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오늘이 지워버리고 싶은
하루였다면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

by 경험주의자


2017년 전 세계를 춤추게 한 레게톤 음악 ‘Despacito’처럼 천천히, 그러나 강렬하게 내 마음을 사로잡을 거라 기대했던 남미.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강렬한 태양과 때론 온화한 날씨 속에서 낙천적이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으슬으슬 춥고 숨쉬기 어려운 고산 지대에서 밋밋한 표정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그래서인지 그 유명한 마추픽추와 우유니 앞에서도 생각보다 담담했고, 장기 여행의 슬럼프가 너무 오래가는 건 아닌지 속상했다. 과연 남미가 문제였을까, 내가 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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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그렇게 한 동안 잠잠했던 나의 감동 센서를 강렬히 자극해 준 이과수와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반갑고 고마웠다. 이과수 폭포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파라과이 세 나라의 국경에 걸쳐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그리하여 관광객들은 전체 면적의 약 80%를 차지하며 좀 더 가까이에서 폭포를 볼 수 있는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Pureto Iguazu)’와, 20%를 차지하며 전체 조망을 감상할 수 있는 ‘브라질 쪽 이과수(Foz do Iguazu)’ 두 곳을 관람한다. 두 장소 모두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악마의 목구멍’을 코 앞에서 볼 수 있었던 아르헨티나 쪽 이과수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아니, 단연코 남미 여행 전체를 통틀어 베스트는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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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수의 물줄기를 온몸으로 느껴 보기 위해 보트에 올랐다. 빽빽한 열대 정글과 흙빛의 이과수 강물,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에 둘러 싸여 물길을 가르니, 꿈과 희망의 나라 놀이동산에 들어온 것 같았다. 어릴 적 책 속의 사진을 보고 꼭 와보고 싶었던 이과수 폭포, 그가 멀리서부터 점점 모습을 드러내자 가슴이 더 크게 뛰기 시작했다. 낙하 소리는 내 심장 소리처럼 점차 커져갔고 어느덧 물줄기가 시야를 가득 채우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제 보트는 폭포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한 채 물로 매를 맞는 듯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 그 고통은 묘하게도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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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과수 폭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악마의 목구멍’으로 향했다. 이과수 국립공원 내에서 도보로만 이동하기에는 면적이 넓기에, 미니 기차를 탄 뒤 역에서 내려 철골 다리 위를 10분 정도 걸어갔다. 마침내 82 미터의 아찔한 높이에서 우렁찬 소리를 내며 포효하고 있는 악마의 목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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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한참 동안이나 터져 나오는 감탄사를 멈추지 못했다. 이런 풍경이 지구 상에 존재하고 내 온몸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있는 이 현실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강렬한 물 폭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폭포들이 이 곳에 모여 합창을 하는 듯한 거대함, 한 치의 긴장도 놓칠 틈 없이 순식간에 아득히 멀어져 버리는 긴박함. 처음 이과수를 발견한 원주민들은 이 대자연에 얼마나 큰 경외감을 느꼈을까, 분명 신이 만든 작품이라고 확신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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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과수 폭포는 나의 ‘스승’이자 ‘치유자’였다. 그 앞에 섰을 때 내가 앞으로 겸손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으며, 가슴 깊은 곳에 잠재했던 응어리들이 뻥 뚫리는 해방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인생의 1/3 정도 지난 시점,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소소한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거대한 진공청소기 같은 물줄기 속으로 그 상처들을 빨아 넣었다. 그 상처들은 굉음과 동시에 사라져 흔적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누군가에게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지우고 싶은 기억과 극복해야 할 트라우마가 있다면 바로 이 곳,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 앞에 서 보라고 말하고 싶다.


☆ 2018년 2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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