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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영재 Jan 19. 2022

#19. "정상 100m를 앞두고 몸을 내동댕이 쳤다"

Bolivia. Huayna potosi

알람이 울린다.


몇 시간 잔 거 같지도 않은데 벌써 12시가 됐다...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빌고 빌어서일까...

정말 다행히도 몸이 조금은 괜찮아진 듯했다.


잠 깰 겨를도 없이 부랴부랴 짐을 싸고 밖으로 나갔다.

어둠 속에서 후레시 하나만을 밝혔고 어느새 후레시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어르신과 가이드


다들 모였는데 프랑스 커플 중 남자 친구만 나와있었다.

알고 보니 여자 친구가 밤새 고산병에 시달려 포기하고 새벽에 내려갔다고 한다...


고산병 때문에 밤새 힘들었던 터라..

누구보다 그 친구의 마음을 잘 알 거 같아 많이 속상했다...


아쉽지만 남은 사람들과 함께 출발 준비를 했다.


와이나포토시 등반은 높은 만큼 정말 위험하기도 한 곳이다.

그래서 꼭 3인 1조로 가이드와 함께 이동해야만 했다.

생명의 끈처럼 3명이 하나의 끈을 몸에 돌돌 감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절벽과

수많은 크레바스가 존재하는

와이나포토시에서 그 끈 없이 혼자 올라간다는 건

'그만 살란다...'라는 의미가 아닐까...


정말 위험하지만,

한 명이 발을 헛디뎌 절벽이나 크레바스로 빠지면

가이드와 다른 한 명이 도끼로 얼음을 찍어 고정한 뒤

그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탱해주기 위해 그 끈을 매고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영화 히말라야를 보면 꽤나 자주 나오는 장면이다.

영화 히말라야 중

사실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다...

그 위험한 곳을 그렇게 올라간다는 게...


사실 이 정도로 위험할 줄은 몰랐다...ㅎㅎ


아무튼!!! 나는 가이드와 60세 어르신과 함께 끈을 매고 출발을 했다.

선두에 가이드가 길을 찾아가고 뒤에 나 그리고 어르신이 함께 한 걸음씩 걸어갔다.


눈바람이 계속 불어 앞은 보이지가 않고 내가 의지할 건

오로지 가이드의 뒤꿈치뿐이었다.

그 뒤꿈치에 의존해 헥헥 거리며 몇 시간을 올라갔다.


5,400m에서 한 걸음씩 걸어 나간다는 건

정말 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도 힘들었다.


한 걸음만 내딛어도 숨이 차서 그대로 누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많이 들었다.

그런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다.


수많은 팀들이 중도 포기하고 하산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산을 하고 내려가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다는

그들이 사실 정말 부럽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정신 차리라며 뺨을 두 대씩 후려쳤다...


그렇게 꿋꿋이 가이드 뒤꿈치를 쫓아 올라갔다.


정상 200m를 앞두고 슬슬 몸에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왼쪽 허벅지에 경련이 나서 오른쪽 다리에 의존하다 보니 오른쪽 허벅지까지 경련이 난 것이다.

고통을 참으며 양 쪽 다리를 때려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올라갔다.


등산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대학 4년 동안 운동을 해왔기에

쥐가 올라온다는 건 사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고서는

다시 정상적인 다리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상 100m를 앞두고 지칠 대로 지친 내 몸을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3일 동안 바나나와 물만 마시고 고산병까지

그리고 양쪽 다리에 경련이 와서 내 몸 육체가 한계치에 다 달았던 것이었다.



*크레바스 -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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