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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도슨트북 Aug 28. 2021

이건희 컬렉션, 르느와르의 책 읽는 여인

Pierre Auguste Renoir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 Auguste Renoir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La Lecture 책 읽는 여인

1890

44 x 55 ㎝



르누아르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의 하나인 책 읽는 모습이다. 1891년 또는 1890년대 초에 비슷한 스타일의 책 읽는 여인과 꽃의 그림이 등장하는 작품들을 많이 선 보인다.


Girl with a Red Hair Ribbon 빨간 헤어 리본을 한 소녀, 1891년, Pierre-Auguste Renoir
Two Girls Reading 책 읽는 두 소녀, 1891년, Pierre-Auguste Renoir
Girls putting flowers on their hats 모자에 꽃을 꽂는 소녀들, 1893-1894년, Pierre-Auguste Renoir





Pierre Auguste Renoir 1841- 1919


Pierre Auguste Renoir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41 -1919,

인상주의 Impressionism 에 여성의 아름다움을 더한 화가, 르누아르는 행복을 그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가 그리는 작품의 주제가 책 읽는 사람, 피아노 치는 소녀, 아이들이 있는 가족 초상, 춤, 무도회 등 일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이 많아, 보고만 있어도 우리를 행복해지게 만든다. 그는 왜 그렇게 밝고 아름다운 작품만 그렸던 것일까?



Why shouldn’t art be pretty?
There are enough unpleasant things in the world.

왜 예술은 아름다우면 안 되나요?
세상에는 불쾌한 것들이 충분히 많은 걸요.

- Pierre-Auguste Renoir -   



르누아르는 어렸을 때 노래 부르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아, 13살 때 접시나 식기 같은 도자기 용품들 위에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하였다. 이때 루브르 박물관에 자주 드나들면서 그림들을 따라 그리곤 했는데 재능이 심상치 않았다고 한다. 예술의 기질은 어떤 방법으로든 표출되게 되나 보다. 1862년 그의 나이 21살 때, 그 당시 권위 있는 미술학교인 에꼴 데 보자르 École des Beaux-Arts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스위스 화가 찰스 글레이어 Charles Gleyre 의 화실에 합류하는데 여기에서 이후 첫 인상주의 전시회를 함께 열었던 모네 Claude Monet, 시슬리 Alfred Sisley, 바지유 Frédéric Bazille 를 만나 함께 그림을 그린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모네 Claude Monet, 바지유 Jean Frederic Bazille, 시슬리 Alfred Sisley, 르누아르 Renoir.


하지만, 같은 인상주의 작품 속에서도 그의 작품은 뭔가 달랐다. 그의 작품의 특징을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작품을 하나 보자. 1869년 센 강 Seine River 의 한 리조트인 라 그르누이에르 La Grenouillère 에서 모네와 르누아르가 함께 이젤을 세우고 같은 장면을 그린 작품이 각각 있다.

먼저 모네의 작품부터 한 번 볼까?


La Grenouillère 라 그르누이에르, 1869, Claude Monet, Metropolitan Museum


그 다음으로,

르누아르가 그린 그림 한 번 볼까?


La Grenouillère 라 그르누이에르, 1869, Pierre-Auguste Renoir, Nationalmuseum, Stockholm


같은 곳을 이렇게 각각 그려주니, 너무 고맙다.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 특징을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차이가 눈에 들어오는지? 같이 놓고 한 번 볼까?


La Grenouillère 라 그르누이에르, 왼쪽 모네, 오른쪽 르누아르


그렇다. 모네의 그림에서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르누아르의 그림에서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 차이이다. 모네는 풍경을 주로 그리는 화가이다. 사람 또한 풍경의 일부분으로 그린다. 르누아르는 사람을 주로 그리는 화가이다. 풍경은 사람을 받쳐주는 배경이다. 그래서 르누아르를 보고, ‘인상주의에 사람의 아름다움을 더한 화가’ 라고 하는 이유이다.




