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퇴근길 여행 갈 곳을 찾아보다’를 마치며
지금까지 퇴근길 컨디션에 따라 추천하고 싶은 36곳의 장소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런데 ‘퇴근길~’이라는 형식에 맞춰서 글을 쓰다 보니 가끔은 왠지 모르게 딱딱하게 전개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은 무게를 조금 내려놓고, 수필처럼 키보드 위에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롭게 써 보려고 합니다.
퇴근길 여행지로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나라는 ‘시리아’입니다. 아시다시피 2011년 이래 여행 금지국이 되어 현재는 갈 수 없는 나라죠. 하지만 언젠가 안정을 되찾고 다시 여행자들을 환히 맞을 준비가 된다면 꼭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은 곳입니다. 저는 시리아를 2008년 여름에 방문했는데요, 터키 교환학생으로 체류할 당시 여름 방학 때 남부 지방에서부터 시작해서 시리아-요르단-이스라엘-이집트의 ‘초승달’ 지역을 50일 정도 여행했었습니다.
터키 남부의 '하란'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어 시리아를 처음 만났습니다. 국경을 넘자마자 처음 만나는 꼬부랑글씨의 아랍어 간판들과, 긴 천으로 몸과 얼굴을 가린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도 신기해서 정신없이 사방을 돌아봤던 기억이 납니다. 시리아는 보통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러하듯 치안도 비교적 안전했고, 강원도 사투리처럼 부드럽고 느린 말투를 쓰는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달짝지근한 향신료 냄새가 진동했고 제가 지금까지 먹어 본 것 중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만나기도 했었습니다.
시리아 국경 근처 ‘텔 하비드’에서는 교통편을 찾지 못해 한 할머니 댁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다음 날 ‘알레포’에 도착했습니다. 흙빛과 황금빛의 건물들은 성채로 둘러싸여 있어 고풍스러웠고, 밤에 본 ‘그랜드 모스크’는 신비롭고 웅장해서 한동안 입을 벌리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리아는 고고학의 메카로서 박물관에는 기원전의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유물들이 감당이 되지 않은 듯 여기저기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여행 중 가장 재미있는 건 낯선 동네 구경과 시장 구경이죠. 중동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바자르(시장)와 골목 구석구석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처음 만나 모든 것이 새로웠던 아랍 문화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즐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시리아에서 가장 좋아했던 이 보물 같은 도시가 현재는 안타깝게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오론테스 강과 커다란 물레방아의 도시 ‘하마’, 한 여름 달궈진 공기 속에서 나른한 낮잠을 자고 난 후 석양이 질 무렵 성채에 올라 현지인들과 함께 흙빛 건물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감상했었습니다. 감동적인 장면을 마주해서였을까요, '와 내가 시리아에 있다니...' 새삼스럽게 참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유명한 수차 앞에서는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알레포의 한 가게에서 만나 친해진 아저씨의 가족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1년 뉴스에서 하마가 폭격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치면서 혹시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들은 아닐까 눈물이 나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 투어를 통해 방문했던 ‘크락 데 슈발리에’는 바로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이곳은 현존하는 십자군 성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합니다. 저는 한참 시간이 흘러 2020년에 반대로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오랜만에 시리아 여행의 추억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어떤 형체로 남아있을까요, 사진뿐만 아니라 이렇게 애니메이션으로도 그 당시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날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들른 세계문화유산 ‘팔미라’ 또한 생각하면 가슴 아픈 곳입니다. 바로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IS로 인해 많은 유물들이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황량한 사막을 한참 동안 달려 도착한 그곳은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 나 홀로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가슴 뭉클한 공간을 영국의 여성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다음과 같이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뜨거운 모래사막 한가운데 땅속에서 솟아오른 듯한 환상적인 도시 팔미라!" 광활한 유적 한가운데서 살을 태울 듯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그보다 더 강렬한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스물두 살의 나, 처음으로 낙타 위에 올라 좋아하고 있는 사진 속 제 모습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나옵니다.
스물두 살의 저는 지금보다 더 호기심 천국이었고 지금보다 덜 때 묻어서(?), 더 열린 마음으로 자유롭게 여행했던 것 같습니다. 5리터도 안 되는 작은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두 발로 국경을 넘고, 현지인들에게 스스럼없이 먼저 말도 붙이며 오래된 친구처럼 가족처럼 어울렸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좀 크고 난 뒤 30대의 장기 여행 때보다 더욱 재미있었고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시리아보다 이십 대 초반의 발랄한 청춘이었던 풋풋한 제 모습을 더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갈 수 없고 다시는 볼 수 없는 2008년 시리아의 풍경,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이십 대…. 그런 묘한 공통점이 있어서 이 나라가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당시 MP3 플레이어 속에 담겨 있어 중동 여행의 BGM이 되어주었던 가수 ‘김동률’의 5집 노래들 (출발, 아이처럼, Melody 등)을 들으면, 그때의 아련한 순간들이 떠오르고 눈물이 날 만큼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여행 중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장, 사진들, 그리고 그 순간으로 날 데려가는 멜로디들…. 저는 이러한 여행의 추억들 덕분에 오늘도 때론 지치고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갈 힘을 냅니다. 이렇게 브런치를 통해 그때의 일기장을 다시 읽으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찾아보면서 또다시 여행하는 듯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지금까지 제 글을 하나씩 읽어주시고 구독해 주시고 라이킷과 댓글로 응원도 해 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께 저의 소중한 여행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어서 즐거웠고,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서 여행 정보를 얻거나 해외로의 여행이 잠시 멈춘 시점에서 잠시라도 힐링의 시간을 가지셨다면 더 기쁠 것 같습니다. 이제 Chapter 2. ‘퇴근길, 여행 중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한다’로 글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따뜻한 연말 보내시길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