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우는 동안, 나도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났다
자기 전에,
아이가 갑자기 배고프다며 주방으로 갔다.
시리얼을 조금 줬더니
그 전체 봉지를 달라고 했다.
남편이 결국 봉지를 통째로 건넸고,
그걸 들고 침대로 올라가려 했다.
나는 그걸 뺏었다.
왜냐고?
그걸 들고 올라가면
분명히 다 쏟을 게 뻔했고,
나는 그걸 밤에 다 치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순간,
미친 울음이 시작됐다.
30분 넘게
소리를 악다구니처럼 질러댔다.
그걸 돌려받기 전까진
멈출 생각이 없는 눈빛이었다.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고,
못 들은 척 해보기도 했다.
다 소용없었다.
울음이 벽을 뚫고
내 머릿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상상했다.
내 머리채를 스스로 쥐어뜯는 상상,
애를 문 밖에 갖다 버리고 오는 상상.
온갖 나쁜 상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침엔 그렇게 사랑스러워서
‘둘째 낳으면 어떨까’ 했던 내가,
밤이 되자
그 아이가 하루를 박살 내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알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는 건 통하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나도 인간이었다.
알면서도,
하지 않아야 할 줄 알면서도
소리를 질렀다.
감정적으로 무너졌다.
아이라는 존재는
부모의 한계를 테스트한다.
계속 찌른다.
어디까지 참는지.
어디까지 밀어붙여도 되는지.
명상하고 요가할 땐
모든 게 가능할 것 같다.
아이에게도 온화하고,
여유롭고,
우아한 백조처럼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이 닥치면,
우리는 본능의 인간으로 돌아간다.
물 위에선 고요하지만
물 아래에선 미친 듯이 퍼덕이는
백조의 발처럼.
절망하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
그것이 현실이다.
그렇게 우리는 배운다.
좋은 날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걸.
이런 힘든 날들이
진짜 우리를 단련시킨다는 것.
적당한 시련은
이제 별일도 아니다.
겪어봤으니까.
감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그 반복 속에서
마음에 근육이 생긴다.
근육이 생기면,
다음엔 덜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