 

Left: Woman with a Parasol 양산을 쓰고 있는 여인 – Madame Monet and Her Son, 1875, Claude Monet,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Right: Woman with Parasol 양산을 쓰고 있는 여인, 1973, Pierre-Auguste Renoir, Private Collection


 

‘양산을 쓰고 있는 여인’ 이라는 같은 제목의 모네와 르누아르 작품이다. 왼쪽 모네 작품의 주인공은 여인보다는 빛과 바람에 더 느껴지는 풍경이고, 오른쪽 르누아르의 주인공은 확실히 사람 얼굴이 드러나 있는 양산을 쓰고 있는 여인이다. 이 차이가 곧 르누아르와 모네의 작품 차이이기도 하고, 초기 인상주의 작품들과 르누아르의 작품 차이이기도 하다.

 

또 하나, 르누아르의 작품은 밝다. 하얀빛이 작품 전체를 비추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작품 전체에 화사함이 있다. 이러한 느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Bal du moulin de la Galette’ 이다.


Bal du moulin de la Galette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 Pierre-Auguste Renoir, Musée d'Orsay


축제 분위기 물씬 풍기는 작품이다. 왁자지껄 사람들 소리와 음악 소리가 함께 들리는 듯하다. 그 당시 프랑스가 ‘제일 아름다웠던 시대’라는 ‘벨 에포크 Belle Époque’ 시대의 삶과 여유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파리 몽마르트에 위치한 물랭 드라 갈레트는 풍차로 밀을 빻아 만든 갈레트 빵과 와인 등을 팔며 몽마르트에 있던 많은 예술가들의 모임 장소가 되기도 했던 무도회가 열리는 카바레 같은 곳으로 지금도 몽마르트에 위치에 있다.



Le Moulin de la galette, Paris Traveller Reviews - Tripadvisor


이곳에서의 무도회를 경쾌하게 그려 냈는데, 색 자체에 어둠을 주는 명암 기법을 피하고, 색은 그대로 두고 주위의 햇빛과 그림자를 주는 효과를 통해 명암을 주는 르누아르식 기법을 구사해, 작품 전체의 탁함을 걷어내고 화사함으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옷 위로, 모자 위로 얼룩덜룩 환하게 내리쬐는 밝은 햇빛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놀랍다.




오른쪽 아래 탁자를 두고 의자에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에게 머무는 시선을 저 왼쪽 뒤에서 한 커플이 ‘우리도 여기 있어요!’ 하고 우리와 눈을 맞춘다. 뒤로 둥그렇게 많은 커플들이 춤을 추고 있는데, 춤추는 커플은 르누아르 작품에서 많이 등장하는 주제 중의 하나이다.


Left: Dance in the City 도시에서의 춤, 1883.       Right: Dance in the Country 시골에서의 춤, 1883


각각의 작품에 붙은 제목이 재미있다. ‘도시에서의 춤 Dance in the City’ 과 ‘시골에서의 춤 Dance in the Country’,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인 그림이다. 두 작품 속의 남자는 같은 인물로 르느와르의 친구인 폴 로트 Paul Lhote 인데, 여인은 다르다. 오른쪽의 도회적인 이미지의 여인이 실내 무도회장 같은 곳에서 잔잔한 왈츠에 맞춰 우아하게 추는 분위기의 ‘도시에서의 춤’, 나무가 있는 시골 마당에 모자도 떨어져 있고 춤추는 무대 왼쪽 아래에 빼곱히 쳐다보는 얼굴들도 보이고, 탁자 위에 먹을 것들이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는 왁자지껄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경쾌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웃으면서 즐겁게 춤을 추고 있는 ‘시골에서의 춤’ 이다. ‘도시에서의 춤’의 여인은 에드가 드가의 모델로 시작하여 인상주의 화가들의 모델로 자주 등장하기고 하고, 그녀 자신 또한 화가이기도 했던 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이고, ‘시골에서의 춤’의 여인은 이후에 르느와르의 부인이 된 알린 샤리고 Aline Charigot 이다. 수잔 발라동의 아들이 르느와르의 아들이 아니겠느냐 하는 설들도 있을 만큼 둘은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거의 실제 사람 키 정도의 큰 사이즈의 작품으로 오르세 미술관에 함께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함께 춤을 추고 싶어 진다.


