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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Nov 07. 2021

퇴근길, 10년 후가
더 궁금해지는 곳에 가고 싶다면

나만의 비밀스러운 도시를 찾고 있다면 ③ 조지아의 트빌리시


아시아와 유럽 대륙,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에 위치한 ‘코카서스 3국’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은 사실 나만 알고 싶고 여행하고 싶은 보물 같은 나라들이다. 앞으로 관광객이 더 늘어나더라도 그만의 전통적이며 목가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길 바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지구 상의 이 보석 같은 나라들이 얼마나 좋은지 여기저기 소문도 내고 싶은 상반된 감정을 갖게 하는 곳.  



그러나 코카서스 3국 중 하나인 ‘조지아’와의 13년 전 첫 만남은 그리 밝지 않았다. 당시 흑해의 휴양지인 ‘바투미’를 여행했었는데, 그 첫인상은 구 소련의 무채색 건물들로 인해 칙칙하고 사람들 표정에도 근심이 서려 있어 우울한 분위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2008년 8월 러시아와의 남오세티아 전쟁 직후였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 장기 여행 중 만난 다수의 여행자들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나라로 ‘조지아’를 꼽아서 우선은 조지아가 유명하다는 사실에 놀랐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가고 싶어 할까 의아해했었다. 



하지만 아르메니아의 국경을 넘어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로 가는 길에서부터 수많은 여행자들이 보낸 찬사와 조지아를 수식하는 ‘인위적 요소를 제거한 스위스’라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연초록과 진초록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룬 굵고 강한 선의 코카서스 산맥, 새파란 하늘 속 뭉게구름의 풍경은 전 날 잠이 부족해 비몽사몽 했음에도 이 황홀한 광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눈에 힘을 주어야 했을 만큼 아름다웠다. 수도 도심에도 녹지가 많지만, 하루는 ‘므츠헤타’와 ‘시그나기’로 근교 여행을 떠났고 ‘카즈베기 산’에서도 짧은 트레킹을 즐기며 조지아의 푸릇푸릇한 무공해 자연에 더욱더 빠지게 되었다. 



앞서 소개한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가 ‘자연 속에서 조용히 쉬고 싶은 사람’을 위한 장소라면,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는 ‘자연 속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하며 놀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소이다. 청명한 공기 속 여유로움이 가득했던 여름날의 아침, 강변을 따라 느릿느릿 산책하다가 꿈틀거리는 벌레 모양의 ‘평화의 다리’를 건너 ‘리케 공원’으로 갔다. 바로 그곳에서 출발하는 케이블 카를 타고 ‘나리칼라 요새’에 올라 트빌리시의 전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쿠라강이 잔잔히 에워싸고 있는 언덕 위 높은 요새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문득 저 아래 빨간 지붕의 예쁜 집들은 어떤 모습일까 그 속살을 보고 싶어 워킹 투워에 참가하기도 했는데, 올드 타운의 자갈이 깔린 골목길에는 트렌디한 음식점과 카페가 늘어서 있어 산책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밤의 올드 타운은 낮보다 더 활기가 넘쳐서 밤늦게까지 골목 구석구석에는 흥겨운 음악과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트빌리시’의 어원이 고대 조지아어 ‘따뜻함’에서 비롯되었을 만큼 이곳은 올드 타운 중심에 위치한 유황 온천으로 유명하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오후 늦게까지 낮잠을 잔 뒤 유황 냄새가 솔솔 풍기는 온천 ‘Chreli Abano’로 갔다. 조그만 1인실에 들어가 탕에 몸을 담근 뒤 몸을 노곤 노곤하게 쉬던 중, 생각보다 수온이 너무 높아서 10분 만에 목욕사를 불러야 했다. 터키 하맘 목욕사의 능숙한 솜씨처럼 조지아의 목욕사도 몇 번의 간단한 손놀림으로 장기 여행에서 누적된 굵은 때를 벗겨냈다. 한 꺼풀 벗어진 피부는 천연 유황 성분이 골고루 침투되어 매끈매끈해졌고, 그간 묵은 때와 피로를 씻겨 보내니 마음까지도 개운해졌다. 



트빌리시의 또 다른 매력은 ‘맛있는 음식’과 ‘저렴한 물가’다. 여행/라이프스타일 전문의 ‘스릴리스트(Thrillist)’라는 업체가 유럽에서 ‘술과 음식이 맛있는 나라 4위’로 평가한 미식의 나라답게 올리브유가 자르르 흐르는 감칠맛 나는 음식들이 가득하고 와인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음식은 만두인 ‘힝깔리’이다. 만두소 반, 육즙 반인 이 음식을 처음 먹을 때는 육즙은 손에 다 흘리고 너무 뜨거워 입을 데기도 했을 만큼 아픈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현지인을 통해서 힝깔리는 손으로 잡고 먹어야 하며, 끝에만 살짝 베어 물어 즙을 마신 후 만두소를 먹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난 뒤에는 정겨운 고향의 맛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은 조지아 여행이 풍요롭게 느껴졌던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지난 6월, 미국의 컨설팅 업체 ‘머서(MERCER)가 실시한 ‘전 세계 생계비 조사’에 따르면 조지아의 트빌리시가 하위 3위를 차지했을 만큼 물가가 매우 저렴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서울은 상위 11위이다ㅠ) 



사랑스러운 이 도시의 진가를 보고 싶다면 나리칼라 요새에 올라서 ‘야경’을 보아야 한다. 리케 공원에서는 한적했던 낮과는 달리 밤이 되자 로맨틱한 음악 분수쇼가 펼쳐져 한참을 구경하다가 케이블 카를 타고 요새에 올랐다. 낮에는 아기자기한 동화 속 풍경처럼만 보였던 트빌리시의 화려한 변신, 시내 곳곳에 아낌없이 불을 밝힌 조명을 보니 조지아가 확실히 관광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반짝이는 트빌리시를 한참 동안 넋 놓고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언젠가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도시가 될 것 같다고. 



당시 카즈베기 산으로 가는 길에 만난 한 스페인 남자는 2년 전 혼자 조지아를 여행한 뒤 너무 좋아서, 이번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로부터 불과 2년이 지났을 뿐인데 트빌리시가 못 알아볼 만큼 너무 발전해서 놀랐단다. 친EU 성향의 조지아는 경제적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관광 산업에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10년 후쯤 다시 방문한다면 그때는 어떤 매력을 보여주게 될까? 조지아는 미래가 더 기대되고 궁금해지는, 그래서 코로나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면 꼭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은 나라이다.


☆ 2018년 8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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