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결혼, 그리고 말라가는 감정 사이에서
어제 남편과 조그만 말다툼이 있었다.
무슨 영화 한 장면 같았다.
스토리가 너무 뻔해서,
‘이거 어디 영화에서 본 거 같은데...?’ 싶은 기분이었다.
아이가 생기고부터, 아니, 임신을 하면서부터 우리의 관계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 몸을 추스르기도 버거웠고, 남편은 내가 자신에게 소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는 몸 회복이 더뎠다.
9개월쯤 지나고 나서야 내 몸으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엔 밤낮으로 이어지는 육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완전히 소진된 날들.
나를 돌볼 틈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 상태가 길어지니,
내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느꼈다.
제대로 잠을 못 자면 사람 마음이 말라간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무엇보다 애정 표현 같은 여유는 바닥부터 사라져 간다.
그렇게 흘러온 최근 6개월,
남편과의 사이에서 쌓인 감정이 결국 말로 터졌다.
평소 불평 잘 안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엔 말했다.
“외롭다.”
내가 다가올 때 밀쳐내고,
안아주면 거절하고,
뽀뽀하려 하면 피한다고 했다.
사실이다.
남편은 항상 ‘타이밍이 안 좋은’ 순간에 애정 표현을 한다.
내가 예민하거나, 무슨 일로 감정이 복잡할 때.
그럴 때면 나는 오히려 혼자 있고 싶어진다.
남편은 나의 그 반응에 몇 개월, 아니 몇 년째
상처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며
미안함과 억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나도 지금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애정 표현까지 완벽히 해내야
내 역할이 다 끝나는 걸까?
“그건 좀 불공평하지 않아?”
하는 생각과,
“그래도 그 마음은 이해된다.”
는 생각이 엇갈렸다.
두 입장 다 이해가 되면서,
“내가 더 잘해야지...” 하다가도
쉽게 바꿀 수 없는 내 마음 앞에 다시 멈춰 서게 된다.
미안했다.
남편은 언제나 나를 위해 뭐든 해주는 사람인데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작은 애정 표현 하나.
그게 그렇게 힘든가.
그런데 나는 안다.
내가 왜 그렇게 못해주는지.
지금 내 마음은 마르고,
감정은 결핍되어 있다.
내게 남아 있는 작은 에너지는
하루 종일 딸에게 다 쓰인다.
하루가 끝나면
나는 감정도 체력도 텅 비어 있다.
그저 쉬고 싶고, 혼자 있고 싶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관계의 다이나믹은 정말 달라졌다.
우리는 안정적인 관계이긴 하지만
삐걱이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관계를 다시 점검하게 되고,
로맨스는 기억 저편에 묻힌다.
이제 우리는 사랑보다도
‘책임감’이 먼저다.
그 로맨틱한 결혼 판타지는 사라지고,
남은 건 ‘함께 살아내는 것.’
어떻게 보면 슬프기도 하다.
시간과 여유가 더 있었다면
서로에게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건
크고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아주 작고 현실적인 노력.
말 한 마디 따뜻하게 하기.
작은 손길 하나 더 내밀기.
그런 게
이 시기를 버티는 힘이 된다.
몇 년 전
죽음을 마주할 수도 있었던 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그때 깨달았다.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남편의 웃는 얼굴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지금처럼 무심히 고개를 돌릴까?
아니면
그를 한 번 더 끌어안고
“사랑해.”
라고 말할까?
삶은 매일 연습이다.
나는 지금
그 조그만한 연습을 다시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