Photo by Renata Haidle, urbansider.com


그런데 위 춤추는 그림들은 그 전의 르느와르 초기 작품들과 그림 스타일 면에서 조금 다른 게 느껴지는가? 인물을 표현한 윤곽선들이 확실히 더 선명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초기 인상주의의 흐릿하고 뭉퉁하게 그리는 붓터치보다는 좀 더 디테일하고 선명한 클래식한 그림에 더 가까워졌음이 보인다. 같이 비교해서 한 번 볼까?


Left: Bal du moulin de la Galette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 1876, Pierre-Auguste Renoir, Musée d'Orsay

Right: Dance at Bougival 부지발(파리 근교의 마을)에서의 춤, 1882–1883, (woman at left is painter Suzanne Valadon), Boston Museum of Fine Arts, 수잔 발라동의  또 다른 춤추는 작품.



확실히 다르구나. 르누아르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1881년, 르누아르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본 라파엘로와 르네상스 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지금까지 확고했던 새로운 인상주의적 자신의 그림이 르네상스로 대표되는 고전주의 그림에서 너무나 벗어난 잘못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데생을 더 강화하여 라인이 더 선명해지는 클래식한 그림으로 바꾼다. 이 시기에, 르누아르 그림이 얼마나 변화하였는지 보여주는 그림 한 번 보자.



The Large Bathers 목욕하는 사람들, 1887, Pierre-Auguste Renoir, Philadelphia Museum of Art


아, 이 그림을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르느와르의 그림이라고 누가 보겠는가? 클래식한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까? 폼페이 벽화에서 보여지는 고대의 이상적인 여인들의 누드 그림이다. 르누아르의 이러한 그림풍을 그린 시기를 신고전주의 Neoclassism 의 대가인 앵그르 Jean-Auguste-Dominique Ingres 의 영향을 받았다 하여, ‘르누아르의 앵그르 시대’ 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1890년 초에 다시 선명했던 라인이 조금 더 퍼져 보이는 초기의 르누아르의 스타일에 클래식한 느낌이 더해 있는 새로운 르느와르의 스타일로 돌아오게 된다.


Girls at the Piano 피아노 치는 소녀들, 1892, Pierre-Auguste Renoir, Musée d'Orsay


너무나 아름다운 자매의 모습이다.  부유한 부르주아 Bourgeois 의 가정에서 피아노 앞 악보를 같이 보며 피아노 연습하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은 이본느 르롤 Yvonne Lerolle 과 크리스틴 르롤 Christine Lerolle 자매로 두 자매에게 영감을 받아 르누아르가 그렸는데, 5년 후에 직접 의뢰를 받아 성장한 두 자매의 모습을 위 그림처럼 포즈를 취하고 그린다. 이처럼 이 시기에는 사진이 나오기 전이라, 우리가 현재의 가족사진 찍는 것처럼 부유한 집에서는 어린아이의 커가는 모습과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담아두기 위해 그림으로 많이 그렸던 시기이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을 담아낸 르누아르의 그림을 하나 더 보자.



Madame Georges Charpentier and her Children  마담 샤르팡티에와 그녀의 아이들, 1878, Pierre-Auguste Renoir, The Met


