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난임 연대기 _첫 번째 이야기
임신은 언제든 원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갖게 된 아이보다 계획 임신이 아이한테 더 좋은 일인 줄 알았고,
나름 계획 임신을 한다 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아이가 갖고 싶다고 그때 생기는 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난 젊었고,
그래도 난 신혼이었고,
그래도 난 나를 잘 알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 준비가 필요했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쌓이고, 직장 연차가 쌓이고
주변에 하나둘씩 결혼을 하였고,
하나둘씩 아이를 낳았고,
그리고 하나둘씩 임신에 어려움을 겪었다.
나보다 늦게 결혼을 했는데,
나보다 늦게 아이 갖는 준비를 시작했는데
나보다 아이가 일찍 생겼고
나는 해보지도 못한 육아 휴직을 한 번 더 하는 일들이 생겼고
그렇게 나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 갓난아기들이 어느새 백일, 돌잔치를 지나
아장아장 걷더니 뛰어다니고
아기 얼굴에서 어린이 얼굴로 변해가는 동안
그렇게 나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난 계획 임신이라, 아직 아이가 생기기 전에 해놓을 게 더 있으니까
그런데, 내 계획들이 다 끝나가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이제 생겨야 하는 데 생기지 않았고,
심지어 몸에 이상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생리주기도 28일로 일정했던 내가
생리통도 하나도 없던 내가
하루아침에 생리주기가 23일로 줄어들었고,
생리통이 생기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나에게 미친 영향 중 하나였다.
코로나19를 걸린 게 아닌데,
코로나19로 인한 직장 내 혼란 속에서 나에게 업무 부담이 쏟아졌고,
원래가 많은 업무를 맡고 있었지만
양이 아니라 질적으로 엄청난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원래가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하나하나 준비하는 성격인데,
눈앞에 펼쳐질 엄청난 변수들을 대처하지 못하는 집단 내에서
나의 권한에 한계를 경험했고, 나의 인내심의 한계에 다 달았었다.
그러던 중 자체 진단 한 화병이 생겨 앓아 누었다.
7년 동안 근무를 하면서
팔이 갑자기 안 들어져서, 입이 갑자기 안 다물어져서 응급실도 가봤고
우울증과 박탈감에 피해의식이 커져서 제 발로 상담실도 가봤고
그렇게 직장에 피해가 안 가도록 알아서 대처했고
병가 한 번, 병원 한 번 근무시간 동안 맘 편히 가지 못했는데
한 순간에 화병이 터져 온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앓아 누었다.
병원도 갈 수 없을 만큼 온몸에 열이 나고 몸살이 나고 힘들었는데,
진심으로 걱정하는 동료의 연락에 직장 얘기를 하다 분노하는 나를 발견했다.
멈출 수 없을 만큼 분노를 털어놓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진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엔 아픔이 덜 하단 걸 깨달았고,
출근 생각을 하니 온몸이 다 아파오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어떻게 고비를 넘기고
직장에서의 코로나19의 혼돈을 잠시 잠재웠을 때
내 몸에는 이미 큰 변화가 와있었고,
생리주기가 23일에 충격을 받고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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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생리주기가 갑자기 줄어들으셨으면...
난소 나이 검사를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난.. 소 나이 검사요??
네.. 난소 기능 저하가 의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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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에 이게 무슨 소리지?
병원 밖을 나오면서 떨리는 손으로 검색을 했다.
와.. 이게 무슨 일이야.