음을 다시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의 내 주변 상황은 상당히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기가 10개월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아내는 임신 초기부터 육아휴직을 시작해서 꽤 긴 시간 동안 육아휴직을 했다.
하필이면 코로나 시기와도 겹쳐서 아내는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은 채 긴 시간 출산과 육아에만 전념했다. 아내는 육아가 지친다며 오히려 출근을 하고 싶어 했다.
결국 아기가 10개월일 때, 아내는 출근을 하고 내가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아기 밥 세끼를 해 먹이고 아내 밥을 해 먹이고 집안일을 모조리 도맡아 하면서 몸은 점점 지쳐갔는데, 정신은 또렷하게 글 쓸거리를 찾았다. ‘뭘로 글을 쓰면 좋을까…’
그러다가 문득, 예전에 브런치 팁에서 ‘나만이 쓸 수 있는 내용’을 찾으라는 글이 생각이 났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아빠가 10개월 정도 된 아주 어린 아기를 혼자 밥 해 먹이고 돌보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다!’
나는 결국 다시 브런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오랜만에 접속한 브런치 홈페이지는 ‘작가님을 기다립니다’ 하며 나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문득 작년 생각이 나서 메일 기록을 확인해 보니 약 1년 정도 전에 내가 브런치로부터 받았던 ‘이번에는 모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메일 세 통이 보였다.
‘이번에는 다르다!’ 기존에 취미에 관한 모든 내용들은 다 지워버리고 ‘아빠 육아’에 관한 내용을 쓰기 시작했다. 며칠을 준비하고 다시 메일을 보냈다. 이번에 쓴 글들은 전에 쓴 취미 관련 내용들보다 내가 쓰면서도 훨씬 쉽게 써졌고, 유쾌하게 쓰였다.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은 대다수는 상당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특별한 설정을 하지 않아도 유쾌하고 웃기는 순간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며칠 후 몇 개의 글을 첨부하고 작가 소개 및 글 계획을 고친 후에 메일을 보냈다.
나는 세상의 풍수나 큰 기운, 신수 등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이쯤 되면 이 꺾이지 않는 마음과 정성이 하늘에 닿아 합격의 기운을 내려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떨리는 마음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컸다. 마치 이미 합격을 받아 놓은 사람처럼 말이다.
듣지도 않고 벌러덩 누워 있는 아기 옆에서 열심히 책을 읽어주고 있던 어느 날, 핸드폰에서 “띠링!” 알림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메일 제목이 약간 다르게 왔다.
전에는 ‘브런치 작가 신청 결과 안내 드립니다’라고 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브런치스토리] 브런치 작가 신청 결과를 안내드립니다’라고 답장이 왔다.
여기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지난번 메일 제목에 비해 ‘[브런치스토리]’가 앞에 붙어서 왔고 단어 ‘결과’ 뒤에 목적격 조사 ‘-를’이 붙어서 문장이 좀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
‘역시 합격 메일은 느낌부터가 다르구만’ 하고 메일을 열람했는데...
브런치스토리에서 이번에도 나를 모실 생각이 없다는 메일을 보내왔다.
이번에는 얼굴이 붉게 확 달아오를 정도로 뭔가 감정이 올라왔는데, 둔감한 나로서는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부끄러움인지, 좌절감인지, 분노인지, 실망감인지. 잠시 동안은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알고 보니 브런치 팀에서 심사하는 사람이 나에게 아주 악감정을 품고 있던 사람인 거다. 그래서 ‘어 이놈! 너 이놈! 잘 걸렸다 내가 여기 있는 한 너는 절대 브런치에 발을 들일 수 없다!’ 하고 웃으며 나를 탈락시키고 있는 상상.
그런데 인생을 그리 잘 살았는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원망 살 일을 많이 한 거 같진 않았다. 올라온 감정과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덮어두고 나는 옆에서 양 발을 잡고 뒹굴거리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빠르게 감정을 추스르고 아기와의 일과를 충실히 보낸 후, 밤에 또 내용을 수정했다. 글실력은 어차피 단기간에 크게 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품 계획을 꼼꼼하고 세세하게 바꿔서 다시 작성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밤 다시 메일을 보냈다. 초조함과 궁금함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불쑥불쑥 고개를 치밀었지만, 한 두 가닥 희끗희끗 보이는 새치처럼, 애써 모른척했다.
며칠 뒤, 아기와 아내를 태우고 아기 장난감을 사러 당근을 하러 나가기로 했다. 차를 세우고 바깥에서 당근 판매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발을 동동이게 될 정도로 추운 날씨에 아기와 아내는 차에서 기다리게 하고 차 밖에서 혼자 서성이고 있었다. 혹시나 전화가 올까 봐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띠링!’하며 알람이 왔다.
지난번 급격한 감정 기복을 겪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메일 알림을 보고 싶었는데, 알림에 뜬 결과는 한눈에 보였다. 합격했다는 메일은 메일을 열람해 볼 필요가 없이 너무나 명확했다.
제목부터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였다. 사실 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고 감정에 취약한 사람이라 이 알람 내용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흐를 뻔했지만 이성을 총동원해서 가까스로 눈물 구멍을 막으며 참았다.
당시만 해도 나는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가장이라며 ‘나는 강한 사람이야! 나는 아빠니까!’ 하고 혼자 끝없이 되새기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고 차에서 기다리던 아내에게 덤덤한 척 말했다. “여보 나 브런치 작가 합격했어”. 바보 같이 이 한 문장을 말 마치자마자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