전형적인 부르주아 가족의 가족사진을 보는 듯하다. 엄마는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아이들을 감싸듯이 안고 있다. 6살인 왼쪽의 조제 베르트 Georgette-Berthe 와 3살인 폴 에밀 샤를 Paul-Émile-Charles 는 둘 다 드레스를 입은 것으로 보아 자매라고 생각하였는데, 사실 3살 아이는 남동생이라고 하여 깜짝 놀랐다. 이 당시 남자아이에게 여자아이의 드레스를 입히면 악령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하여 남자아이에게 드레스를 입히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드레스의 색이 파란색이다. 보통 여자아이는 핑크, 남자아이는 블루 아니었던가? 이러한 인식이 자리잡기 전인 이 시기에는 여자아이가 블루, 남자아이가 핑크였다고 한다. ‘남자는 핑크지!’ 가 정말이었구나. 1, 2차 세계대전을 지나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강한 남자의 색인 핑크를 여성에게 보이게 하기 위해 여성의 핑크를 쓰기 시작하였는데 그게 지금의 ‘여자는 핑크’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인식의 변화가 흥미롭다. ‘핑크 Pink’도 사실 색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보다는, 나풀나풀한 핑크 모양의 꽃을 표현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핑킹 Pinking 가위’의 모양을 한 꽃이 핑크색이어서 모양을 지칭하기보다는 핑크 Pink = Color 로 변하게 된다.


그림을 좀 더 자세히 보니, 한 올, 한 올 표현한 감각이 어마어마하다. 아이들의 머리카락이며, 아이들이 입고 있는 드레스의 주름과 옷감 질감들, 아래의 강아지의 털 등 너무나 대단하다. 이 작품 속의 엄마인 마담 샤르팡티에 Madame Georges Charpentier 는 르누아르에게 가족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의뢰하여 그린 이 작품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르누아르를 소개해 줘 르누아르가 경제적으로 넉넉해지게 도움을 준 부인이다. 거실에 앉은 있는 것으로 보이는 벽과 공간은 일본의 풍속화인 우끼요에의 느낌으로 그려져 있다. 이 당시, 유럽에 일본 미술이 처음 소개되면서 인상주의 화가들 중에는 일본 미술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데 르누아르 또한 영향을 받게 된다.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La Lecture 책 읽는 여인, 1890년대

이제 르누아르의 작품임을 알겠다. 볼살이 볼록하게 핑크빛으로 물들여 있는 얼굴이며, 마른 체구보다는 살이 조금 있는 여인의 모습으로 보아 르누아르 작품 속에 많이 등장하는 소녀, 여인의 모습이다. 1890년대 작품으로 클래식한 그림 스타일에서 다시 인상주의 스타일로 다시 돌아온 시기로, 선명한 선들보다는 부드러운 붓터치와 디졸브 된 색의 흐름이 있다.




시스루처럼 보이는 드레스에도 꽃이 수놓아 있고, 바로 옆 탁자에도 함박꽃이 피어있는 꽃병이 놓여있고, 머리의 모자 위에도 꽃장식이 흠뻑 놓여 있고, 온통 꽃으로 둘러싸여 있는 꽃 세상이다. 빨간색을 이렇게 다양한 컬러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뚜렷한 라인 없이 색 덩어리, 색 뭉치로 꽃을 표현해낸 기법이 놀랍다. 긴 머리 또한 주위의 빨간색에 물들여 있는 빨간 머리이다. 화사한 창가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고 있는 것만 같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이다.  




그의 나이 50대 초에 찾아온 류머티즘 관절염에 기형적인 움직임으로 변해가는 손과 오른쪽 어깨의 경직에도 불구하고 그림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던 르누아르는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붓을 손에 묶고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 앞에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왜 그렇게 고통스런 몸에도 마지막까지 그림을 그렸던 것일까?


The pain passes, but the beauty remains.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 Pierre-Auguste Renoir -



La Promenade 산책, 1870, Pierre-Auguste Renoir, The Getty



영화 '르누아르 Renoir'.               https://youtu.be/sC44dAVDEr4






인생에서 한 번은 예술이 주는 기쁨과 위안을 받아 보시길 바라는 작은 바람입니다. 본 저작물에 인용된 자료의 저작권은 해당 자료의 저작권자에 있음을 알립니다. 본 저작물에 인용된 자료의 게시 중단 등을 원하시면 shaan@daum.net 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즉시 삭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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